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잇부부 세계일주 Mar 10. 2020

공동묘지와 쓰레기 더미에 아이들이 있다

진짜 장난감으로 바꿔주는 “크리에이티브 장난감 대회”를 개최하기까지.

공동묘지와 쓰레기 더미
시신과 쓰레기가 있어야 할 곳에 아이들이 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경제적 수도. 다르에스살람이라는 곳에서 봉사를 할 때의 일이다.

처음엔 경제적 수도라는 말에 내심 기대했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많을 텐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고? 궁금했다. 탄자니아에서 그나마 나은 도시 아니겠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경제를 주관하는 금융 밀집 센터들은 도심가에 오밀조밀. 조금만 외곽으로 이동하다 보면 바로 그 실상이 낱낱이 보이기 시작한다. 큰 건물들을 뒤로 한채 조금 더 차로 이동하다 보면 바로 시멘트 길이 아닌 흙길로 바뀐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거나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멘트로 지어진 집들 사이사이 높은 벽이 쳐져 있다. 보안이 삼엄하다. 반면 흙으로 지어진 집들은 그 흔한 창문에 유리창 조차 볼 수가 없다. 안전을 위한 울타리여야 하는 집은 자칫하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이 동네는 특히 범죄가 많이 발생하니 낮에만 다니고 항상 조심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그만큼 외국인이 없는 게 당연한 현지인들의 삶. 보이기 위한 곳이 아닌 보이는 게 다인 그런 동네에 우리가 온 것이다. 음산한 분위기의 공동묘지를 지나 골목골목 사이로 들어가다 보면 우리가 봉사할 판자촌 보육원이 나온다. 가난해서. 물이 없어서. 날씨가 더워서.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렸음에도 치료할 약값이 없어서. 며칠에 한번 꼴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 큰 공동묘지 터에 무허가 판자촌을 지어 마을을 이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가난은 이렇게 벗어날 수 없는 사슬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보육원의 부모는 대부분 미혼모 가정의 아이들이다. 매일 음식이나 물건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고 일터로 향한다.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 아닌 선생님을 자처한 스무살 소녀 ‘음새꽈’. 그녀 역시 판자촌에 살고 있으며 부모가 없는 고아다. 3평 넘짓한 그녀의 작은 방을 개조해 하늘색 벽을 칠하고 임시보호소 개념의 보육원을 만들었다. 아이를 맡길 형편이 되지 않는 가정의 아이를 한명, 두명, 맡아주다보니 아이들이 금새 늘어 지금은 스무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중이다. 음새꽈에겐 꿈이 하나 생겼다. “장래희망: 선생님” 그렇게 작은 방에서 그녀의 꿈을 위한 날갯짓은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한 덕분에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외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기회를 얻었고, 지금은 대학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며 낮엔 자신의 방을 어린이집 삼아 아이들에게 알파벳과 숫자를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공동묘지 판자촌을 너머 더 큰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홈페이지에 올린 그녀의 글 덕분에 우리는 만났다.

저의 방을 숙소로 이용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해 주실 분을 구합니다.
“음새꽈” 스무살 젊은 청춘의 따뜻한 선행. 본인의 방을 어린이집으로 개조해 알파벳과 숫자를 알려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는 공동묘지. 장난감은 그들의 신발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우리가 3평 남짓한 작은 방 안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처음에 5명으로 시작했던 곳이 지금은 20명이 훨씬 넘는 인원으로 방 한 칸을 가득 메운다.

보통 아이를 맡기려면 어린이집 비용이 하루 1000원에서 많게는 2000원 정도의 돈이 드는데,

음새꽈의 보육원은 하루 당일 맡기는데 책임비용(250원) 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한 살이 되지 않은 아이부터 7살 아이까지. 영 유아부터 미취학 아동까지 좁은 방에 가득 붐빈다.

