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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과의 대화

2025년 2월 12일 수요일

by 제갈해리 Feb 13. 2025
여동생과의 대화

여동생의 대화, 그 발단은 내가 여동생에게 인스타그램 DM으로 위키트리 뉴스 게시물을 보냄으로써 시작되었다. 위키트리 뉴스는 최근 바뀌고 있는 결혼식 문화 중 키오스크로 축의금을 보내는 새로운 현상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 메시지에 여동생이 답장을 보내왔다.


"오메... 이건 좀 그렇긴 하네."

"그렇지? 좀 심한 듯."

"."


여동생과의 대화

또, 나는 "맞벌이 부부, 육아휴직 최대 3년 보장... 23일부터 시행"이라는 뉴스 기사 게시물을 동생에게 보냈는데, 동생이 글을 읽더니, 답장을 보내왔.


"나 어제 잘렸어. 결혼한다고..."

"어? 무슨 말이야? 잘려?"

"수습기간이었는데, 경력에 비해 나이도 있고, 결혼까지 하니까."

"헐..."

"싹을 잘라버린 거지. 오래 일 못할 거 뻔하니까."

"아이고, 참... 너무하네."

"어쩔 거야, 뭐. 집에서 쉬면서 애한테 신경 써야지."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 낳고 기르는 데 집중하는 게 좋겠다. 그러면 매제 어깨가 무거워지겠네. 남편, 아빠로서 책임감이 크겠네."

"오빠, 남자도 나이 들면 갈 데 없어. 잘 생각해야 해."


여동생의 이 말에 나도 나이가 먹었고, 뚜렷한 직장이 없다는 사실 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나도 37살이니, 갈 데가 없지. 경력도 아니고, 신입이 37살이면 나라도 안 뽑을 거야. 그래도 투잡 구하는 중이야. 면접도 계속 보고 있고, 쿠ㅇ도 지원하고 있고... 근데 오라고 하는 데가 없네..."

"투잡을 하지 말고, 하나를 제대로 일해야 해."

"요즘 불경기라... 사람을 잘 안 구하는 거 같아."

"불경기인데, 경쟁력이 계속 떨어질 텐데, 안 그렇겠어."


여동생의 말대로 요즘 대한민국 경기가 불경기인 상황에서 경력직도 아닌 신입인 37살의 내가 20대 취준생들과 경쟁력 면에서 앞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기술이나 어학 자격증조차도 없는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기업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도 여동생에게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뭐라도 배워야지, 그러면. 그래야 써먹지."


여동생과의 대화

그러면서 요즘 인터넷에서 광고를 많이 하고 있는 취업 보장 강의 사이트를 동생에게 공유했다.


"이건 어때? 취업 목표로 배우는 건데..."

"오빠, 지금 너무 늦었어."

"20대 때 했어야 한다고?"

"저거 배우면 오빠 30대 후반인데, 신입인 거야. (회사에서) 안 뽑아. 나도 지금 들어간 회사도 잘리는 마당인데..."

"그렇지. 그렇네... 에휴. 창업하는 게 좋은데..."


순간, 저번에 막내 고모부가 말씀하신 편의점 창업이 생각났다가 요즘 젊은 층들이 너도나도 많이 뛰어드는 유튜브 시장에 뛰어드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유튜브 같은 거 해 보는 게 어때? 너 기획 잘하잖아."

"고민 중이야. 뭐가 됐든 일을 하긴 해야 하니까."

"꼬북이가 그러는데, 나더러 책이나 영화 리뷰를 해 보라고 그러더라고. 아니면 책 읽어주는 남자 같은 거. 목소리가 부드러우니까 괜찮지 않나 싶어서... 또, 꼬북이가 그림을 잘 그리니까 너랑 나랑 꼬북이랑 (힘을) 합치면 유튜브 콘텐츠 하나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영상 편집 기술이나 웹디자인 기술도 배워서 갖추면 되고."


나는 그동안 꼬북이와 상의했던 유튜브 콘텐츠 계획에 대해 여동생에 말했다. 그렇지만 여동생은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큰둥한 반응으로 메시지가 돌아왔다.


"난 모르겠다. 오빠가 하고 싶으면 해."

여동생과의 대화

"국비지원으로 영상 편집 기술 배워 보려고... 그리고 웹소설 강의도 들어 보고. 국비지원이 어디까지 되는지는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아야겠지만... 참, 엄마가 알려주신 인천 e캠퍼스, 거기서 수강도 할 수 있겠더라고. 영상 편집 과정도 있어."

