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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May 25. 2021

반쪽짜리 올빼미

루틴 해야 그나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 거지의 몸에 깃든 올빼미의 정신, 그 괴리에서 부적응기를 보내고 있다.


10대 시절부터 20대 초중반 까지를 올빼미로 보냈다. 고요 가운데 감성이 충만했던 밤과 새벽을 사랑했었고 오후부터 밤까지의 능률이 좋아 그 시간대에 많은 일을 해내었던, 아침잠이 많아 등교가 고되던 올빼미.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도 전혀 졸지를 않다가 학교를 포함한 집 외에서의 생활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학교에서 조는 일도 많아졌던 고등학교 시절. 양심상 엎어져 자는 일은 꿈도 못 꾸고 꾸벅꾸벅 졸던 아이. 그러다 지적도 많이 듣곤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스스로를 저질체력의 소유자로 여기며 타고난 건강체다 혹은 체력이 좋다 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돌이켜보니 그래도 그때는 참 어렸다. 어려서 견딜 수 있었던 빡센 스케줄과 수면부족이었다. 오로지 'Young blood' 였기에 가능했던 일정이라고나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수업시간에 존 것이 잘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때 들은 꾸중과 반 친구들 앞에서 선사받은 수치심은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단순한 지적이나 뒤에 서있는 정도의 선에서 그쳤다면 억울한 마음까진 들지 않았을 텐데. 이른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등교하고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보충수업에, 야자에, 그 후 종합학원까지. '집에 다녀오겠습니다.'가 생활이던 시절, 저질체력인 내가 어떻게 학교에서 졸지 않고 버틸 수 있었겠는가.



이야기가 샜는데, 어쨌든 간에 그 시절 나는 올빼미였고 몇 년 전 썼던 글의 일부에도 이런 내용이 있을 정도로 고요하고 편안한 밤 시간을 사랑했었다.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시간이다)

"아침잠이 많고 밤잠이 없어 한 번도 아침형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나는 늘 올빼미였다.
일출보다는 일몰을 더 많이 봤고, 저물어 가는 하늘 끝에 사라지는 일몰을 사랑한다. 까만 밤과 어스름한 새벽에만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내밀한 감성과 서늘한 밤공기, 까만 하늘을 보며 걷는 밤 산책,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이야기들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잠에 들겠지만 나는 착한 올빼미는 아닌 것 같으니 이 밤을 좀 더 즐겨야겠다."


평소, 아침 시간에는 신경이 곤두서는 편이라 말수는 줄어들고 작은 소리(또는 반복되는 소리)에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예민 모드가 되거나 머릿속에서 생각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경험을 자주 한다. 졸려서 멍 때리고 있거나 피곤에 쩔어 있는 얼굴로 집안 한 구석에서 빈번하게 발견되고는 한다. 오후로 접어들면 점차 살아나서 저녁~밤까지는 상태며 활력도 좋고 공부든 일이든 글이든 취미생활이든 작업 속도도 좋다. 그러니 내가 인생 대부분을 올빼미로 살아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한 괴리로 인한 비극이 시작되었다.

아침 활력 거지이자 여전히 올빼미 라이프를 선호하는 저녁형 인간의 소울을 지닌 나의 몸뚱이가 실은 루틴한 삶을 살아야 건강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마냥 '나는 빼박 올빼미니까 오후에 시작해서 저녁, 밤에 활동하고 일하면서 아침에 자면 돼. 그게 내 체질에 맞아.'라는 마인드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뭐 어쩌라는 건가 싶다. 알면 알수록 '내' 비위 맞추기가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몸과 정신의 대립이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랴.


'찐 올빼미' 시절 습성이 남아 가끔 밤이나 새벽 시간에 무언가 옴싹 옴싹 작업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나를 위한 보상의 시간으로 삼고는 하는데, 이게 오래 유지되면 될수록 몸이 견디질 못한다. 뒤가 없이 지나치게 늦게 잠드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면 패턴이 망가지면서 추후 일정과 건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치곤 한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입 안에 뭐가 나고, 두통 및 담이 속출하며 소화도 잘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상적인 수면시간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면 다음날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생활 자체가 힘들고 머리에 안개가 자욱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뇌가 기름칠 안 한 톱니바퀴처럼 끼릭끼릭 굴러가는 느낌이랄까. 그러니 점점 밤을 새우는 일은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되었다. 수면부족은 컨디션에 치명적이다. 또 하나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온다. 혹시 노화인가...? 잠시 눈물 좀 닦고 마저 이야기하겠다.


실제로 루틴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면 (예를 들어, 임무가 주어지거나 일을 하게 되는 경우를 말하며 자율적으로는 잘 안 되는 편) 피로하기도 하고 체력적으로 좀 힘들긴 하지만 건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벽녘 아무 시간에나 자고, 배가 고프지 않으니 아무 시간대에 되는 대로 줏어먹고, 또 잠이 안 와 늦게 잠드는 그런 생활은 건강에 상당히 좋지 않았다. 불규칙적인 수면 패턴에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오고, 멍했고, 피로했다. 활력 부족도 모자라 활력 거지가 되곤 하는 것이다. 다시 정상적인 수면시간으로 돌아가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불면과 체력 거지, 무기력에 잠식해 살았던 지난한 시간들이 그 몸 상태의 차이를 명료하게 직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올빼미의 생활보다는 만성 무기력의 시간들이었구나 싶어진다.


결국은 밸런스다. 최근 단기로 일을 하고 휴식기를 잠시 갖고 다시 일을 하는 시간들을 반복적으로 가졌다. 일을 할 때는 아침형 인간처럼 아침에 출근하고 오후에 퇴근하여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휴식기에는 조금 올빼미에 가까워진 생활을 하고 있다. 대신 올빼미 타임을 보내는 시기에는 무기력의 시간들처럼 아무 시간대에 눈을 감고 뜨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한계치를 정해둔 상태로 조금 늦게 자면서 밤 시간들을 보내고 조금 늦게 눈을 뜨는 정도의 생활을 유지했다. 일종의 규칙적인 올빼미 상태로 주말 및 휴식기를 보내는 셈이다. 이렇게 하니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아침+저녁 결합형의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고용은 불안하지만 이런 방식의 생활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사 프리랜서의 삶이랄지)


여전히 규칙적인 삶과 소소한 일탈로서 심야와 새벽을 즐기고픈 마음 사이에서 어설프게 줄타기 중이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마음대로만 생활하기에는 조금 더 체력적으로 버티기 힘들어졌고, 일상을 위한 건강을 조금씩 더 챙겨가야 한다는 것. 뒷일 생각 않고 마음껏 새벽까지 심야시간을 보내는 일은 이후에 쉬는 날이 보장되어 있을 때 가끔씩 즐길 것. 그러니 반쪽짜리 올빼미임을 인정하고 건강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괴리 한가운데 줄타기 고수가 될 것. 어쩔 수 있나, 여전히 올빼미 타임은 포기가 되지 않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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