연령대가 다양한 탓에 딱히 가르칠 수 있는 게 없다. 가르치려 해도 아이들의 시선이 칠판에 머무는 시간?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음새꽈는 우리가 도착한 첫날, 의미심장한 미소를 뗬다. 그녀의 눈빛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 와줬군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도 눈빛으로 말했다. “그동안 혼자 수고 많았죠.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맡겨줘요!” 이 비좁은 공간에서 그녀 혼자. 감당해야 했던 수고로움이 눈에 보여서 그런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녀의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그녀를 많이 칭찬해 줬을 거다. 지금은 그 역할이 우리가 된 것 같았다. 대단하다고 수없이 외쳐도 부족했다. 어리지만 존경받아 마땅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아이들을 돕고자 행했던 그녀의 선행. 방 한 칸의 기적이었다.


다행히 그녀의 말은 아이들이 무서워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통제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횡설수설 당황해하는 우리 부부를 놔두고 그녀가 사라졌다. 보통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공과금을 납부하더라도 모든 기관이 낮에 문을 여는데 아이들을 돌보느라 여태 볼일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황이더라. 그래서 우리 부부가 있는 동안 편하게 다녀오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음새꽈가 있었기에 통제되고 있던 이 작은 공간이 그녀가 사라진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엉망. 진창이 되는 순간은 빛의 속도였으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여도 듣지 않았으며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더욱 어려웠다.) 무언가 동작 하나를 취하면 따라 하다가 비좁은 공간 탓에 누구 한 명이 엉엉 울고불고 치고받고 그러다 단체 몸싸움으로 번지기 시작했으며 작은 아이들은 안아달라고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상황 통제 불가능”이라는 단어로. 꽉 막혔다. 그때 마침, 음새꽈의 초등학생 남동생이 학교 점심시간이 되어 집에 들렀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가야 하는 시간. 소란스러운 현장을 목격하더니 바로 회초리를 든다. 순간 정적이 흐르는 교실. 아이들이 눈치 하난 재빠르다. 회초리가 직빵으로 효능을 보인다.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우리는 두 손을 곱디곱게 모아 합장하며 외쳤다. 간절하게. “아싼 떼 사나 (너~~무 고마워!!)”

얘들아 나갈래? 우리 놀이터 가자!

음새꽈의 남동생과 음새꽈의 언니에게 바깥 활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뭘 해도 통하지 않았고, 뭘 하려 하면 좁은 공간 탓에 서로 부딪혀 싸움만 일어나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바깥으로 나가자고 했다. 역시나 통했다. 나갈 준비를 하는 선생님을 보더니 신나게 채비하는 아이들. 어찌나 귀여운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신발을 신기위해 쪼르르 모여든다. 놀이터 가서 신나게 놀아줘야지! 우리의 각오도 비장했다. 좁다는 핑계로 많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을 만회하고 싶었다. 비좁은 골목을 지나 놀이터가 있겠지..? 하고 이들을 따라나섰는데, 정작 우리가 생각한 놀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놀이터가 아닌 보육원으로 오기 위해 매일 지나쳤던 공동묘지였다.

-여기는 공동묘지 잖아? 놀이터 가자니까?

-여기가 아이들의 놀이터야.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뛰어 놀기 시작했고, 당황스러운 건 우리 둘 뿐이었다. 모두가 자연스레 신발을 벗어 자동차 삼아 “붕~ 붕~” 놀이를 했고, 신발을 공 삼아 축구놀이를 했다. 음산한 기운. 우리만 느끼는 걸까. 우리만 느끼는 거다. 아이들은 그저 해맑았고, 바깥에 나온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이들이 뛰노는 묘지 위에 고인이 된 날짜가 쓰여 있었는데, 불과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묘여서 다시한번 내 눈을 의심했다. 다시 한번 연도와 날짜를 살펴봤는데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아서 쓰레기 더미와 함께 흙으로 뒤덮인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이런 환경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진정으로 속상했다.


당장 먹을 식량이 없어 물건을 팔아 내일 먹을 식량을 구하는데 급급한 현실 속.

장난감이 있을 리 만무했고, 좀 더 나은 환경을 꿈꿀 리 더욱 만무했음을 깨달았다.

화려한 경제수도 이면에 어두운 현실. 유독 가슴 쓰린 날이었다.

