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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부부 세계일주 May 08. 2020

유부녀의 인도 발리우드 오디션 도전기

100통의 연락 중 답장 온 한통의 메일. 바로 인도 뭄바이로 입성하다

끼순이 아내를 평범하게 둘 수 없었던 가장의 무게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나는 아내의 똥꼬발랄한 끼에 매료되어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 생각했다.

함께 있으면 언제나 밝고 주위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해피바이러스 그녀와 평생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결혼하자는 프러포즈 대신 ‘나와 세계일주 가지 않을래?’라고 제안했다.

워낙 도전정신이 강하고, 여행을 좋아하던 그녀의 대답은 예상대로 ‘Yes!’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인생 제2의 도전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처럼 유명한 관광지를 돌고, 꼭 가봐야 하는 나라를 돌고 오기엔 우리 두 사람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7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를 관뒀고, 아내 또한 7년간 활동하던 커리어를 내려두고 떠난 1년이란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달까. 함께 하는 여행에 +도전이라는 조미료를 넣어 한계에 도달하는 경험과 실패, 좌절 등의 결과를 얻는다면, 우리 인생의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아내는 모임이나 친한 친구들 앞에서 노래. 춤. 성대모사 등으로 사람들을 밝게 해 주는 긍정 에너지가 장착되어 있어서 가족과 지인의 특별한 날이면 어김없이 무대에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있었다. 이런 끼를 미국 할리우드에서? 인도 발리우드에서? 선보인다면 어떨까. 나의 아내는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지닌 어마어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그녀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나에게는 '가장의 무게'가 이 가정을 잘 이끌어야만 하는 책임감이 아닌 아내의 무궁한 가능성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증폭제 역할이자 상대를 믿어주고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알아주는 가까운 친구. 아내만의 매니지먼트였다.


처음 아내에게 ‘우리 인도 발리우드 오디션을 보면 어때?’라고 제안했을 때, 아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무슨 수로???’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라고. 하지만 아내가 알라딘에 나오는 나오미 스콧이 될 수도, 혹은 발리우드 영화에 지나가는 행인으로 캐스팅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이야길 했을 때, 반신반의하면서도 피식 웃음 짓는 아내를 보았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는 아이의 영롱한 눈빛처럼 그녀의 눈빛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1단계 : 인도 발리우드 에이전시 100여 군데 두드리기

우선 아내의 프로필을 영어 버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 나와있는 인도 뭄바이에 있는 에이전시 연락처 및 메일 주소를 모두 묶어 정리했다. 100여 군데가 넘는 주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곤 아내의 프로필을 한 군데씩 정성을 가득 담아 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돌아오는 메일은 모두 ‘fail’ ‘용량 초과’ 등 실패하는 답장이었고, 그중 몇 군데에서는 감사하게도 답장을 보내줬는데, 내용은 모두 ‘미안하지만 힘들 것 같다.’라는 거절의 답장이었다.


나는 좌절하였다. 단순히 도전했다는 경험 정도로 만족하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컸던 걸까. 이 순간만은, 내 배우(아내)를 가장 열정적으로 어필해봤던 매니지먼트였기에 그 좌절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별 말이 없자 당연히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실망한 표정보다는 웃으면서 되려 나를 토닥여줬다. 나에게 ‘그럴 줄 알았어’라는 반응보다는 ‘그럼에도 고생했어. 고마워’라는 대답을 해줬다. 잠시 잠깐 발리우드 무대를 꿈꿨던 그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오히려 아내의 반응은 나를 더 안타깝게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생각도 하지 못했던 어느 날, 우리 부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메일이 한통 왔다.


“Call me on +91913......”

오 마이 갓! 여보!!!!!!! 세상에. 이 한 줄의 메일이 이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마음을 비웠더니 날아온 한통의 메일. 뭄바이에 오면 오디션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믿을 수 없었다. 설마 설마 했던 그 좁은 문이 두드리니 열린 거다. 리얼 100프로의 실제상황이 우리에게 벌어졌다. 평생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인도라는 낯선 땅을 밟을 수 있는 일정이 하나 생긴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이 순간은 분명, 우리의 인생에서 계속해서 곱씹으며 회자될 일생일대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긍정적인 답변 한 줄이 지난 시간 두드렸던 100여 통의 실패 메일에 대한 대답 한 줄이었다.


오디션 연락 한통만 믿고 무작정 인도 뭄바이 티켓을 끊다

인도 뭄바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곳에 연락 한통만 믿고 무작정 티켓을 끊었다. 뭄바이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주도로 국제 무역항과 국제공항이 있는 인도 최대의 도시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산업의 중심지이다. 일단 도착하면 연락 줘!라는 캐스팅 디렉터의 메시지 하나만 믿고 우리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싶다. 저지른 후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은 계속됐다. 사실 걱정하면 끝도 없었다.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진짜 캐스팅 디렉터가 맞을까?’ ‘사기꾼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우리를 불안하게 했지만, 결론은 ‘우리는 할 수 있어!’라는 결론이었다. 아무렴 어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잖아. 우린 두 사람 이잖아! 걱정 마. 모든 게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기도하는 마음뿐이었다. 캐스팅이 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만 마무리하는 것. 우리 두 사람의 첫 도전기가 위험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아내는 인도의 대표되는 노래인 ‘뚫훍 송’을 가지고 피나는 춤 연습에 들어갔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도대체 이 노래가 무엇인지 몰랐다.


오디션 날짜를 잡고 장소를 정하는 날.

