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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Sep 19. 2020

“우리는 살고 싶다.” 아이들의 절박한 외침

  기후위기비상행동

“이른 아침 산책의 기대로 마음이 설레어 잠에서 떨쳐 일어나지 않는다면, 첫 파랑새의 지저귐이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눈치채라. 당신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버렸음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 생각나는 날씨였다. 시리고 파란 하늘과 미세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공기, 이런 날엔 무작정 숲으로 가야한다. ‘산책의 기대로 마음이 설레어’ 가까이 사는 동갑내기 친구 S에게 문자를 보냈다.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친구를 만나 함께 즐겨 걷는 ‘고모재 옛길’로 접어들었다. 쉼 없이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흙을 밟고 걸을 수 있는 산자락 숲길. 지금 같은 시기에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음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 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 반듯한 계곡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S가 보냉병에 담아온 오미자차를 컵에 따라 주며 아들 얘기를 꺼냈다.


“**이가 쓴 글인데 너무 애절해.”

친구가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피켓을 든 친구 아들 사진이었다. ‘제게는 꿈이 있어요, 살려주세요 “라고 쓴 피켓을 든...

친구 아들은 오롯이 본인의 선택으로 올해 제천 간디중학교에 입학했다. 한 마을에 살며 다섯 살 꼬마 때부터 지켜보아 온 아이. 책 읽기를 좋아하는 말 수가 적은 아이였다.


 “9월 12일에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있었는데 그때 글을 써서 이 사진이랑 올린 거야.”


14세 소년이 올린 장문의 글은 친구 말대로 절절했다. 일부분만 발췌하면,


요즘 관심 있는 것은 너무나도 많다. 기후위기, 페미니즘, 동물권, 채식, 글쓰기를 포함한 수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인 기후위기와 동물권이다. 우리에게는 채 10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그 안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멸망이라는 큰 관문 앞에 놓일 것이다.


머리를 세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원래도 고기를 잘 안 먹었는데 지금은 완전 비건이 됐어. 빈혈이 있어서 성인이 될 때까지는 그래도 고기는 좀 먹었으면 하는데 말이야.”  


어린아이로만 여겼던 동네 꼬마가 성장해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을 쓰고 비건을 실천하는 모습에 부끄러움과 대견한 마음, 안타까움 등 수없는 감정이 교차했다. 환경단체 회원으로 전국 곳곳의 집회 현장을 누볐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 계속 마음이 요동쳤다. 밖으로 꺼내고 싶은 활자들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나를 몰아붙였다.  자꾸 쓰기를 종용하는 목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왔다.

 ‘쓰고 싶다.’라는 마음에서 ‘어떻게 쓰지?’라는 생각으로 며칠을 흘려보내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라는 마음으로 괴로워하다가 노트북을 열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구 엉킨 실타래처럼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이토록 글이 안 써진단 말인가?'


글을 쓰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를 연출했던 PD가 나왔다. 지난해 6월에 방영했던'인류세'라는 다큐와 그 뒷이야기를 엮어 펴낸 책,〈인류세:인간의 시대〉에 대해 '북카페'의 윤고은 디제이와 주고받는 대화가 들려왔다.  나도 충격과 놀라움으로 시청했던 다큐였다.  마침 쓰려던 글의 주제와 맞닿는 이야기라 글쓰기를 멈추고 볼륨을 한껏 높여 대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내 글쓰기는 다시 방향을 잃고 휘청거렸다.


최피디는 지질시대를 대표하는 한 동굴로 촬영 갔을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수천 년 된 아주 영험하고 깊숙한 동굴 안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물체. 그건 바로 플라스틱이었다는 것. 두 사람의 대화는 미세 플라스틱과 해양오염, 플라스틱 재활용과 코로나로 인한 배달음식 쓰레기 문제로 이어졌다.


"우리도 이제부터 플라스틱 안에 든 음료는 사 먹지 말자."

라디오를 들으며 같이 점심을 먹고 있던 딸에게 말했더니,


"어차피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그런다고 되겠어? 그냥 아주 조금 지구 수명을 연장할 뿐이지."


열두 살 딸아이의 냉소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밥을 먹고 다시 글쓰기를 이어가려 했지만 여전히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라디오를 듣고 있자니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대체 무슨 말을 쓰고 싶었던 거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계속 자문해본다.  모두 다 아는 얘기, 수없이 들어온 얘기. 하지만 몹시 불편한 얘기이기 때문이리라. 환경을 얘기하는 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매우 듣기 싫은 어른의 잔소리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산골마을에 들어온 지 13년 쨰, 도시에서의 편리를 많이 버리긴 했지만 내가 과연 지구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새삼 들었다. 버리고 비워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았다.

그날 친구가 계곡에서 보여준 사진 한 장이 일주일 넘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  오늘 꼭 발행해야만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아 두서없는 글을 올려본다.  지금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거리로 나온 우리 아이들의 절박함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며, 그들의 목소리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가 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고 싶다.

'우리의 봄과 아침이 지나가 버리기 전에',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이 자연을 누리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도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데, 고작 목소리 내길 주저하겠는가.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게 목소리를 못 낼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중에서. 타일러






*사진출처:기후위기비상행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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