과연 아이들에게 장난감이란 어떤 의미일까. 시신이 덮힌지 얼마 되지 않은 흙바닥 위를 놀이터 삼아. 신발을 자동차 삼아 노니는 아이들의 모습. 가슴이 아팠다.
쓰레기 더미에서 장난감을 만들어내는 아이들

하루 온종일 돌을 깨는 채석장에서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쓰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빈민촌 쿤두치 마을.

뜨거운 태양 아래 돈을 벌기 위해서 학교를 포기하고 채석장에 나가 돌을 깨는 아이들까지 모두가 이 마을에 살고 있다.

이 곳에 2013년도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아이들에게 밥 한 끼로 사랑 나눔을 실천하는 “다일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 청량리역 굴다리 노숙자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무상으로 나누기 시작해,

전 세계에 굶주리는 사람들을 찾아가 온정을 나누는 밥퍼 다일공동체.

아프리카에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 아이들은 약 900여 명.

우리 부부도 조금이나마 일손을 돕기 위해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쿤두치 마을로 향했다.


날이 밝으면 바로 밥을 받으러 줄을 서는 아이들. 시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한 끼를 놓친다.

찌는 듯한 한낮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코흘리개 동생들까지 업고 나와 (밥을 한 끼 더 받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짠했다. 그들의 손에는 도시락통이 들려있다. 그리곤 가지고 온 도시락통에 밥 한 끼를 꾹꾹 눌러 담아 도로 집으로 가져간다.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 도시락 통에 담아서 챙겨가네요?

-아프리카에서 밥퍼 사역을 하고 계시는 박종원 목사님의 한 말씀.

나눠준 밥을 담아 집에 가져가죠.
그리곤 집에있는 가족들과 함께 나눠 먹어요.
조금씩 나눠 일주일 동안 먹을 식량이 되기도 해요.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따뜻함을 배운다. 그리고 뼈아픈 현실에 마주한다.

한참 클 나이에 나의 배고픔보다 가족의 배고픔을 먼저 챙기는 아이.

밥 한 끼는 그 아이의 삶 자체였고, 가족을 책임져야 할 의무였다.  

살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었고, 한 끼를 받지 못하면 온 가족이 굶는 한 주가 될 수 있기에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이 어린 친구들이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5-6시간 줄을 서서 대기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이유가..

생각할수록.. 가슴이 끓어오른다.


잠시 내 어릴 적 모습은 어땠지? 문득 생각해봤는데,

나눔의 자세? 는 개뿔. 도 없었으며, 형제 우애는 쥐뿔. 도 없었다.

‘남동생으로부터 치킨 한 조각이라도 더 뺏어먹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아이스크림을 냉동고 안쪽에 몰래 숨겨두어 동생이 없을 때 몰래 녹여 먹던’

철부지 욕심쟁이였다.


내가 만난 쿤두치 마을의 아이들은 온 가족과 배불리 먹을 한 끼를 위해 아장아장 걷는 동생까지 업고 왔으며(그럼 2인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도시락통에 콩 한 개, 밥 한 톨이라도 더 집어넣기 위해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미소로 우리를 꼭 안아주는 쿤두치 마을 아이들에게 되려 사랑을 배우고 돌아오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눈에 담아가기 위해 돌아가는 길까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도시락통 말고도 아이들의 손에 가지고 다니는 무언가가 있음을 알아챘다.

오렌지 주스 통인데 자동차로 보였으며, 플라스틱 뚜껑을 딸 때 나오는 플라스틱 조각인데 줄넘기로 보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얘들아, 이게 뭐야?

-자동차예요! 줄넘기예요! 장난감이에요!

이게 장난감이라고?
너희들 대단하구나!!!

