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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bbit Apr 01. 2020

코로나 19 사태를 영국에서 겪으며

다를 수밖에 없는 대처 방식

코로나 19 사태로 전 세계가 시끌벅적한 2020년 3월, 아들 겨울방학을 맞아 유럽 여행을 왔다가 귀국하지 못하고 영국에 있게 되었다. 


한국의 코로나 19 사태는 뉴스와 지인들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영국은 한 달 뒤에 직접 경험을 하면서 두 나라가 같은 Pandemic에 다른 접근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확진자 수나 사망자 수 등의 통계와 상관없이 각 정부가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어느 쪽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전혀 다른 국민성과 의료체계, IT 인프라 차이로 인해 한쪽의 방식이 다른 쪽에는 적용이 불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1. Trace & Isolate 

코로나 사태에 대한 각국의 대응 방식을 재치 있게, 바로 와 닿게 요약해 놓은 '짤'들이 있다.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마무리는 대부분 '한국은 조용히 죽고 싶어도 가만두질 않는다. 경찰 동원해서 환자 찾아내서 병원에 넣고 치료한다.'의 맥락이다. 3월 21일 자 영국 bbc 뉴스 중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서방국가들이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배울 점을 나열한 기사가 있다. 그중 한 꼭지에 싱가포르와 홍콩의 예를 들면서 확진자가 나오면 확진자의 격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접촉한 사람들도 관리한다는 내용을 실었다. 하지만 이 내용 마지막에 싱가포르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나라는 작아서 가능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우리와 똑같이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그렇다면 싱가포르의 9배가 넘는 인구를 가진 우리나라는 어떻게 싱가포르나 홍콩과 같이 추적해서 격리하는 방식을 쓸 수 있었을까?


2. Big Brother라도 괜찮다면...

COVID-19가 한국만의 문제인양 느껴졌던 3월 초, 우리나라의 확진자 경로 정보가 공유되는 것을 듣고 대단하다고 느꼈던 내가 자랑스럽게 영국인 시부모님께 설명을 했다.  엄마가 다녀오신 슈퍼마켓이 확진자 경로에 포함되었다는 정보가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정확히 몇 시에 그 슈퍼마켓을 방문했는지  알려주어서 엄마가 다녀온 시간보다 이후라는 것을 알고 안심을 했다고. 이런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경찰과 공무원들이 과로를 하고 있어서 안쓰럽다고. 그랬더니 영국 시부모님의 첫 반응. 

"정부가 개인의 사생활을 그렇게 다 파악해도 괜찮아?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단 말이야? " 


그 '짤'이 생각났다.  

영국: 죽음조차 개인의 자유, 죽든 말든 각자 알아서 할 일이며 국가가 관여할 일은 별로 없다.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없는 삶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마그나카르타의 전통임을 재확인한다.


영국인들에게 국민들 개개인의 삶에 관여하는 정부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독재적인 Big Brother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3. IT 인프라 

3월 중순, 영국이 전면 봉쇄에 들어가자 시어머님이 새삼 물어보신다. 

"한국은 회사도 다니고 하는데 왜 영국은 전면 봉쇄를 해야 하는 거니?" 


한국의 확진자 경로 파악, 정보 공유, 추적 및 테스트. 3월 초에 했던 얘기를 다시 해드린다. 열흘 넘게 가택연금 같은 자가격리 생활을 하고 계셔서인가... '감히 정부가 어디 개인의 사생활을!' 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영국은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많지 않고, 법으로 허용되어 있지 않아서 신용카드 거래 내역을 바로바로 볼 수도 없을 거야.. 파악이 되어도 그 정보를 공유할 방법이.. 글쎄..."


