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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원 Feb 08. 2022

生 과 思

 태어남과 이별에 대한 기억

生     

 산고가 어떠한 것인지 나는 알 턱이 없습니다. 나는 사내아이로 태어나 지금까지 남자라고 뻐기고 사니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나를 낳으신 음력 칠월 칠석날 새벽의 일을 상상해 봅니다. 어머니가 생과 사를 넘나들며 장판 깔린 방 안에서 부대끼고 신음하셨을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그 해 여름은 오지게도 더웠습니다. 날이 다르게 불어오는 배를 만지며 장손의 며느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에 짓눌려 이번 만은 아들이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이미 딸 여섯을 낳은 것만으로 세상의 모든 죄를 지은 듯 괴로워하셨을 겁니다. 19살에 시집와 딸 여섯을 낳고 36살에 나를 낳을 동안 꽃다운 이십 대는 잘 생기시고 점잖은 아버지를 만나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내가 태어나던 그날에 어머니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나를 받아낸 산파는 아버지의 외할머니셨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외 징조 할머니를 다르게 불렀는데 입에서 맴돌고 맙니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물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그 아버지도 이제는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어머니는 다른 아이를 낳을 때와 다르게 배가 끊어질 듯 아프고 땀으로 범벅이 되어 방바닥을 돌아다니며 산고를 겪었습니다. 초저녁에 진통이 시작되었는데 새벽이 가까워지도록 끊어질 듯 한 허리가 꺾여나갔습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진통에 항복하고 일어서기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다 산파 할머니가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아~ 이일을 어쩐다냐... 다리가 먼저 나왔다. 고추가 달렸다. 어미야... “ 어쩌면 어머니는 그 고추가 달렸다는 말에 정신을 가다듬고 살이 찢기는 고통에 항복하지 않고 더욱 큰 고통으로 몰아갔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제때 나오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던 나는 산파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세상에 나왔습니다. 다행히 자궁 안에서 두 손을 들고 만세 부르는 자세를 하고 있었기에 천행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내가 만날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없습니다. 자궁 안에서 입에 탯물이 들어가 숨이 막힌 것입니다. 외 징조 할머니께서 나를 거꾸로 잡고 엉덩이 세게 치니 입에 물고 있던 탯물을 토하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누나들은 모두 엄마가 죽게 생겼다고 울다가 내가 태어나자 너무 좋아서 ’ 우리 엄마가 아들을 낳았다 ‘며 동네방네를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내가 태어나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 이후로 생일만 되면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난 순간을 눈에 그리듯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의 생일이 되면 몸이 더욱 아프십니다.     


  이 새벽이 가면 어쩌면 어머니를 보러 가는 마지막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임종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화를 받고 이번에 내려가면 임종을 볼 때까지는 올라오지 않을 예정이니 내게 남은 한 번의 고향 가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특별한 자식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넘치는 사랑에 버릇없는 철부지였고 사춘기에는 내게 주어진 사명에 고민 많은 소년이었다가 반항하는 나쁜 아들이었습니다. 이십 대는 부모님의 기대와 불안한 앞날 사이에서 잠 못 이루는 방랑의 시간만 진하게 기억됩니다. 제가 결혼하던 나이에 아버지의 연세는 팔십이 가까웠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바라보며 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미 늙고 힘이 다하신 나이에 세상을 헤쳐나갈 저에게 혹 힘은 못 되더라도 짐이 되지 않을까 미안해하셨습니다. 제가 드린 용돈을 이십 년 동안 모아 아버지는 통장에 남기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에게 제발 돈 아끼지 마시고 에어컨 켜고 지내시라고 버럭 화를 낸 적도 있습니다. 더위를 유독 많이 타시던 어머니를 고생만 시키신다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화가 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며 제게 남긴 유언은 어머니에 대한 부탁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남은 생은 서로가 전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 년 동안 잠을 못 이루고 매일 같은 넋두리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의 밤을 지킨 누나들도 서서히 지쳐가고 어머니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시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느 날 저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마지막 사랑을 보이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애들아~ 너희들은 나처럼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월에 이끌려 가지 말고 너희들의 삶을 살아라 “라고 당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누나가 꿈 이야기를 하고 집에 내려갔습니다. 꿈속에 아버지가 수박 두 덩이를 들고 오셔서 한 덩이는 너 먹고 한 덩이는 어머니에게 가져다 주가로 하셨답니다. 아버지가 미안해서 그러니 네가 가져다주라고 하셔서 어머니에게 갔는데 어머니 방에 어머니의 흔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별을 마음속에 준비합니다. 어머니의 걱정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 아들은 든든한 맛이고 딸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아들은 딸이 없어서 어쩐다니~‘ 자식마다 걱정 하나씩 늘어놓다 보면 하루가 갔는데 이제는 그 걱정 놀이도 끝났나 봅니다. 어머니께서 말씀이 사라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모르는 철없는 아들은 어머니의 뜨거운 입술을 기억합니다. ’ 저번 설날에 엄마 끌어안고 뽀뽀했는데 입술이 너무 보드라워 놀랐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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