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사실을 결혼 전에 알았더라면... 후회했을까?
두잇 부부 남편 글 : “아내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중에서.
저희 부부는 결혼하고 3일 뒤 1년 동안 세계일주를 떠났습니다.
어느덧,
세계일주를 시작한 지 1년이 다가오고 있어요.
시간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왜 세계일주를 떠났는지
어떻게 세계일주를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 후에 결정을 내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 확고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사실 하나는,
“함께”
라는 단어 하나였어요.
“함께” 24시간 365일 붙어 있다 보면
서로 알고 있었던 것 외에
또 다른 모습을 알아감으로써
서로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을 테니까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번 여행을 통해
제 스스로 기대했던 것이 있었어요.
아내가 달라졌으면 했던 것이 있었어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
나에게도 내 아내가 됨으로써
그녀에게 기대해보는 몇 가지 정도는?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겠습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내가 좀 더 부지런해지고, -1
요리도 더 잘하고, -2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생활하는, -3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벌써, 세 가지나 되네요.
물론 이 글은 아내가 보면서 콧방귀를 뀔 수도 있고요.
‘지는 어떤데?’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극히 제 입장에서 그런 생각을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세계일주를 마치는 시점에서
우리 아내가 180도 달라졌냐고요?
아니요.
아내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여전히 제 아내는 늦잠 자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는 여전히 못 하고요.
(아니 아예 부엌에 들어가질 않습니다.)
숙소가 좀 더러우면 짜증을 내곤 해요.
그리고 여전히 목이 마르면 스타벅스를 찾고 있죠.
처음에는 바뀌지 않는 아내가 답답하고,
한심해 보일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여행을 통해 아내가 바뀌길 기대했던
제 생각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여행 전의 아내와 여행 후의 아내는 여전히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고,
여행을 통해 달라지길 기대했던 것은 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남편 분들,
아내는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여행 후에도 똑.같.습.니.다. 라고 꼭 얘기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한 가지.
어찌 보면 저희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뀐 게 있네요.
바로, 가치관이 비슷해졌다는 거예요.
세계 여행을 준비할 때 우리 부부는 여러 나라에서 봉사하는 계획을 세웠어요.
어릴 때부터 세계의 여러 사람을 돕고 싶다는 제 소박한 꿈이 영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인도,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여행 중간중간에 봉사하도록 계획을 했고,
실제로 인도, 탄자니아, 페루에서 총 4개월 정도 봉사를 했어요.
1년 여행의 3분의 1을 봉사하며 생활했다는 것이죠.
처음에 아내는 왜 우리가 굳이 여행을 하며 봉사까지 해야 하냐고 투덜거렸어요.
뭐 사실 제가 아내였어도 싫었을 거 같아요.
함께 여행하는 줄 알고, 세계일주 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래! 가자!라고 대답한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제 뜻을 따라주었어요.
봉사도 나름 열심히 하는 것 같았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행 초반에 봉사했던 인도 고아 지역에서는
열심히 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했죠.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봉사해야 해?
그냥 편하게 여행만 하면 안 돼?
봉사를 마치고 봉사단원 모두 함께 머무는 숙소에 들어와 에어컨도 없는 비좁은 방에서 잠을 잘 때면
아내는 항상 힘들어했고, 40도가 웃도는 유독 더운 인도 날씨를 견디며 봉사를 할 때면 눈물을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 아내를 보고 있는 제 마음도 괴로웠죠.
이러려고 봉사를 하자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마음을 몰라주는 아내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때면,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아내를 달랬죠.
그런 그녀에게 계속해서 변화는 일어났어요.
인도 빈민촌의 아이들과 한 주, 그렇게 또 주말을 견디고 그다음 한 주를
함께 생활하면서 정을 붙이다 보니, 아이들을 진심으로 보듬어주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면 우리는 함께 설레어했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우리를 향해 방끗 웃어주는 아이들을 볼 때면
우리 부부는 함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기도 했답니다.
가끔씩 보이는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볼 때면 저희 부부는 함께 슬퍼하며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봉사 여행지.
아프리카 탄자니아 여행을 할 때 느꼈어요.
아내가 즐기고 있구나
탄자니아 고아원 아이들을 만난 첫날.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 우리를 보자마자 와락 안아주던 그 마음에 반해
아내는 온 맘과 정성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아프리카의 숙소는 말할 것도 없이 열악했음에도,
땡볕에 한 시간을 걷고, 또 걸어야만 고아원에 갈 수 있음에도,
아내는 단 한 번도 투덜거리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그 먼 길을 신나게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봤죠.
사실 아내가 바뀌고 있다고 느낀 적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봉사하는 내내 제 아내의 모습은 진정으로 행복했고,
열정적이었고, 사랑이 넘쳐났어요.
온몸으로 아이들과 놀아주고,
온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보듬어 주고 안아주었죠.
봉사를 마치고 난 오후에는 항상 아이들에 대해 얘기하곤 했어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매일 같이 고민했어요.
봉사를 시작한 지 한 2주가 지났을까?
아내가 어느 날 저에게 그러더군요.
아프리카에 머물며 좀 더 봉사를 길게 하는 것이 어떻냐고.
저는 깜짝 놀랐어요.
환경도 더 열악한 이 아프리카라는 곳에서 더 있고 싶다고?
그렇게 깔끔 떨던 사람이? 한 달만 참으면 유럽여행 일정이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많이 놀랐어요.
그런데 사실, 저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내가 그 얘기를 먼저 해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제가 괜히 더 있자고 얘기했다가 아내가 힘들어하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되었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총 3개월을 머물며
고아원, 슬럼가 어린이집, 바가모요 햄버거집, 여러 초등학교/중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답니다.
3개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추억을 쌓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함께 성숙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한국에 있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험을 아내의 의지와 용기로
머나먼 아프리카 탄자니아 땅에서 행할 수 있었어요.
지금 아내에게 물어보면 우리의 여행에서 봉사가 본인한테 가장 큰 경험이었다고 얘기해요.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함께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봉사하는 삶을 살자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정리를 못한다고 해서,
(군대에서 선임이 검열하는 것도 아니고요)
요리를 못한다고 해서,
(요리 더 잘하는 제가 있으니까요)
아침잠이 많다고 해서, (아침잠이 많은 아내 덕분에 아침은 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세계 여행을 통해 얻은 귀한 가치를 함께 나눌 아내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거란 걸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앞으로도 “함께” 함으로써
하나 둘, 인생에서 배워 나가야 할 가치를 얻는 기쁨을 누리며 살기로 했습니다.
1년 동안 흘린 땀방울로 일궈낸 큰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가치.
그리고 어떤 일이던 부딪히며 헤쳐나갈 용기. 의지와 삶의 방향을 찾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