장소는 뭄바이 대형 쇼핑몰 한가운데 위치한 5층 푸드코트. 맥도널드 앞에서 만났다. 우리의 쫄린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드넓게 펼쳐진 오픈된 장소. 사람들이 가장 밀집한 시간대에 푸드코트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를 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유튜버라고 소개했다. 뻥튀기를 좀 했다.


"우리는 ‘두잇 부부’라는 세계일주 하는 유튜버인데, 뭐든지 할 수 있어! 위캔 두잇!이라는 뜻을 담아 부부의 이름을 정해봤어. 지금 이 만남을 영상으로 담아도 되는 거지?"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계속해서 촬영을 시도했고, 뭐가 됐든 기록하는 척!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당했고, 마음은 여전히 쫄렸다.


하지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본인을 세 아이의 아빠라고 소개하며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순간 우리는 쫄렸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좋은 인연을 만난 것 같았다. "샴 굼타"라는 이 친구는 참 따뜻한 친구였다. 에이전시 소속 캐스팅 디렉터로 오랜 시간 일을 해왔으며, 세 아이의 아빠로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상황(굉장히 쫄린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듯, 편안하게 대화를 진행해줬다. 또한 우리의 이야기를 예상이라도 한 듯이 ‘동양인 부부’의 첫 도전기에 조금이라도 조언이나 도움을 주고 싶어서 뭄바이에 머무는 기간 동안 진행되는 다양한 오디션을 직접 알아봤던 모양이었다.


"실은 지금 당장 진행하는 오디션은 없어. 적어도 3개월 이상은 체류하면서 힌디어를 공부해야 오디션을 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는 드라마 촬영은 매일 발리우드 세트장에서 진행 중에 있거든. 너희가 원한다면 지금 그곳에 가서 촬영 현장을 보고 감독님들에게 인사도 하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 같이 갈래?’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당연히 당장 오디션 진행이 불가능할 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오디션보다 더 좋은 기회로 촬영 현장에 직접 가볼 수 있다니! 혹시나! 즉석에서 캐스팅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부부는 일심동체일까. 나처럼 생각했는지, 아내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태세로 옷매무새를 갖췄다.


이미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 세트장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시작된 불안함이 우리를 엄습했지만, 우리는 샴굼타라는 친구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고, 계속해서 카메라를 켠 채로 우리는 세트장으로 향했다. 이동하면서 발리우드의 규모가 엄청남을 실감했다. 세트장이 한 지역 전체에 자리 잡고 있었고, 현재 진행하는 드라마 세트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몇 차례의 검문을 지나 산속 깊은 곳까지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도착해 세트장 안으로 진입을 성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짜 발리우드 촬영 현장에 우리가 들어간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 한국에서도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을 실제로 본 적도 없었으며,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이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한계에 부딪히는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샴굼타 덕분에 수월하게 진입이 가능했고, 관계자를 하나 둘 소개해주기 시작했다. 스태프, 감독님, 주연, 조연 배우들을 한 명씩 소개해주는 친절한 샴굼타. 우리는 그제야 긴장의 끈을 모두 놓을 수가 있었다.


한 번의 기회 덕분에 찾아온 소중한 인연. 그 덕에 이어지는 또 다른 세상.

사실 이 모든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뭄바이에 왔구나. 발리우드 세트장에 왔구나.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반인 부부인데, 발리우드 관계자들을 하나 둘 인사를 나누게 하고, 진심을 다해 환영해주는 이들에게 우리는 큰 감명을 받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 일 것이다. 인도의 문화 중 나와 알게 되는 인연에 대해 ‘신이 온다’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샴굼타 입장에서는 우리의 연락 한통이 ‘신이 찾아온다’라고 생각을 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샴굼타를 통해 알게 된 모든 친구들이 우리를 귀하게 대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갑자기 찾아온 세트장에서 열린 즉석 미니 오디션

감독님들이 잠깐 남는 시간을 이용해 아내의 춤을 보자고 했다. 의상실 코디 분께서 주연 배우가 입던 옷을 아내에게 입혀줬다. 아내는 흥분했고, 이 모든 게 꿈만 같다고 했다. 그런 아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우리에게 기적 같은 일은 이뤄졌고, 우리는 모든 스태프 분들 앞에서 아내가 준비해 온 춤을 선보이는 큰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어떤 오디션 보다도 훌륭했다. 인도 발리우드 산업을 책임지는 이들 앞에서 단독 오디션을 진행하다니. 단순히 발리우드 오디션에 도전해보자라고 생각해낸 아이디어 하나로 우리는 뭄바이라는 낯선 타국에 왔고, 샴굼타라는 소중한 인연을 알게 되어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 이 모든 건 기적이었고, 감사였다.

뚫훓뚫훓뚫 따다다다


아내가 이런 춤과 노래를 부를 줄이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거품을 물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역시 내 아내다. 당당하고 뻔뻔하게 모든 사람을 쓰러 뜨렸다. 미니 오디션이 끝이 나고, 사람들은 모두 내게 이런 아내를 둬서 복 받았다고 칭찬일색이었다. 끼가 다분한 아내를 둬서 부럽다고. 내가 연애시절 첫눈에 반했던 그녀의 당당함은 오늘도 찬란하게 빛이 났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우리의 발리우드 도전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즉석 미니 오디션이 펼쳐지면서 화려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도 샴굼타와 인연을 지속하고 있다. 향후 언젠가 아내의 춤이 발리우드에 널리 퍼지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나비효과’가 아닐까.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이렇게 작은 도전들을 계속 지속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도전들을 하나씩 성취해내는 과정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지는 부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언제나 도전하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녀의 가능성을 한 없이 믿어주는 든든한 매니지먼트가 평생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다음 도전은 과연 무엇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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