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고 불안했지만 내가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놨다. 세계여행을 위해.
아내 : 생각만으로 설레는 것. 나에게 여행이다. 여행을 하면서 나를 더 알아가는 과정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 줬고, 무엇이 내게 힘듦으로 다가오는지. 내게 가장 큰 기쁨은 무언지도 알게 해 줬다. 여행은 내게 삶이자 뗄 수 없는 운명 같은 존재였다. 이 뗄 수 없는 여행과 함께 내 20대 청춘을 함께했다. 나는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여행 리포터"였다. 국내 여행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더욱 숨은 명소를 알아가는 재미에 폭 빠졌고 내게 이 일은 더 이상 일이 아니었다.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니며 살아가는데 문제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대게 철이 되면, 영덕으로 가서 새벽 배 8시간을 타고 들어가 팔뚝 만한 대게를 잡아 올렸고, 손바닥 만한 멸치가 나올 때쯤이면 부산 기장으로 가서 멸치잡이 배에 몸을 싣고 선원들과 "에헤라디야" 노래를 부르며 만선을 기뻐했다. 전국 팔도 숨은 명인을 찾아 나서기도, 맛집을 찾아 배가 터지도록 먹을 때면 가장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햇수로 7년째 한 주도 거름 없이 여행을 계속하다 보니 점차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여행이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지는 어디일까? 궁금하고 설레었던 행선지가 "현영 씨, 영덕에 갑니다." 하면 '아, 대게 철이 되었구나!' 똑같이 반복되는 여행지와 맛집에 기계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설레고 싶다. 설레고 싶다! 여행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여행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세계일주를 결심했다.
신랑 : 나는 어릴 때부터 세계일주가 꿈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요트를 한 대 사서 전 세계를 돌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이렇게 멋지게 살면서 죽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다 어려운 나라의 사람들을 더 도와줄 수 있는 전공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기계공학으로 전과를 하고, 요트 동아리에 들어 요트 모는 법을 배웠다. 언젠가는 세계일주를 해야지 하는 다짐으로.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좋아하는 여행도 자주 다녔지만, 나도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게 어릴 때 품었던 나의 꿈을 잃고 출근과 퇴근이라는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꽤나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이었다. 종합상사에 다녔던 터라 해외 출장도 많고, 꽤나 도전적인 업무가 많았기에 내 적성에도 잘 맞았다. 7년 정도 다녔을까, 그때부터 어릴 때 품었던 꿈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내 꿈을 억누르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30대 중반인 나이에 내가 과연 세계일주를 혼자 다녀올 수 있을까? 그럼 세계일주를 다녀온 이후에는? 그럼 결혼은?
아내: 우리 두 사람의 연애가 무르익던 어느 날, 신랑이 나와 결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길 꺼냈다. 그리고 바로 결혼식 하고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떠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이 말이 언제 나올까. 생각하고 있었다. 8년 동안 알고 지낸 오빠 동생 사이였던 우리. 여행 이야기만 나오면 두 눈이 초롱초롱 생기가 돌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이야기하던 두 사람이 만나 연애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면 아마도 언젠가는 세계 여행을 함께 떠날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처음 그 제안을 들었을 때, 언젠가 갈 줄 알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 사람이라면 내 평생 함께 여행 메이트가 될 만큼 잘 통하니까 결혼에 대한 긍정적 대답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 그 말을 듣고 나는 고민의 여지없이 예스!라고 대답을 해 버렸다. 그리고 나 혼자 머릿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결혼식까지 6개월 남았는데? 나 아직 정리할게 많은데? 자동차 할부 안 끝났는데? 전세자금 대출 한지 얼마 안 됐는데?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주위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지?' 일을 워낙 즐기며 평생 독신으로 혼자 살 것 같던 내가 주위에 갑자기 저... 결혼해요. 했을 때의 깜짝 놀랄 주위의 반응보다 갑자기 일 잘하다가 결혼하고 1년간 세계 여행 떠납니다.라는 말을 부모님부터 친구들까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오질 않았다.
