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마을 페루 고산지대에서 만난 아이들. “티카리 학교” 이야기
TIKARIY (캐츄아어 : 꽃을 피우다) 티카리 학교에 오신 “두잇부부” 환영합니다
페루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올라간 하늘마을. 해발고도 4000m.
하늘과 가까이 맞닿아 살고 있는 “야나오카 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자그마한 학교.
우리가 봉사할 학교다.
꽃을 피우다 라는 뜻의 캐츄아어(잉카 언어). “티카리”
우리는 밤마다 산소호흡기를 해야 하는 극심한 고산병에 시달리면서까지 이 곳에 머물기로 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을 만난 첫날부터 시작된다.
티카리학교는 조금 특별해요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
교정에 들어서면서 그레고리오 신부님은 티카리 학교가 특별하다는 말로 소개를 시작했다.
가정 폭력. 학대. 가부장적 제도. 비위생적 환경. 등에 노출되어있는 페루의 아이들.
페루의 가정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준비된 부모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티카리 학교는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 위주로 세 달 기준 5 솔이라는 (한화: 1500원) 일종의 책임비용만 받고
50명의 아이들을 케어하는 학교이다.
주로 아이들의 창의성 교육, 실질적으로 생업에 뛰어들 수 있게 뜨개질, 요리 등을 알려주어
집에서 부모가 요리를 해 주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게.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아프지 않고 클 수 있게 “손 씻기 교육” , “예절 교육” 등.
부모에게 받아야 할 교육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우선으로 기회를 열어주는 학교라고 했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정에 들어서는 순간,
한 명, 두 명 사랑스러운 유아반 아이들이 우리 품에 쏙 안긴다.
신기하다.
수업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 없다.
어떤 아이는 꽃에 물을 주고 있고,
어떤 아이는 부엌에서 만두를 빚고 있고,
어떤 아이는 뜨개질을 하고 있으며,
어떤 아이는 신발로 공차기를 하고 있었다.
유아반, 저학년반, 고학년반으로 나눈 티카리 학교의 아이들은 약 50여 명.
우리들은 각자의 활동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우리는 두잇부부야”
처음 보는 외국인 두 선생님. 자말과 사만다.
우리 두 사람을 지긋이 쳐다보는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선생님의 따뜻한 품에 안기는 아이들.
처음 이 학교가 세워졌을 때,
아이들 모두 낯을 심하게 가리고, 소극적인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변화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사랑을 주는 방법. 사랑을 받는 방법을 점차 배워 나갔고,
학교에서 배운 요리를, 위생을, 예절을, 뜨개질을 집에서도 하기 시작했고,
“엄마, 집에 오면 손부터 씻어야 해요!”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부모에게 알려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도 점차 변화되었다고 한다.
아이가 바뀌면 어른이 바뀐다. 곧 세상이 바뀐다. (꽃을 피우다)
티카리 학교는 이렇게 아이들의 변화로 인해 점차 어른들이 바뀌면서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나가는 학교이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티카리 아이들.
그게 이 학교의 교육 목표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더 배워가는 게 많았던 학교.
신랑이 가장 영향을 받았던 인생영화가 하나 있다.
세 얼간이 (3 idiots)
티카리학교를 보면
세 얼간이에 나오는 학교가 떠오른다는 신랑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란초는 학창 시절 때부터 말썽쟁이였다. 란초는 일반적인 교육 제도가 아이들을 망친다고 생각했으며, 좀 더 나은 학교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란초는 결국 본인이 학교를 세웠고, 평범하지 않은 학교를 만들었다. 이론으로 가득 찬 수업이 아닌 아이들이 실제로 만지고 만들고 경험해보는 창의성으로 학교를 만든 것이다.
영화에서 나온 학교가 티카리 학교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손 씻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고,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굶지 않도록 간단한 요리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자립할 수 있도록 뜨개질을 가르쳐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고, 저렴하고 손쉽고 구할 수 있는 물건에 가치를 불어넣어 제품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음악 미술 등 시골 학교에서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특히 이런 창의성 교육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신랑이 고학년 아이들을 위한 퀴즈 수업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생각을 쑥쑥 자라게 하는 창의성 퀴즈.
당연 신랑의 수업은 티카리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모습은 마치 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 란초를 보고 있는 듯했다.
매 시간마다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며 머뭇거리는 아이들을 독려해가며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함을 일러주었고,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뿌듯했고, 내일은 어떤 퀴즈를 낼까? 매일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만으로도 행복했다.
아내는 저학년 아이들에게 레크리에이션 수업을 했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기도 했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얼굴에 동물을 그려 온 몸으로 표현해보기도, 한국어로 된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기도 했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이 참 많은데, 그중 아내는 아이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 대화를 나눈다. 그 모습이 신기하다.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아이들. 스페인어로 선생님에게 물어보는데 한국어로 답을 해주는 아내. 아마도 눈빛과 몸짓으로 아이들과 선생님이 어느 순간 통하지 않았나 싶다.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선생님은 한국어로 말하고 아이들은 스페인어로 말하면서 대화를 한다?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하. 누가 뭐래도 단연 인기 만점은 “세뇨리따 사만다” 아내였다.
아내가 이동하면 어김없이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
세뇨리따- 사만다-
-세뇨리따 사만다 안녕하세요?
