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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ngmoon Feb 08. 2020

내가 우울한 건 날씨 때문이야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말하는 대로




#하늘에게

내가 일하는 곳에는 비밀의 장소가 있다. 가끔 답답할  그곳으로 올라가  트인 풍경을 바라본다. 나는 그곳을 '바람의 언덕'이라고 말한다. 그곳에 올라가면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마주하게 된다. 높은 건물의 방해도, 회색빛 풍경도 잠시 보이지 않는 널따란 하늘과 맞닿아 있는 .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면 불어오는 바람이 보이지 않는 하늘  편으로  이야기를 가져가  것만 같다. 오늘따라 하늘이 깊이를 가늠할  없을 만큼 깊다. 하늘의 파란빛들이 오늘 나에게 무슨 말이든 털어놓으면, 지금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줄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하늘을   있어서 그래도  감사한 하루였다.



#구름에게

아침에 일어나니 밖이 아직 어둡다. 비가  것처럼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오늘은 분명 비가 오겠지.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어제와 같은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날씨 탓인지, 괜스레 우울했다. 회색빛으로 변한 바깥은 나에게 한 치 앞도   없는 내일과 같이 느껴졌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았다. 구름이 뒤덮인 하늘은  좁았다. 그리고 얕다. 먹구름은 파란 하늘을 가리는 불운처럼 다가온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보아도 차가운 벽처럼 먹구름은 도무지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하다. 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다만 비는 오지 않았다. 



#달에게

오늘은 보름달 뜨는 날이다. 달에게 소원을 말하는 나는 보름달 뜨는 날엔 왠지  이야기를 정말 들어줄 것만 같았다. 유난히 크고 빛나는 달은 까만 밤하늘 한가운데 독보적인 존재였다. 달에게 나는 오늘도 이야기를 전했다. 매일 같이 하늘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너에게 오늘은 나의 이야기가 닿기를. 빛나는 달의 눈빛이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기를. 아련하게 빛나던 달빛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날씨는 생각보다 하루의 기분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어느 날은 내 기분이 우울한 이유를 날씨 탓으로 돌렸다. 

또 어떤 날은 기분이 좋으니 날씨까지 맑아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들이 나에게 먼저 말을 해준 적이 있었던가.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내가 상상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속에 새겨져 이야기를 만들었을 뿐. 

나의 기분을 '날씨 탓'으로 돌리기엔 하늘이, 구름이, 태양이 그리고 달빛과 별빛은 먼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고, 내가 정의하고 싶은 대로 상상했다.


사람들과 사람들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어떤 선입견이라는 것이 이와 비슷할까. 내 상황에 빗대어 보이는 이미지에, 이전에 경험했던 비슷한 패턴의 결과들로 인해서 내 마음속에 먼저 새겨진 것들이 누군가를 멋대로 정의하고 단정 지었던 것은 아닐지.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이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달을 바라봤지만 오늘은 빛나는 달을 가만히 바라만 봤다.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보이는 그대로 그저 바라봐 주는 것도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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