"영상 편집은 유튜브 보고도 할 수 있어. 일단, 유튜브로 먼저 해 봐. 다 나와 있어. 일단 해 보고 학원에 가."

"유튜브로... 그래, 알았어. 학원 왔다 갔다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지, 뭐."

"해 보고 계속하고 싶으면 더 부족한 걸 학원에서 배우고 싶으면 학원 가는 거야. 학원도 사실 별로 가르쳐 주는 건 없어."


나는 이것저것 동생에게 방법적인 것들을 던져 보며 여동생이 어떻게 생각하나 그 반응을 살폈는데, 이럴 때 보면 동생이 꼭 누나같이 말하는 면이 있었다. 나는 꼬북이와 그동안 얘기했던 것 중 하나인 웹툰 같은 것도 얘기해 보려 했다.


여동생과의 대화

"그런데 이런 캐릭터, 꼬북이가 되게 잘 그리거든. 유튜브로 이런 캐릭터를 콘텐츠로 만들어도 좋을 거 같아."

"하고 싶으면 해."

"일단, 꼬북이하고 얘기해 봐야지."

"응."

"그리고 꼬북이도 지금 알바만 하는 것보다는 생산성 있는 걸 해야 돼."

"오빠나 잘해. 지금 아르바이트하면서 잠만 자는데... 나머지 시간을."

"알았어, (잠자느라) 시간 낭비 안 할게."


잠을 많이 자서 하루 시간을 오롯이 낭비하고 있는 내 상황을 알고서는 이런 얘기를 하는 여동생이다. 나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있는 동생이라고밖에 얘기할 수가 없었다. 동생은 내 얘기를 그래도 잘 들어주고 있었다. 약간 반신반의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유튜브 콘텐츠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까지 해서 업로드할 수 있겠어?"

여동생과의 대화

"해봐야지. 목표가 생기면 그래도 활력이 생길 거 같아. 혹시 '퓨처셀프'라고 요즘 유명한 책 알아?"

"몰라."

"자신을 과거에 규정짓지 말고, 미래의 나로 현재를 만들어 가라는 이야기인데, 지금 초반부를 읽고 있거든. 정신이 확 깨더라. 이런 류의 사고방식은 처음이랄까. 심리학을 아예 전복시킨 듯.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하나씩 계획해 나가면서 미래를 기반으로 거꾸로 현재에 적용해 살아가라는 거. 획기적인 생각이더라고. 그런데 요즘 미국이나 여기 한국에서 이 책이 인기래. 한국에서는 벌써 30만 부 이상이 팔렸다네."

"응. 기회 되면 나도 한 번 읽어볼게."

"그래, 읽어 봐. 패러다임을 바꾸게 하는 책인 듯. 아무튼 너도 네 안에 여러 가지 콘텐츠들이 있을 거 아니야. 그걸 또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기획해 왔던 것도 있고... 한 번 이번 기회에 너도 네 자신의 가능성을 가만히 들여다봐."

"응, 그래야지."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 나이 먹고도 기회는 있을 거라고. 우리가 늦은 것만은 아닐 거라는..."


나는 연이어 '퓨처셀프'라는 책에 대해 거의 신실한 신자가 되어 예찬론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동생의 말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내 기분에 찬 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현실감각은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

"그건 그렇지만, 뭐라도 가능성 있어 보이는 건 붙잡아야지 않냐 이거지."

"뜬구름 잡는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현실적으로) 당장 돈을 모을 생각부터 하는 게 좋아. 그건 그 후에, 가능성은 그 이후에나 생각할 수 있어."

"그래, 알았어."

"오빠가 제 한 몸 잘 건사하면서 지냈으면 좋겠어. 스스로 떳떳하게."

"그래, 알았어. 고마워."

"나 이제 좀 쉴게."

"너도 힘내고, 응원할게."

"응, 고마워."


여동생과의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여동생에 비해 내가 철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동생은 MBTI가 ST이고, 나는 NF라서 대화 자체가 이런 식으로 흘러갔던 것 같다. 나는 대단히 관념적이고, 몽상적이지만, 여동생은 감각적이고, 현실적이다. 여동생과 대화하고 있으면 가끔 차갑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여동생의 입장에서는 내가 열정이 너무 불타 올라 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다른 우리 남매는 그래도 지금 현재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이런 대화도 나누고 있고, 서로 응원도 해주면서 지내고 있다. 앞으로 서로의 상황이 나아지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노력을 해나갈지 지켜보면서 가족으로서 함께 이런 대화를 지속해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어쨌든, 냉정한 누나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빠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동생이 있어 정말 든든하고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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