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우리 이제 뭐 해”
신혼여행을 하고 온 첫날 남편에게 건넨 말이었다. 오랜 시간 해온 일이 좋아하는 일도 나를 성장시키는 일도 아님을 깨닫고 직장을 정리했다. 사회생활을 잠정 정리하고 관성이 아닌 진정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공부를 잘했던 남편은 성적에 맞춰 화학공학과에 진학했고, 설렁설렁 마음에 맞지도 않는 학교에 다니다 군대에 갔다. 군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접하고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한다. 훈련하는 틈틈이 잠을 쪼개가면 공부했고 제대 후에도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했다. 평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인생에 가장 큰 고통이었던 그는 설상가상 장 트러블로 출근을 하다 되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출근 없는 사업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사업이 조금씩 자리 잡힐 때쯤 나를 만나 결혼했다.
신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밥 먹고 살림을 하다 보면 남편이 일어났다. 늦게 일어나 곧 일에 집중했고 누가 밥 먹으라고 얘기하지 않으면 컴퓨터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있었다.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일에 푹 빠져있었는데 사업 초기 단계라 바쁜 것도 있었지만 일을 참 좋아했다. 자신의 천직을 찾은 사람은 저런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10년 동안 쉼 없이 일했던 나는 이미 워커홀릭이었고 갑자기 없어진 직업은 애착 인형을 빼앗긴 아이처럼 불안을 몰고 왔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일거리를 만들어 살림에 다 쏟아버리면 남는 건 허무함뿐이었다. 밥벌이를 못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남편을 보며 시기와 질투, 천직을 찾고 싶다는 부러움이 공존하게 되었다.
불만은 커졌다. 빨래를 개든 청소를 하든 관심이 없었고 밥을 먹어도 설거지 한번 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24시간을 같이 붙어있어 생기는 불만이었다. 만약에 남편이 직장을 다닌다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머리로는 그렇지만 눈에 보이면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특히나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것인지 쇼핑을 하는 것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당당했던 나는 작은 일에 상처받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느 날 부부 싸움을 크게 하고 눈물이 뒤범벅된 채 어쩔 줄 몰라하다 작은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얼마나 울었는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주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마치 방의 벽들이 외부의 부정적인 것들을 막아주고 나를 감싸 안아주는 기분이었다. 마음속의 불덩어리가 잠잠해지고 머리는 차갑고 명료해졌다. 그 기분이 좋아서였을까 후로는 습관적으로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가만히 벽에 기대앉은 시간이 많아졌다. TV 소리도 남편도 보이지 않는 곳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평일에 공식적으로 세 번 만난다. 아침과 점심 식사 때 그리고 저녁 이후. 침대 한 개가 전부인 침실과 거실을 같이 쓰고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혼자만의 시간과 가족과의 시간을 적절하게 조율한다. 가끔 시간이 될 때 점심 산책을 하기도 한다. 결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7년 동안 인내하고 나를 지켜봐 준 남편도 힘이 되었지만 그만큼 혼자 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자신을 찾는 일이 가능했다고 믿는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균형을 지켜야 하고, 많은 것이 노출되는 사이일수록 적절히 숨기는 법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영역이 필요하다.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영역이 구축되었을 때 인간의 내면은 더욱더 단단해지고 존중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같은 공간 속에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오늘도 우리는 커피 한 잔씩을 들고 각자의 동굴로 향한다.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