-세뇨리따 사만다 어디 가세요?
-세뇨리따 사만다 이거 먹을래요?
-세뇨리따 사만다 이리와 요! 세뇨리따 사만다 우리와 함께 놀아요! 세뇨리따 사만다 이거 해주세요! 세뇨리따 사만다 안아주세요! 세뇨리따 사만다 사랑해요! 아이들의 사만다 사랑.. 아내를 잘 따르는 티카리 학교 아이들. 이제 세뇨리따 사만다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그중, 마음이 짠한 한마디
세뇨리따-사만다-
내일도 올 거죠?
내일도 올 거냐는 질문. 많은 질문 중에 유독 망설여진다.
지금은 당연하지!라고 대답할 수 있어도, 마지막 날엔.. 뭐라 말해야 할까. 벌써 마음이 아파온다.
처음 만져본 매직풍선.
덕분에 평생 기억될 하루.
풍선을 만져본 적 없는 페루 아이들에게
어느 날, 매직 풍선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었다.
나는 강아지, 기린, 칼, 왕관 등 풍선으로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그중, 강아지를 선물 받았던 파브리시오.
강아지 눈을 그려보라고 건넨 매직펜을 들고 한참을 망설인다.
그림에 소질이 영 별로인지 눈을 그리다 망칠까 오랜 시간 고민한다.
^ ^ 웃는 모양으로 눈을 그린다.
별로인지 침을 묻혀 손으로 빡빡 닦아낸다.
그게 그렇게 고민될 일인가? 싶어 아이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다 생각했다.
‘파브리시오에겐 가장 큰 고민일 수 있지!’
나는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마침내 가장 예쁜 웃는 눈을 그렸는지 흡족해하며 피식 웃는다.
세뇨리따 사만다
그라시아스(고마워요)
혹여나 터질까 조심스럽게 강아지 풍선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파브리시오.
마침 수업이 끝나 우리도 집에 갈 차비를 하고 나섰는데,
저 앞에서 신나게 걸어가는 파브리시오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강아지 풍선에 영혼을 불어넣은 듯했다.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폴짝폴짝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덩달아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됐다.
아이의 뒷모습만으로 행복해질 수가 있다니..
이 날 누군가에게 선물하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은 그런 날이었다.
선물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파브리시오. 고마워.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오지 말았으면 했던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를 어김없이 찾아온다.
봉사 마지막 날. 밤마다 시달렸던 고산병도, 산소호흡기도. 모두 참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 티 카리 학교 아이들.
순수한 눈망울로 “세뇨리따 사만다- 내일도 올 거죠?”라고 물었던 아이들에게
이 날은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끝내 거짓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었던 날이 찾아온 것이다.
선생님이 고학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미리 해 준 모양이다.
아이들이 그동안 우리를 위해 손수 만들어 온 뜨개질 목도리와 뜨개질 팔찌를 선물해줬다.
이별의 시간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답을 내리지 못했었는데,
우릴 위한 선물까지 준비한 아이들을 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받는 것뿐이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선생님이 이렇게 받기만 해서... 미안해...’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티카리. 고맙습니다. 우리가 오히려 사랑을 받고 돌아갑니다. 지금처럼 밝고 씩씩한 어린이로 자라주세요. 앞으로 멋진 성인이 되는 모습. 사만다와 자말이 항상 응원하며 지켜볼게요. 티카리. 사랑합니다”
봉사하는 시간 동안 멋진 말로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싶었지만 언어가 되지 않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대신 부족한 내 언어 실력만큼 눈을 더 마주치려 노력했고, 행동으로 함께 부딪히며 시간을 더 많이 보냈던 것 같다고 위안 삼아 본다.
그것 하나만으로 아이들에게도 큰 영향으로 다가왔을까? 어느새 우리에겐 그간 함께했던 “정”이란 게 쌓여 있었다.
작별을 하기 위해 교정을 떠나야 하는 순간도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 뒷모습 조금만 더 보고 떠나야지. 싶어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오히려 티카리 아이들도 집에 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같은 마음으로. 같은 뜻으로.’
어린아이들이 뭘 알겠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이 아이들도 함께 정을 느꼈구나. 우리 같은 마음이었구나. 감동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다가와 나를 꼭 안아준다. 그러더니 조그마한 음성으로 나에게 이야기한다.
신랑이 이야길 함께 들으면서 통역해줬는데, 내용인즉슨 이러하다.
세뇨리따 사만다
우리를 잊지 않을 거죠?
약속-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쩜 이런 말을 할 생각을 했을까. 이 어린 친구들이 뭘 알까. 아니다. 아이들은 다 안다. 내 마음을 다 알아줬구나. 선생님은 너희를 절대 잊지 않아.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걸. 그리고 그렇게 기억해줘서 고마워. 너희도 선생님 잊지 않을 거지? 우리 서로 기억하겠다고. 추억하겠다고. 약속하자. 약속- 너도 약속- 약속.. 우린 오랜 시간을 함께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특별히 해 주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도장. 싸인까지 손바닥에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걸고 또 약속했다. 약속을 하고 우린 한참을 부둥켜안았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나를 꼭 안아주는 아이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너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우린. 늘 그렇듯 서로 통했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우린 서로를 알아봤으니까.
지금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