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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부부 세계일주 Jun 17. 2020

아프리카에 울려 퍼진 KPOP 한류의 열풍

500명 관객 앞에서 K-POP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요? 제가요?

아루샤 고아원 아이들의 따뜻한 엄마이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그레이스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사만다, 자말,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면 ‘루카스’라는 학교가 있는데, 친언니가 교장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거든. 두잇 부부가 가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거야.”     

그렇게 해서 방문하게 된 루카스 사립 초등학교.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아프리카라는 나라는 유독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아이들이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부터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까지. 우리는 알파벳조차 모르던 고아원 아이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루카스 아이들의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여보, 과연 이 곳에서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

‘우리 이 곳에서는 돕는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두고, 이 친구들은 영어로 소통이 되니까!

한국을 알려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시작된 한글 수업.

우리는 그렇게 각 학년을 돌며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내 이름은 누구입니다” 등 기본적인 한국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신기함에 즐겁게 잘 따라와 주었다. 어느새 학교 분위기는 마치 한국어학당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와 마주치는 아이들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누구예요. 식사하셨어요?” 한국어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루카스 학교 선생님들도 우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심히 우리 수업을 지켜보시던 교장선생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셨다. “다음 주에 루카스 졸업 축제가 열리는데 그때 태권도 공연을 해 보는 게 어때? 태권도할 줄 알지?” 어릴 때 잠깐 배웠던 태권도. 누구한테 뽐낼 실력도 아니었다. 그런데 수백 명의 학부모들 앞에서 태권도 공연을 하라고?      


‘그래도 뭐 까짓것. 한번 해보자!’


선생님은 곧바로 태권도 공연팀을 모집하시기 시작했다. 한국어 열풍에 이어 태권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공연팀 지원자가 워낙 많다 보니 기합소리로 작은 오디션을 펼쳤다. 오로지 기합소리 하나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느냐! 였다. 오디션에 지원한 아이들은 “태! 권! 도!” 기합소리를 냈고, 루카스 학교에 태권도의 기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렵게 심사숙고하여 결정된 약 15명 정도의 아이들이 무대에 서기로 했다.      


이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무엇을 보여주면 좋을까? 멋진 기합소리와 함께 어떤 공연을 하면 좋을까? 고민에 빠졌다. 때마침 우리의 뇌리 속을 스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내 17년 지기 친구이자 베트남 하노이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관장님 부부였다. 우리가 세계여행을 하면서 태국에서 네팔로 넘어갈 때 잠시 베트남에 들렸었는데, 이유는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을 위한 재정비 시간과 한식 조달을 받기 위함이었고, 또 한 가지 이유는 하노이에서 태권도장을 운영 중이던 친구의 아이들에게 ‘세계 여행 중인 부부가 들려주는 도전’에 대한 강연을 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 친구 찬스를 쓰자!”

영상 통화를 걸어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니 아프리카 아이들과 어울릴만한 신나는 음악에 맞춰 태권도 기합소리를 넣은 태권무를 배울 수 있었다. 20년 만에 다시 해 보는 태권도. 조금이라도 어색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연습했다. 그래도 계속 반복, 연습을 통해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고, 어릴 적 태권도를 잠시 배웠던 그 느낌이 좀 묻어 나오는 듯했다.

우리는 그렇게 15명의 아이들과 함께 방과 후에 매일 2시간씩 태권도 공연을 준비했다. 매일같이 땡볕에서 “태권”을 외치던 아이들은 어려워하면서도 신나게 즐기면서 잘 따라와 주었다. 우리 역시 태권도를 가르치며 타국에 장기 여행자로 있으면서 오는 내 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자긍심과 애국심이 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다. 특히 아프리카 아이들 입에서 “태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이 먼 아프리카 땅에서 한글이 울려 퍼진다는 사실에 참 뿌듯하고 설레었다.      


그리고 공연 며칠 전, 교장 선생님의 두 번째 제안.

“두잇 부부가 졸업식 사회를 봐줄 수 있겠어?”

“네?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탄자니아에서 졸업식을 진행하라고요?”

그렇게 우리는 2019년 루카스 초등학교 졸업 축제에 더블 진행을 맡게 되었다. 무려 5시간 동안 진행하는 행사였다. 더욱더 발등에 불 떨어진 우리. 우리는 몇 날 며칠을 잠시도 쉬지 않고 밤을 지새우며 졸업식 진행 순서에 맞게 영어 대본과 스와힐리어 대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스와힐리어는 아루샤 고아원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탄자니아 교포 동생 덕분에 수월하게 스와힐리어로 번역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대본으로 수없이 반복된 리허설을 통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졸업 축제 당일이 되었다.

