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곰 May 26. 2023

02. 아버지 서른넷의 밤



서른 넷.
아직 마르지 않은 혈기를 머금고

속절없이 흐르는
아내의 눈물과

영문 모를 표정, 두 손 가득
장난감 담은 아이를 보며

다가오는 어둠의 그날을
어떤 기분으로 맞이 했을지

당신의 마음을 저는 알길이 없습니다.

이제는 당신 떠난 그 나이
한참 지난 마흔 문턱에서
소주 한잔 걸치며 인생을 논하고 싶지만.

아직은 마르고 닳은 아버지 묘비
마주하는 것으로 대신 합니다.



또렷히 기억되던 그날

울면서 다그치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씁쓸한 표정으로 말리는 아버지.

그리고 고장난 장난감을 들고 우는 5살아이.


세명이 함께 있던 그날의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내 기억속에 또렷히 남아있다.


한동안 병원에서 지내며 집에 오지 못하셨던 아버지가 그날은 어인 일인지 이른 아침부터 방에 계셨다.


그것만으로 이미 평범하지는 않은 하루 였지만 이날은 여러모로 이상한 날이었다.


우선, 방안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날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이유 모를 긴장감.

아버지 뿐만 아니라, 할머니와 어머니 역시 굳은 표정으로 무언가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


그리고 아무런 날도 아닌데 아버지께서 뜬금없이 나와 내 동생에게 장난감 선물을 주셨다.

사내아이가 로보트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무척 신이 날만한 일인데, 그날의 분위기로 인해 마냥 신나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장난감을 가지고 동생과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아니면 선물을 받았으니 즐거워하는 기색을 보여여 한다는 마음에 신나는 척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다.


여하튼 그 신나는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메칸더브이’인지 마징가z’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그 로보트를 가지고 놀다 대차게 부셔버렸기 때문이다.


 물건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알법한 나이.

방금 받은 물건을 바로 망가트렸다는데 오는 죄책감.


잘못을 저질러서 주변 눈치를 보며 잠시 뻘쭘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무섭게 매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마지막이 된 아버지와의 추억

 고작 5살에 불과했던 나는

잘못했다는 죄책감과, 혼나는데에서 오는 무서움.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어머니가 화를 내는지에 대한 서운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빠르게 떨어지는 자신의 손놀림 만큼 하염없이 눈물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애가 왜이렇게 철이없어!’라며 울부 짖으며..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 말 못한채 큰소리로 우는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 누구도 그런 어머니를 제재하지 못하고 있는데..


잠시 뒤 아버지께서 그렁그렁한 눈과 인자한 웃음을 동시에 띄며 울고있는 어머니를 말렸다.


그때 아버지는 얼굴에 슬픔과 고뇌가 가득하였는데 입은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해 ‘괜찮다, 괜찮다’며 다독이셨다.


그 오묘한 아버지의 표정은 35년의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세상 인자하면서도 너무나도 슬퍼 보였던 그 얼굴.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런 분이 아니셨을까.


 아버지는 그 다음날 큰 병원으로 수술을 받으러 떠나셨고, 다시는 그 방으로 돌아 오지 못하였다. 수술을 받던 도중 이생에서의 삶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서른넷의 젊은 나이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놓고.


아이가, 엄마가, 아빠가

그 후로 남은 우리 가족들은 두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걱정이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알게 되었고, 이미 그때는 아버지가 안계시는게 너무나도 당연해 지고 난 이후였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기억속에서 멀어졌던 그날을, 장난감을 선물을 받았던 그날을 다시금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너무나도 무거웠던 그날의 분위기와 특이했던 각각 개인들의 행동이 다른 관점으로 새롭게 돌아보게 되었다.


처음 돌아본건 5살 어린 나이의 내 자신이었다.

아버지를 떠나 보낼지도 모른채 순진하게 장남감을 받고 좋아하고, 눈치보고, 혼나서 울고 있던 아이.

그 아이에 대한 연민의 마음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하였다.


시간이 지나 약간은 철이 들고 나니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아내.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를 남편에게 좋은 기억을 주고 싶은데 바보같은 큰아들이 혹시나 남편을 서운하게 했을까 싶어 울부 짖으며 아이를 혼내던 한 여인.

그 여인이 느꼈을 속상함과 서운함의 크기는 얼마나 클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리고 내 나이 30대 중반을 넘어들고,

어느덧 아버지가 세상을 등진 나이를 지나갈 무렵 부터는 오히려 아버지의 관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 한참이다 못해 너무나도 어린나이 서른넷.

홀어머니와, 사랑하는 와이프, 그리고 까마득히 어린 두 아들을 보면서.

그는 본인 생의 마지막 날일지 모를 그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 했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잃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직도 제대로 된 작별을 고하지 못한 나는,

가끔 그 분의 그날이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아침을 따스하게 물들였던 빨간 사과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