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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씨 Sep 13. 2023

끝내주는 나의 재취업 01. 10년만의 정글 컴백

 10년 만에 다시 회사를 다녀보려고 한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나도 뭔가 공식적인 조직에 속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아직은 어리지만 어느 정도 밥만 챙겨주면 자기 앞가림을 할 나이도 됐으니까.


 원래 하던 일을 이어서 하고 싶었지만 10년이라는 경력 단절과 그들이 보기에는 많은 나이로 좀처럼 연락이 오지 않았다. 서울이 아닌 곳으로 이사 왔지만 서울까지 출근할 각오로 무작정 뿌려봤다. 통 연락이 안 온다. 안 되겠다 싶어 방향을 바꿔 집에서 돈 벌어보자고 하던 일과 비슷한 분야, 평소 관심 있는 분야로도 아주 다양하게 넣어봤다. 노트북을 켜고 관련 키워드를 넣고 아주 먼 지방이 아니면 눈에 보이는 족족 넣었다. 안 하던 일이니까 당연히 신입이나 경력무관으로 지원했는데 연락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한 군데서 드디어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갔다. 이곳은 정말 충동적으로 넣은 곳이라 제출서류를 뽑으면서도 계속 망설여졌다. 근무시간도 시프트 근무라 8시간을 돌아가며 해야 하는데. 아직 이런 근무 시간을 견뎌 주기엔 아이들이 힘들지 않을까? 시터라도 써야 하나? 면접도 아직 안 봤으면서 이상하게 합격한 이후 일을 걱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면접날. 1시간 30분을 걸려 종로로 갔다. 보안이 철저한 건물에서 방문자 카드도 받고 당당하게 입성하려는데 카드가 안 찍힌다. 답답한 표정의 보안요원이 대신 찍어주고 어버버버 하며 면접을 보러 올라갔다. 연락 오고 바로 그다음 날 가서 간단한 영어 자기소개만 준비했는데 아뿔싸 영어시험도 있네? 아무래도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있는지 미리 알아보는 듯했다. 머리를 쥐어짜가며 겨우 답안을 써놓고 숨 돌릴 틈 없이 면접이 시작됐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두 팀장님은 내가 나이가 많은 건 상관없는데 아이들이 있으니 장기 결근을 할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궁금해했다. 급하게 퇴직해서 쉬고 계신 아빠를 떠올리며 아빠가 집 근처에 사시니까 문제없다고 둘러댔다. 실제로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거리에 사시는데 말이다. 왜 하던 일을 안 하고 다른 분야를 하냐고 묻는다. 사실 제가 대학 졸업할 때 이쪽으로 오려다가 기회가 생겨서 다른 일을 먼저 시작한 것뿐이에요. 늘 이 분야에 미련을 두고 있었어요. 스스로도 잘 둘러대는 것 같아서 속으로 기가 찼다. 나이 먹고 늘어난 건 이런 연륜뿐인가 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버벅대며 롤플레잉 테스트도 하고. 마침내 면접이 끝났다.


 면접을 위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던 인사팀 직원은 나와 같은 엄마라고 했다. 상냥하게 웃으며 면접 잘 보셨어요 묻는데 맥없이 빙긋 웃었다. 사실 면접 전에 이런 질문이 나올 거 같다며 도움을 준 것도 그녀다. 같은 엄마로서 도와준 걸까 아니면 모든 면접자에게 알려주는 걸까? 문득 궁금했지만 서둘러 회사를 빠져나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기 전에 가야 하니까 말이다. 오랜만에 타본 1호선에서 겨우 자리가 나서 앉았더니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는지 피곤이 몰려온다. 역시 나이 들어서 새로운 일 구하기는 힘들구나. 우울하던 찰나에 인사 담당에게 전화가 왔다. 팀장님이 **님을 잘 보셨나 봐요. 일 나오시면 될 거 같아요. 오퍼 드릴게요.


 정말? 이렇게 빨리 합격 여부를 알려준다고? 사람 구하는 게 급했나? 아니면 다들 일단 왔다가 힘들어서 나가떨어지는 걸까?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일단 감사하다고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현실적인 걱정이 몰아쳤다. 막내는 아직 어린데 내가 안 데려다줘도 혼자 학원을 다닐 수 있을까? 개를 무서워해서 길에서 혼자 보면 지난번처럼 울면서 전화할 텐데. 저녁밥은 어쩌지? 남편은 9 to 6 근무이고, 약 1시간만 앞뒤로 조정이 가능한 상황인데 내가 야간에 퇴근하면? 남편이 야근하거나 출장 가면? 아이들은 누가 돌봐주지? 끝없는 물음표를 안은채 집으로 갔다.


 저녁에 남편과 술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제일 걱정되는 건 고정적이지 않은 출퇴근. 그는 내가 하고 싶다면 방법은 어떻게든 나온다 한다. 날 위해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태산이다. 그리고 그 걱정은 겉으로 보기엔 아이들 걱정 같지만 알고 보면 10년 만에 사회로 나가는 나에 대한 불신이다.


 이 불신은 아직도 나에게 이곳 말고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한다. 애들이 아직 어리다고, 더 열심히 노력하면 육아를 하면서도 집에서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다시 회사라는 조직에 속하는게 두려운거지.


 하지만 이제 냉정하게 월급에 기댈 때가 됐다. 익숙했지만 10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을 정글로 다시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나도 많이 바뀌었는걸. 지금의 나는 견딜거고, 해낼거니까. 괜찮다. 잘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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