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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an 31. 2024

잊히지 않았다는 고마움에 대하여

또 생일이다. 어릴 때는 연인을 기다리는 소년처럼 생일마다 두근거림이 가득했었는데, 서른 이후의 생일은 부르지 않았는데 찾아온 손님 같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타지에서의 삶을 결정하고 이어나가면서 생일만 되면 미묘한 감정과 이어지는 생각들에 가슴이 복잡해지곤 한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었나? 


감사

한국을 떠난 지도 6년이 넘었다. 이제 잊혀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아직도 매년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는 고마운 친구들과 전 직장 동료들, 아직도 우리가 텍사스에 살고 있는 것 마냥 서로 소식을 전하고 기도해 주는 Austin의 L 교회 구역 식구들, 이번 생일에도 잊지 않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준 전 야구팀 동료 C 등등... 바람에 스쳐가는 것도 인연이라지만 이렇게 무거운 것도 인연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도 그들을 계속 기억하기를. 그리고 필요로 할 때 그들을 도울 힘이 있기를.


고독

나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그곳의 가족과 친구들과 동의어이다. 2019년 여름의 밤잠을 설치는 고민 끝에 한국행을 택했다면 분명 태민이의 자폐로 인한 여러 어려움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고통받고 있었겠지만, 그리고 여기에도 여러 좋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 구석에서 나를 갉아먹는 공허감과 상실감은 여전하다.

        

       '생일 핑계로 그들과 밥 한 끼 술 한잔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이게 정말 맞는 방향일까?' 


이민자이자 아웃사이더로 남의 나라에서 살아내는 것조차 만만한 일이 아닌데, 후회는 조금의 틈만 보여도 여지없이 마음 구석을 후벼낸다.


죄송함

한국 최고의 대학에 들어갔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던 20대 초반엔 정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마흔이 되면 사회의 중추로 단단히 중심을 잡고 살 것이라 생각했다. 이 나이에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채 흘러가듯이 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아직도 생일이라고 용돈을 보내오시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 나이에 이게 뭔가 부끄러운 마음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심에 감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아니, 자식의 어려움을 핑계로 할 도리도 못하는 나에게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나 있을까? 그저 이 길로 나를 이끄하나님이 나의 빈자리를 그들을 위해 채워주시길 바랄 뿐. 



부디 다들... 다시 볼 때까지 건강히 잘 계셔 주세요.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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