1990년대 런던 MI6 사령탑에서 중동 사막에 있는 제임스 본드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이어폰을 통해 교신을 하는 최첨단 통신장비를 선보였던 영국의 이미지는 역시 영화 속 이야기였던 걸까. 하긴 우리나라는 인터넷 1 Giga 시대를 영위하고 있는데, 2019년 5월 Computer Weekly에 영국 가정의 평균 인터넷 속도가 전년대비 20% 증가해서 50 Mbps를 넘었다는 기사를 실은 것을 보면 보편적인 통신 인프라가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다. 

당시 영국의 인터넷 속도가 세계 31위라는 Computer Weekly 기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개인 고유번호로서  주민등록번호를 적극 활용하고, 핸드폰 번호와 연계되어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10여 년 전 보험사의 경영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었을 때 생각이 난다. 영국은 시스템에 개인 고유번호로 사용할 수 있는 번호가 없어서 보험금을 이중으로 수령해도 시스템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했었다. 핸드셋과 별도로 USIM을 사서 쓸 수 있기 때문에 내 핸드셋에 여러 전화번호를 사용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의 핸드폰을 추적해서 동선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기술적으로도 힘든 일이다. 


4.  NHS (The National Health Service)

영국인들에게 유일하게 주어지는 고유번호는 NHS 번호이다. NHS는 The National Health Service의 약자로 국민의료보험 번호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 번호를 고유번호로 적극 활용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지나가는 영국인들에게 당신의 NHS 번호가 뭡니까? 하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10에 한 명이나 될까 하는 정도이다. 


그래도 NHS가 있어서 영국 국민들은 치과치료를 제외한 모든 의료 혜택을 무료로 받는다. 얼마 전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우리 시아버지께 의료비에 보태시라고 봉투를 보내려는 우리 엄마한테 수술비와 입원비 전체가 무료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던지... 그렇다고 최상의 서비스만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도 그 서비스 수준이 어느 정도 타협이 되어도 이해하는 듯하다.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해결한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유행하여 전염병 확산의 피해를 겪어본 우리나라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 개정하였고, 테스트 키트 구축 관련 체제도 마련해 둔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평소  6천6백만 영국 국민에게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느라 여유가 없었던 NHS는 그 대책 마련에 한계가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는 3월 초, 보리스 국무총리가 나와서 NHS의 호흡기 병상 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이 병상수를 넘지 않는 수준으로 한 시점의 COVID-19 확진자 수를 관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을 때, 대부분 영국인들은 수긍하는 듯했다. 


그 계획의 일부에 전면 봉쇄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었을까? 하지만 정부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국민성, Tracking을 하기에는 역부족인 IT 인프라, NHS의 한계를 고려한다면 영국 정부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5. 로마법을 따르자니...

드디어 특별기 편으로 한국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 

그런데 항공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공항 및 기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해 달라고. 


어제 BBC Radio 2 프로그램에 의학 자문을 하는 꽤 인기 있는 의사 Sara Jarvis가 나와서


'COVID-19 감염자가 아니면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마스크를 쓴다고 자기의 감염률이 낮아지지 않을뿐더러 당신이 마스크를 써서 NHS 의료진의 마스크가 줄면 당신이 그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라며 제법 강도 높게 죄의식에 호소하며 당부를 했었는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을 잠재적 감염자로 보고 마스크를 쓰도록 하는 방역 방침이니까, 그리고 항공기 안에서 공기가 Recycle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여러모로 맞는 지침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곳 영국 시골에서는 코로나 사태 전에도 마스크를 살 수 있는 곳이 없었기에 지금이라고 마스크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 참으로 곤란하다. 다행히 아들 비염 때문에 가지고 온 수면 수분 마스크가 세 개 남아 있으니 그걸 쓰고 가면 되겠지만  나와 비슷한 문제에 당면한 승객 중 마스크를 구입 못한 사람들은 어쩌나 싶다. 


오랜 해외생활과 풍부함 해외여행 경험, 전 세계 다양한 친구를 가지고 외국인과 살면서 늘 사람 사는 것은 여기나 저기나 같다고 주장했었는데 이번만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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