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당신의 여행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A? B? C?
세계일주를 계획하면서의 일이다. 우리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행할 나라를 선정하는 일보다 우리의 여행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부터 파헤쳐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두 사람 모두 도전적이고, 활발하고, 사교적이고, 열정적인 성향이다. 그래서 한 군데에 오래 머물며 쉼과 힐링을 반복하는 여행보다는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고 소통하며 새로운 일들을 하나 둘 도전하는 여행을 선호한다. 여행 스타일 역시 그 사람의 관심사와 성향에 맞춰지는 듯하다.
아내:
나는 어릴 적부터 해외여행을 가면 꼭 ‘림보’를 들고 갔다. 엥? 웬 림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겐 내 키와 얼추 비슷한 봉 3개를 들고 공항 가는 길만큼 설레는 일이 없었다. 첫째는 해외여행을 간다는 감격으로 설레었고, 둘째는 림보를 통해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에 대한 설렘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온통 행복했다.
그렇게 나의 해외여행은 늘 림보와 함께였다. 물론 처음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다. 첫 해외여행이자, 첫 림보 여행은 미국 뉴욕이었다. 뉴욕엔 내 15년 지기인 고등학교 친구 은정이가 패션 회사를 다니며 터를 잡은 곳이기도 하고, 이민 간 외삼촌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함께 친했던 지원이와 일 년 중 한 번. 황금 같은 휴가기간을 함께 맞췄다. 휘황찬란한 맨해튼의 화려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세련된 도시 한복판엔 뉴욕 타임스퀘어가 있다. 나는 오랜만에 은정이를 만난 반가움도 있었지만, 타임 스퀘어 그 중심에서 림보를 펼쳐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은정, 지원: 영아, 림보 하는 거 다 좋은데, 우리는 빠질게.
-나 : 엥? 왜.. 함께 여행 왔는데, 함께 즐겨야지...! 재밌을 거야! 함께하자!
-지원: 나는 사실 모마 미술관 보러 뉴욕 왔어. 복잡한 건 딱 싫어.
-은정: 나는 요즘 트렌드가 뭔지 아이쇼핑 좀 하고 있을게! 무슨 일 생기면 카톡해!
이때 나는, 한 대 띵~ 맞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15년 동안 친했던 친구들이라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놀고, 수다 떨 때는 몰랐던 ‘여행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나의 관점에서만 보면, 모마 미술관이 주는 여운보다는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얻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이 힘들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만 생각했고, 그게 이기적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다면 함께 여행한다는 행위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배움도 하나 얻었다.
그래서 뉴욕에 있는 기간 동안 우리는 매일같이 낮에 각자 림보(나), 미술관(지원), 회사 출근(은정)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고, 은정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함께 저녁을 먹고 그날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여행으로 패턴을 바꿨다. 다행히도 각자에게 맞는 여행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상대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한 여행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매번 여행을 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 일 년에 한 번 주어지는 내 황금 같은 휴가에 함께한 그 상대를 맞춰주는 여행이 아닌, 내가 오롯이 하고 싶은 여행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이때부터 나의 해외여행은 늘 혼자였다.
물론, 내 친구 “림보와 함께”
독일 베를린에서 림보를 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휠체어를 탄 남성분이 도전하고 싶다며 내게 다가왔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임이라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리가 불편한 분은 처음이었다. 나는 내색하지 않은 채 그분이 도전하는 타이밍에 맞춰 림보 봉을 살짝 올려 들며 "성공!"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분에게 다가가 도전해주셔서 감사하고, 영광이라는 말을 전했다. 이 광경을 쭉 지켜보신 아내분께서도 남편이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오히려 참여하게 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주셨다. 진심으로 즐거웠어요!라는 말과 함께.
나의 여행 스타일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는 것이 행복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연애할 때부터 림보를 들고 세계일주를 하겠다던 아내에게 지금의 신랑은 이렇게 제안했다.
‘ 너무 멋진 생각이야. 나와 함께 림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재밌는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해보지 않겠어?”
그때, 나의 무대가 그의 기획력으로 좀 더 커질 수 있겠구나! 내가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꿈과 같던 일들이 그와 함께라면 현실로 이뤄질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스타일이 같은 이성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니 그와 만나는 시간이 나에겐 여행이듯 황홀했고, 행복했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과 평생을 이렇게 여행하듯 인생을 그려가고 싶다는 큰 꿈이 생기기 시작했고, 같은 여행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친구 같은 신랑과 결혼에 골인 해 세계일주를 하게 되는 기가 막힌 꿈의 실현이 일어난 것이다.
