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지기 Sep 18. 2023

관계의 변곡점을 맞이하여

제가 너무 쩨쩨한가요?

오래간만에 같은 직장 친구를 만났다. 업무 차 친구 직장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겸사 밥 먹자고 연락을 했다.

꽤 친한 사이지만 내가 아프기 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인과의 연락을 정리했으므로 오랜만에 만남이었다.

친구 남편 역시 동갑내기로 결혼 전부터 같이 어울려서 애들 데리고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친구와 여행계도 따로 가지고 있을 만큼 친분이 깊다.

그런데도 연락할 수 없었던, 차마 못했던 사연을 얘기하고자 용기를 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는 차를 바꿨다고 새로 산 차를 보여주기에 축하한다고 차 좋다고 다음에 시승식 시켜달라며 식당으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가서는 아팠던 것부터 요즘 겪고 있는 전세보증금 이야기까지 사연이 길었지만 대충 정리해서 짧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듣는 태도가.. 영 아니다.

바깥을 쳐다보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게 내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는 모양새다.

재미도 없는 얘길 한 내 불찰이었다고 후회하며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그 친구가 이사도 했고 차도 바꿨다고 했으니 그 얘길 물어보자 신이 나서 말을 늘어놓는다.

아... 그런데 여기에 마음이 턱 걸리는 내용이 있다.

사연은 이러하다.


2019년 4월, 친구네 차 한 대가 수명을 다했다.

SUV는 친구가 타고 경차는 친구 남편이 타는데 퇴근길에 남편 차가 퍼져버렸다고 중고차를 사려니 그것 값이 만만치 않고 대출도 여의치 않아 고민하던 친구의 얘길 듣다가 "내 차를 너희가 사고 내가 차를 새로 사면 되겠다"라고 너스레를 떨자 친구는 진심이냐며 뛸 듯이 기뻐한다.

나는 "아니, 그냥 해본 말인데?"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그래~ 그럼 차를 한번 알아봐야겠" 라며 전화를 끊었다.

내 차는 매우 아껴 며 손세차를 마다하지 않은 덕분에 상태는 최상이었고, 1년에 1만 킬로도 타지 않았다.

그 해 내 차는 출고한 지 10년 차였고, 기름값이 오르던 때대형차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바꿀 마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친구한테 해둔 말이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즈음 LPG 차량이 일반인에게 판매된다는 뉴스를 보고 장거리 운행을 자주 해야 하니 가스차로 바꿔보자 싶어 큰마음먹고 차량을 바꾸며 기존에 타던 차를 아주 저렴하게(친구네가 잘 되길 바라는 그 마음 하나로) 견적 한번 내보지도 않고 넘겼다.

친구 남편 역시 내 성향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고맙다며 폐차시킬 때까지 잘 타겠다고 가져갔다.


그렇게 가져간 차를, 차에 문제가 생겨서도 아니라 고작 "새 차가 갖고 싶었던" 자신의 욕심으로 7천만 원짜리 외제차를 뽑는 데에 이용했다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친구는 내 차를 아주 좋은 가격에 넘겼고 받는 사람도 아주 흡족하게 가져갔다고 얘기했다.

아니? 내 얘긴 귓등으로 들어놓고서 이 얘길 한다고?

너무너무 분하고 화가 났다.

내가 너무 쪼잔 한 건가? 내가 마음이 이렇게 좁았나?

사전에 나에게 양해라도 구해야 했던 게 아닌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정신분열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아니 왜 좋은 맘으로 보내 놓고 딴소리야 이미 넘겼으니 이젠 내 차도 아니잖아 그거야 그 친구 맘이지(천사)

무슨 소리야? 이렇게 금방 바꿀 줄 알았으면 내가 딴 데 더 좋은 가격 좋은 조건으로 넘겼지 왜 호구짓을 사서해(악마)


밤 새 시달리다가 다음 날 출근해서 친한 선배님께 고민이 있다며 털어놨다.

선배님은 기분이 나쁜 게 당연하다며, 아주 야무지게 봤더니 의외로 무른 면이 있다며 놀리신다.

그러면서 덧붙여 본인 친구와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무척 친한 친구가 있었노라고, 타 지역에 사는 친구이고 남편도 친하게 지냈던 진짜 가까운 친구였는데 지금은 연락 안 한 지 몇 년 되었다고.

친구 미국에 유학가 있을 때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도 먼저 도착해 친구 대신 일을 도맡아 봐주실 만큼 가까웠던 친구랑 멀어지게 된 것도 사실은 돈이라고.

타 지역에 사는 그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과일과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가 돈을 선배님께 1원 한 장 쓰지 않는 게 당연하게 되어버렸다고.

그것이 이해를 넘어서는 순간 정리하게 되었는데 아마 그 친구는 이유를 모를 거라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틀어져 버리면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게 되는 걸 깨달으셨다며 내 친구와의 관계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렇다면 이 친구와의 관계도 지금 변곡점에 온 건가?

친해지기 시작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다.

친구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

낳고 나서 여태껏 아들 목욕 한 번 안 시켜 보고 키웠다는 것을  훈장처럼 여긴다.

(그 말인즉슨,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대신했다는 것이다)

그 아들은 매우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나와 다른 육아관으로 아이를 키우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은 못할 짓이란 걸 깨닫게 해 준 장본인이다.

(당시 일곱 살짜리가 나에게 미친년이네 라는 말을 해서 남의 자식이라 그냥 넘어갔으나 더 이상 아이까지 같이 여행 가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되었다)

어른 말을 공경하지 않고 자신과 부모를 동급으로 봐 이래라저래라 수발들게 하는 아이가 내 기준에 정상은 아니니까.


나의 선의가 더 이상 선의가 아닌 게 된 이 시점에서,

나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멀어질 결심을 한다.

우리가 다르다는 게 서로에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한쪽만 노력하는 관계는 의미 없다는 걸 자각한 것뿐.


부디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돈의 심리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