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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백 May 10. 2020

데미안의 재회

<나도 작가다 공모 작품>



  한 번도 인기척을 낸 적은 없었다. 언제나 그의 출몰은 숨죽이고 기다리다 먹잇감을 잡을 순간이 왔을 때 나타나는 표범처럼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도 어둠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일요일 이른 아침의 어느 시간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주말에도 늦잠을 잘 자지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이 시간에 혼자서 조용히 거실에 나와 TV를 켰다. 이른 아침 시간에 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재미가 없다. TV를 본다는 개념보다는 흘러가는 시간에 종이배라도 띄워 보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TV를 켰을 뿐이다. 그가 나타난 것은 TV를 켠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갑자기 방문을 확 열어젖히고는 눈을 비비면서 나한테 다가와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아빠 뭐 해?”

“아빠는, 지금.....”     




  아마도 내가 10살쯤 되었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TV가 있는 안방에 가 보면 항상 아버지가 TV를 보고 계셨다. 추운 겨울에는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아버지와 같이 TV를 보는 것을 즐겨했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일요일 아침에 만화 영화를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일요일 아침에 TV 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일요일 아침에 TV만 보는 아버지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시는 일들이 잘 안 풀리는데 왜 아버지는 TV만 보시는 걸까? 이런 시간들을 다른 뭔가를 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춘기, 경제적 어려움 등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그냥 모든 것이 한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그때 나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 있었다. 나는 절대로 TV 따위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나의 영혼이 잠시 나의 육체에서 벗어나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내가 아닌 진짜 나를 보게 되었다. 목적도 없고, 흥미도 없이 그냥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TV 앞에서 아무런 존재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 채 냄새나는 고깃덩어리로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내 영혼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면 ‘채식주의자’에서 아내가 참을 수 없어했던 그 고기 냄새가 분명히 나한테서도 풍기고 있었을 것이다. 센과 치히로에서 아빠의 모습을 돼지로 표현한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30대의 나는 10대의 내가 그렇게 굳건히 다짐했던 약속을 모두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닌데...’




  취업을 한 이후로 나의 삶에 대해 반성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문학적 충격을 꽤 받았던 사춘기 시절보다 삶에 대한 고민도 훨씬 적게 했던 것 같다. 그냥 하루의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하루살이처럼 그 날 그 날을 잘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속 다짐이 전혀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는 아빠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자신에게 항상 꿈을 생각하고 도전하라는 말을 했지만 진정 아빠는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가는 회색 도시의 노동자 흔적만 가득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미래에 대해 고민보다는 그냥 잊고 피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한, 영화 중경삼림의 속마음과 같다? 그가 성인이 되어 힘든 순간을 맞이했을 때, 자신이 어렸을 때 보았던 아빠의 모습에 힘을 얻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해 줄 수는 없을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그’를 위한 가장 값진 선물은 이런 기억을 남겨 주는 것이 아닐까?      


“벌써 Zero O’Clock이네.”     




  삼성전자라는 무거운 중력이 느껴지는 회사를 다니면서 100m 전력 질주를 42.195km를 해야 하는 과정에서도, 2권의 책을 출간한 것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내가 나한테 주는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과 같았다. 원고를 쓰면서 항상 들었던 생각은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건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고3 생활을 지속해 나가는 것과 같아’ 이런 것뿐이었다. 자투리 시간에는 항상 원고 기획과 틀을 만들어야 했고, 주말에는 이런 틀을 글로 표현해야 했다. 버려지는 시간들을 극한으로 줄여야 했고, 짧은 시간 내에 집중력을 올려서 글을 쓸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내야 했다. 책은 겨우 2권 출간했지만 사실 내 컴퓨터에 묻혀 있는 원고는 그것에 몇 배쯤 될 것이며, 원고를 쓴다고 결코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노력에 대한 불확실성은 아마 취준생들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이런 생활이 이어져도 이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글을 쓰면서 끝없이 내가 도전을 해야 하는 목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제 40대 중반의 언덕을 넘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30년 동안 이뤄야 할 일들 그리고 내가 행복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나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에게 행복이란 고난 – 극복 – 성취의 반복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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