신랑: 그녀와 데이트를 하면 넌지시 세계일주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그녀의 반응은 꽤나 긍정적이었다. 신기했다. 보통 친구들의 반응은 미친 거 아니냐는 얘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여행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녀의 반응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답을 해주는 듯했다. 그래서 나 또한 가슴이 뛰었다. 혼자서는 두려웠던 세계일주를 둘이서 같이 함께 한다고 하니 나 또한 더 용기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나 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부가 함께 세계일주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혼자서 여행한다면 나와 세상의 만남이다. 하지만 부부가 여행한다면 부부와 세상의 만남 그리고 부부 관계의 성숙함이 추가가 된다. 어찌 보면 나는 이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세계일주를 그녀와 더욱더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1년 동안 24시간을 함께 한다면 서로에 대해서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서로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되지 않을까? 평생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요즈음 세상에 결혼을 하더라도 평일엔 각자 일하느라 바쁘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야기를 하는 부부들이 많다. 하지만 1년 동안 우리는 함께 함으로써 그 이상의 것들을 배우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부부를 위해 세계일주는 더 필요한 것이다. 이제 세계일주는 희망 사항이 아닌 꼭 가야만 하는 필수 사항이 되어 버렸다.
세계일주를 가기로 결심한 이후에도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계속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여행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나도 모르게 흥분할 것 같았기 때문에 쉽사리 티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단어 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기뻤다. 결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설렘보다 세계여행을 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미치도록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하거나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오직 우리 두 사람만이 이 세상 누구보다 설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혼식을 위해 쓸 여유 돈이 없었다. 여태 모은 돈은 오로지 세계일주에 쏟아야만 더 많은 곳을 갈 수 있고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 두 사람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쥐고 있던 지금의 일터와 생활. 관계들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결혼하고 세계일주를 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내려놓을 사유로 타당했고, 충분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 모두가 우리 두 사람을 진심을 다해 축복해 주었고 진심으로 부러워하기도 했다. 양가 부모님께서는 왜 진작 젊을 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스럽다며 우리의 젊음, 열정, 용기에 눈물을 글썽이셨다. 전적으로 지원해 줄 터이니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세계 무대에서 펼쳐 보라는 이야기와 함께. 우리 두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셨다. 다만 친정아버지만 신랑이 다녀와서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세계 여행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에 대한 불안함을 내 보이셔서 신랑이 어떻게 삶을 살 것인지 차근히 이야길 드렸고, 아마 그때 친정아버지께서는 철부지 딸인 줄만 알았던 딸을 듬직한 사위에게 맡겼다는 생각을 그때 하신 것 같았다. 이제부터 전적으로 우리 홍 서방만 믿겠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두 사람을 있는 그대로 믿고 또 믿어 주셨다. 그렇게 정신없지만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하나둘씩 정리가 되었고, 내려놓는다는 것이 물론 내 욕심에 가지고 있던 것을 쥐고 있던 것뿐이지, 쥔 것을 놓는다는 것. 결코 가볍지 않지만 무겁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주위의 격려와 응원을 한 몸에 받으며 결혼식보다 세계 일주하는 데에 온 전력을 기울여 준비했고, 떠날 날을 디데이로 두며 차근차근 앞일을 계획해 나갔다.
생각보다 시간은 더욱 빠르게 지나갔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2시간 전에 배낭을 다 쌌으니 말 다했다. 가장 중요한 여권, 챙길 서류, 배낭 하나에 쑤셔 넣을 경량 패딩과 두벌 정도 옷가지와 속옷, 등산복, 등산화, 생필품 등을 넣으니 배낭이 벌써 빵빵해졌다.
더 챙길게 분명 있을 것 같은데 머릿속이 복잡해질 땐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 여권 챙겼잖아. 비자 챙겼잖아. 아프리카 예방 주사들 맞았잖아.
몸만 가자. 일단 가서 부딪혀보면 알게 되겠지.'
이제부터 내 마음은 오로지 여행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새로운 곳에서 정착하며 생활한다는 것.
적응하며 익숙해져야만 하는 과정들.
모든 게 낯설어서 서툰 과정들. 깊게 생각할수록 불안해지는 무언가.
현재 내 머릿속 복잡한 것들도 부딪혀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되뇌어본다.
모든 게 낯설어 엄습해오는 불안감이 포근한 안정감으로 바뀔 때,
이 글을 다시 한번 읽고 싶어서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잇 부부의 세계일주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