나뭇가지로 만든 자동차. 오렌지주스 통을 뚫어 몸통을 만들고 플라스틱 물병 뚜껑으로 바퀴를 만들어 나뭇가지로 연결한 신박한 장난감들로 신나게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유행을 타지 않는, 고장 나면 다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장난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들. 쿤두치 쓰레기장에서 재활용 플라스틱을 이용해 뚝딱뚝딱 만들어낸 이들의 작품에 우리는 탄성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흔히 버리는 쓰레기들을 모아 자동차, 줄넘기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버리거나 부모님께서 생일,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을 통해 때되면 업그레이드 시켜주시는 흔하고도 넘쳐나는 장난감이란게 이들에겐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조각을 엮고 엮어야만 만들어 놀 수 있는 그런 것이구나.

우리나라에서 버리는 장난감들.
마을 아이들 가져다주면 정말 좋아하겠다..
크리에이티브 장난감 대회를 열어 진짜 장난감으로 바꿔주자!

이 마을 아이들의 크리에이티브한 창의력을 발동 시켜보자!

뛰어난 창의력으로 장난감을 만든 아이에겐 진짜 자동차 장난감을 선물하고 참여한 전원에게 쌀을 선물하면 어떨까?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다.

스와힐리어(아프리카 탄자니아 언어)로 포스터를 만들고, 마을 곳곳에 포스터를 붙였다. 꽤나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우리도 참여해도 되요? -동생이랑 같이와도 되요? -선물이 뭐에요? -쌀도 주고 선물도 줘요? -와! 재밌겠다! 등.

아이들의 뜨거운 반응에 우린 이 대답으로 일관했다.

당연하지! 너는 할 수 있어!
YOU CAN DO IT
(우리 부부의 슬로건)

쿤두치마을 아이들을 위한 우리의 진심이 전해진걸까. 감사하게도 탄자니아 한인회에서 쌀을 지원해주셨고,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자동차 장난감을 지원해주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행사 장소를 다일 공동체 박종원 목사님께서 허락해주셨다. 소중한 마음들 덕분에 대회를 준비함에 있어 훨씬 수월할 수 있었다.
행사 당일. 아이들이 많이 참여 했을까? 내심 기대가 됐다. 다행히 행사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마을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 장난감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아이들로 붐볐고, 그 열기는 대단했다. 시작 전 임에도 불구하고 참가 등록을 위해 줄을 선 아이들. 정성으로 만들어진 장난감 하나 하나가 오늘은 쓰레기가 아닌 작품으로 보였다. 우리는 한정된 재료로 빚어진 다양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이들의 창의력은 상상 이상의 감동으로 밀려왔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노력했을 아이들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모든 참가등록을 마쳤다. 총 121개의 작품이 등록되었다.


이번 대회에 후원을 해주신 분들과 신랑이 심사 위원을 맡아주셨다. 121개의 작품. 어느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었기에 더욱 신중을 가했다. 드디어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 초롱 초롱한 눈망울로 내 이름을 불러주길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 3등, 2등, 1등을 차례로 발표하는 순간 축하의 박수갈채가 행사장을 울렸다. ‘결과를 떠나 과정에서 모두 1등이야. 앞으로도 이렇게 도전하고 노력해서 인생을 살아갔으면 해!’라는 마음으로 뜨겁게 격려했다.

나쿠팬다 (스와힐리어: 사랑합니다)

참가자 명단에 있는 이름을 차례대로 부르면 아이들이 작품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참가상인 쌀과 함께 “축복해. 사랑해!”라는 말을 건넸다.

우리는 이 순간의 아이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세상을 다 가진듯한 행복을 머금은 그 눈빛을.
그리고 아이들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화답해 주었다.

잊지 못할 하루를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땀흘린 노력을 통해 진짜 장난감과 쌀을 선물받은 아이들.

아마 아이의 말대로 “평생 잊지 못할” 그런 경험이었을거다.

돈을 벌기 위해 채석장에서 돌을캐는 노력말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자신을 위한 노력”을 해 본적은 없었을거다.


누군가 말했다.

많은 사람에게 고마운 사람이 된다면 당신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우리 부부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물한 “고마운 사람 되었고,

아이들 덕분에 세계일주  가장  행복을 얻은 성공한 인생이 되었다. 


장난감대회 현장속으로!

유튜브-두잇부부 채널 클릭!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일주 중 해외봉사, 단체 통하지 않고 어떻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