이 책에 한눈에 반했던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먼길로 돌아갈까?' 서정적이면서도 함축적인 제목. 그 안의 내용이 어떻던지 간에 무조건 펼쳐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저의 예상에 보기 좋게 엇나갔지만요.
미국의 문학평론가 게일 콜드웰와 42세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친구이자 작가 캐럴라인 냅을 추억하며 두 사람이 나눈 7년의 우정을 그린 에세이입니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여성 작가라는 직업과 규칙적인 삶의 루틴, 개를 키우는 공통점을 공유하며 게일과 캐럴라인은 급속도로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7년간 가족, 애인보다도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갑니다.
글을 쓰는 일과가 끝나면 매일 함께 개를 산책시키는 것이 그들의 루틴입니다. 마치 연인들이 집에 가기 아쉬운 것처럼, 그들의 산책길의 끝에는 "먼길로 돌아갈까?"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말 한마디로 책에 대한 설명은 더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서로 더 오래 함께하고 싶은 마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이것보다 더 좋은 마음이 있을까요.
한 사람을 묘사하는 글을 보면 그 사람을 향한 애정과 다정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나를 둘러싼 순간들을 세세하고 온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주고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캐럴라인과 처음 가까워진 몇 개월은 겨울 내음과 함께 되살아난다. 눈, 도시의 거리, 라디에이터 열기로 이뤄진 대서양 연안 특유의 차고 산뜻한 공기. 11월 그녀의 생일에는 털을 덧댄 엄지 장갑을 선물했고, 몇 주 뒤 추수감사절에는 각자 다른 약속을 가까스로 물리치고 둘이서 개들과 한나절을 숲에서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와 함께 로스트 치킨을 만들었다. 캐럴라인은 얼어붙은 산길을 걷는 방법과 발로 땅을 파며 가파른 비탈을 비스듬히 내려오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주었고, 나는 실내수영장에서 그녀에게 자유형을 가르쳐주었다."
캐럴라인의 죽음으로 내 편이 이제 세상에 몇 명이나 남았는지 세보는 게일의 모습에서 차가운 슬픔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담담히 고백합니다. 괜찮지 않다고. 소중한 존재를 떠나보낸 이들에게 이 책은 애써 괜찮다는 위로보다는, 세상에는 절대 괜찮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동의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로잉을 배우고 난 1998년 여름, 어느 저녁인가 강에 나갔다가 문득 사랑하는 아버지가 머지않아 나를 떠나겠구나, 나에게는 캐럴라인과 로잉이 있으니 견뎌지겠지, 생각하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누구나 겁이 날 때마다 내 편의 수를 헤아린다.
시공간과 마음의 권태야말로 인간관계에서 더 냉정한 사형집행인이다. 죽음은 아무도 청하지 않은 이혼이며, 이것을 견디고 산다는 건 잃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줄 알았던 존재와 절연할 길을 찾는 것이다.
인생은 반박의 여지없는 전진 운동이고, 죽은 이들 너머를 겨냥해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몇 달간 나는 시간이라는 것의 폭력성을 실감했다. 우리를 태운 대형 바지선이 캐럴라인만 기슭에 버려두고 떠나버린 것만 같았다.
죽은 사람에게 느끼는 강렬한 의리를 이해하는 어느 남성의 한 마디가 있었다. "진짜 지옥은, 이것을 결국 극복하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불가사리처럼, 제 살이 잘려나가도 심장은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