남편:
그토록 하고 싶어하던 종합상사에 최종 합격 발표 후 정확히 2주 후에 나는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야 했다. 여행을 워낙 좋아했던 나는 합격 발표 후 다음 날 바로 캄보디아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아무런 계획이 없이 단지 앙코르왓트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향했다. 며칠 동안 앙코르왓트를 구경 후 남는 시간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근처 박물관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캄보디아 사람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구경을 하다 말고 한국 사람이냐며 말을 걸어왔고 그 중 13살짜리의 한 소녀는 K-POP의 광팬이었다. 그 친구는 한국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며 내일 본인의 학교에 놀러올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고 나는 당연히 그 초대를 수락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나는 캄보디아의 한 중학교에 찾아가게 되는데, 정문에서 문을 지키고 있던 남학생들이 왠 동양인이 다가오니 처음에는 경계를 하다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하니 문을 열어줘서 학교 운동장을 가로 질러 건물로 걸어 가고 있었다. 운동장의 중간 정도 갔을까, 그 친구는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오늘 하루 종인 창밖만 바라본 마냥. 그 친구는 나를 교실로 안내하더니 반 학생들과 선생님에게 나를 소개시켜 줬다. 그 친구의 에스코트 속에서는 나는 캄보디아의 한 작은 중학교를 구경할 수 있었고 다시 자전거를 함께 타고 우리는 그 친구의 남동생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로 가서 그 초등학교의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엔? 다시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함께 자전거를 탔다는 것은 동양인 남자가 앞 의자에 현지인 소녀가 뒷 보조석에 앉았다는 뜻이다...씨엠립 시내 한 복판에서 우리는 모든 이의 관심거리였다) 그 친구의 집으로 가게 되는데..그 곳에서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 부모님께서 주신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한국 최신 댄스 노래를 목이 터져라 함께 불렀다.
특별한 틀 안에서의 여행이 아닌 도전 정신이 가득한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추억거리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어찌 보면, 아내와 이런 점이 많이 닮아서 우리는 함께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바로 봉사였다.
어릴 때부터 봉사하며 세계일주를 꿈꿨던 나에게 혼자가 아닌 아내와 함께 봉사하며 도전적으로 여행하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세계일주 속에 봉사라는 커다란 키워드를 넣기로 했다. 세계 여행은 우리 부부에게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선물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봉사를 통해서 우리도 세계의 다양한 사람에게도 조그만 선물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행 중 봉사라는 키워드를 넣는 것이 우리의 여행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여행 중 봉사를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고, 여행 중 무턱대고 이곳저곳을 찾아가서 봉사가 가능한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국내의 다양한 해외 봉사 사이트를 통해 알아봐도 절차가 까다롭거나 비용이 비싸고, 사전에 한국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 등 상황이 우리와 맞지 않았다. 그러다 해외에 다양한 NGO 혹은 봉사 에이전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몇 개의 사이트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함 비용으로 봉사를 미리 예약할 수 있었다.(그 방법에 대해서는 다시 상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여행 출발 전, 6월 인도, 7월 탄자니아 봉사를 사전에 예약했고 그 이후에는 여행 일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여행 중에 또 다른 봉사를 기획하기로 하였다.
도전과 봉사 바로 우리 세계 일주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키워드였다.
무턱대고 들이대는 스타일. 불. 도. 저. 특히 여태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라면 눈에 더욱 총기가 생긴다. 봉사 또한 열정적으로 하다 보니 참 많은 에피소드가 생겼다. 1년 동안 ‘여행자’라는 신분으로 가능한 모든 일에 뛰어들어 도전해 보고 싶었고, 우리 부부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봉사를 통해 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으며, 경험을 통해 얻게 될 배움의 가치를 느껴보고 싶었다. 나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함께. 평생 걸어갈 인생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더 성숙한 부부가 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겪을 수만 있다면, 경험이자 배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세계일주가 끝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게 없겠지만, 어른들 말씀대로 내 안에 스며들어 피가 되고 살이 될 것 같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자신에게 질문해보자.
-나의 여행 스타일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그 이유는?
-여행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 이유는?
이번 여행은 어떤 여행을 해볼까?
질문을 던져 본다면
당신의 여행지는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