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책 한 권을 선물로 보내왔다. 이성복 작가의 얼굴이 표지에 담긴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아포리즘(격언) 책이었다. 책은 받았지만 처음 몇 장을 넘기고는 거의 읽지 않았다. 책 속의 내용보다 제목이 던진 화두가 더욱 마음에 와닿아 책을 들고 겉표지를 넘지 지 않고 제목만을 음미하였다. 그 책을 받아 들고 제목을 마주했을 때 고통이란 말이 수만 가지의 알 수 없는 뾰족함으로 나를 찔러댔다. 그 시절 우리가 겪고 있었던 고통에 대해 친구는 이 책의 제목을 빌려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서 나와 푸른 나뭇잎 하나에 비로소 눈길 마주하길 바라는 친구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책을 선물 받은 지 10년이 족히 넘었다.
친구가 술자리에서 말했다. “친구야 내가 보기에 너는 부러울 것 없이 다 가졌는데 무엇이 그리 너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타인의 고통에 눈감고 자신의 고통만을 보는 자는 나뭇잎 하나도 푸르게 하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나는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다시 나의 고통에 빠져드는 일을 숙명처럼 반복하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또 부끄럽다.
다시 책을 들고 보니 이제는 ‘고통’이란 말보다 ‘푸르게 하지 못한다.’는 말이 더욱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고통을 마음에 담아두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몰두한다. 과연 고통이란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통에 휩싸인다.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고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데 하느님도 어려워하는 그 일을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나를 본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단언컨대 확실하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견디는 일이며 나뭇잎을 푸르게 하는 일은 그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른 잎을 온전히 보는 일임을 조금은 알게 된다.
광릉수목원에 다녀왔다.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 무작정 푸른 나뭇잎이 그리워 집을 나섰다. 밤새 나뭇잎이 지어놓은 아침공기를 마시며 봉선사에서부터 포천국립수목원까지 난 길을 걸었다. 여름이 채 오기도 전에 짙은 녹음이 햇살을 가리고 바람이 하늘거리다 사라지곤 다시 나타났다. 이 숲의 고요함을 깨우는 것은 문득 나타난 내 발걸음과 발걸음에 놀란 듯한 새소리였다. 옮기는 발걸음을 붙잡는 자리에 서서 나뭇잎을 보았다. 나는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하는데 이들은 고통에 푸석푸석한 나조차도 푸르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이른 더위 속에 나뭇잎이 만들어 놓은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힌다. 찌는 듯한 더위에 그늘을 만들어 준 나뭇잎 아래에서 나는 그저 염치없이 땀을 식히고 있다. 이 순간 고통은 사라지고 내 마음은 밝은 빛이 감돈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된다. 나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나뭇잎 하나에 감사하니 고통은 사라지고 나뭇잎이 바람에 푸르게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