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남는 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 하지만 ‘승리’하기를 응원함
SF 영화의 두 가지 기반은 상상력과 테크놀로지이다. ‘불가능한 일을 사실처럼 보여주는 눈속임’이라는 영화의 한 단면을 고려할 때, SF 영화의 출발점은 상상력이며, 그 상상의 결과물을 어떻게 영화 테크놀로지 – 특히 특수효과에 의한 스펙터클, 즉 압도적인 볼거리로 만들어 내느냐가 SF 영화의 첫 번째 성패를 가른다.
그리고 SF 영화가 미래와 외계라는 상상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오히려 당대의 시대적 문제를 은유적으로 다룰 때, 관객은 영화로부터 스펙터클의 재미를 넘어 깊은 감동과 의미를 얻게 된다. 또한 영화도 재미있는 볼거리를 넘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고 하나의 세계관을 품으면서 영화적 완성도를 더하게 된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표방하며 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라고 불리는 <승리호>에 대한 평가는 무엇일까?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 '은하계에서 가장 빠른 고철 덩어리'라는 <스타워즈>의 광속 밀수선 팔콘호가 문득 승리호와 겹치기도 하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유쾌하고 독특한 일행이 간혹 떠오르기도 했다. 또한 2092년 병든 지구를 벗어나기 위해 우주 위성궤도에 만들어진,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한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 UTS는 맷 데이먼이 출연한 영화 <엘리시움>(2013년)에서 이미 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헐리웃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SF 영화 장르에 처음으로 본격 진출한 국산 SF 영화 <승리호>의 상상력이 빈곤하다고 비난만 할 생각은 없다. 그 모방의 배경이 ‘영감’을 받은 것일 수도 있고 ‘오마주’ 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거대한 세계시장을 강고하게 지배하고 있는 헐리웃의 빅브랜드들을 모방하여 편승효과를 노리는, 그래서 적은 투자비용으로 손쉽게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는 ‘미투 전략’ 일 수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나는 <승리호>가 보여주는 스펙터클에 주목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특수효과에 의한 압도적인 스펙터클은 SF 영화의 첫 번째 성패를 가르는 요소 중의 하나이며 매우 중요한 기본 역량이다. 사실 탁월한 CG 기술에 기반한 <승리호>의 스펙터클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우주 SF 영화의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는 마블 영화의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감안하면, <승리호>는 매우 가성비 높은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이 영화의 스펙터클을 대형 스크린과 압도적인 사운드가 제공되는 몰입감 높은 관람환경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은 안타깝다.
물론 영화 <승리호>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전에 ‘잘 만든 영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생각나는 대로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차분하고 잔잔한 내러티브 혹은 서술 구조를 가진 영화이다. 둘째는 치밀한 플롯을 갖춘 영화이다, 셋째는 극적인 반전이 있는 영화이다. 이 세 가지 장점 중에 하나라도 갖추면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내용이었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Fried Green Tomatoes At The Whistle Stop Café>(1992년),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1995년) 그리고 <기생충, PARASITE>(2019년)이 이런 장점을 골고루 혹은 한두 개라도 갖춘 웰메이드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는 극작품이고 따라서 영화가 극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볼 때, 영화 <승리호>는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 도입부의 다소 지루한 전개와 중간중간 드러나는 개연성 부족 그리고 산만하게 느껴지는 구성 등으로 인한, 사건과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 저하와 극적 긴장감 부족 등이 그렇다. 더 나아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품고 있는 세계관의 독특성과 깊이에 대한 생각까지 하게 되면 아쉬움이 좀 더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 <승리호>의 ‘승리’를 응원한다. 반면 ‘첫술에 배부르랴’ 혹은 ‘이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라는 ‘다소 나이브한’ 반응은 탐탁지 않다. 그리고 ‘두어 시간 심심파적으로 보는 영화에 무얼 그리 많은 것을 기대하느냐’는, 영화에 대한 지나치게 가벼운 혹은 냉소적인 태도도 경계한다.
영화는 대중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친숙한 오락물일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영향력이 크고 산업적으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텐트폴 영화로 기대되었던 한국 최초의 본격 우주 SF 영화를 접하면서, ‘진지한 재미’를 선사하는 더욱 잘 만들어진 SF 영화가 나오길 바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바라는 점은 영화 <승리호>를 상영관에서 다시 보고 싶다는 것이다. 최근 아이맥스관에서 다시 본 <인터스텔라, Interstellar>(2014년)의 감동 때문이다. 이미 수차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스크린과 압도적인 사운드를 통해 다시 접한 <인터스텔라>는 또 다른 재미와 한층 깊어진 감동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