커다란 강당에 수백여 명의 학부모로 가득 채워졌다. 아내는 며칠 전, 부랴부랴 마트에서 구매했던 원피스로, 신랑은 탄자니아 한인회에서 빌린 개량한복으로 환복을 했다. 역시나 아프리카 전통 분위기에 맞게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오랜만에 서 보는 무대에, 영어와 스와힐리어로 진행을 시작하려니 잔뜩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땀으로 흥건해진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신랑.      

‘여보, 우리만의 축제를 만들어보자!’

신랑과 함께 진행을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긴장이 설렘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래! 만들어보자! 우리만의 축제를! 위 캔 두잇! ’

‘하바리~제누~ 응주리 사나~ 지나 랑구니 새미~ 자마리~ 아산 떼 사나! 나쿠팬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온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두잇 부부라고 합니다.

시작에 앞서, 간단한 우리나라 언어를 배워 볼 텐데요, 저를 따라 해 보시겠어요?     


- 안녕하세요!

- 반갑습니다!

- 사랑합니다!     


모두가 함께 한국어를 따라 하는 그 순간. 온몸에 감동의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미 루카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웠던 한국어 수업을 통해 익숙했다. 한국어를 따라 하는 그들의 목소리로 강당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참 뿌듯하고 감사했다.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고, 이들에게 잊지 못할 하루를 선물할 수 있었음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지도 모르겠다.

그날의 무대 중, 아직까지 우리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자리 잡은 무대는 단연 태권도였다.

머나먼 땅에서, 그것도 한 사립학교 졸업식장에서 태권도 노래가 울려 퍼지다니.. 한국 노래에 맞춰 아프리카 아이들이 태권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아내와 나는 서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뭉클함을 우리는 함께 느끼고 있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던 감격의 그 순간,


아내가 내게 한 마디를 건네 온다.      

‘여보, 우리가 이 머나먼 땅에서 태권도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참 뿌듯하고 설레는 순간이다. 그렇지?’     


 사실 우리가 여행을 처음 떠날 때 만해도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연히 탄자니아에서 태권도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 또한 예상도 하지 못했다. 아프리카 사람들 500여 명 앞에서 아내와 함께 졸업식 사회를 볼 줄이야. 그저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또한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졸업식이 끝나고 모든 관객들이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낯선 동양인 부부가 5시간 동안 우리를 신나게 해 줬으니. 얼마나 연예인 같이 보였을까. 엄지손가락을 들며 두잇 부부 최고라고 연신 칭찬해주었다. 특히 중간에 아내가 댄스파티를 진행했었는데, 지팡이를 짚으며 뚜벅뚜벅 걸어 나오시더니 신나게 댄스를 추셨던 86세의 할머니께서 며느리와 함께 줄을 서시더니 우리와 꼭 함께 사진을 찍고 가겠다고 하셨다.

‘내 나이가 86세인데, 이렇게 신나게 춤을 춰본 적이 오랜만이라오. 이렇게 신나는 무대를 만들어줘서 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소. 고맙소.’


우리가 오히려 큰 선물을 받고 돌아온 것 같았다. 우리 부부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사건이 생긴 것이다. 순간 우리가 설정하고 출발했던 우리의 여행 슬로건 한 줄이 스쳐 지나갔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각 나라에서 한 달을 머물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성숙한 부부가 되고자 한다."     


이 한 줄을 정해 출발을 했다 보니, 다른 여행자들처럼 어떤 여행지가 좋았는지, 혹은 사진에 예쁘게 담기는 포토 스팟을 찾기 위해 여행지를 설정했던 것이 아닌, 현지인들을 더 깊숙이 만나기 위해 그 여행지 안에서도 마치 현지인처럼 생활해보는 것이 목표가 되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오늘의 이런 이벤트가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남은 우리의 여행에 또 어떤 현지인과 인연이 되어 어떤 이벤트가 생겨날까? 우리에게 다가올 일들이 더욱 기대되는 날이다.


“여보, 우리 앞으로도 후회 없이 살자. 오늘처럼”

우리는 오늘도 하고 싶은 것은 후회 없이 해 보면서 살기로 다짐한다.  


아프리카 한글 수업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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