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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토론

믿음, 언어의 이중성

by Essaytowin

얼마 전 강남역 전광판에 걸린 한 광고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모델은 페이커였고, 문구는 단 한 줄이었습니다.

“믿으니까.”


그런데 이 문장은 의도와는 달리, 역설적인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믿으니까’라는 말이 오히려 ‘불신’을 상기시키는 것이지요. 언어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순간처럼 다가왔습니다.


철학자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문장은 곧 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전통적 신념의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언어는 언제나 이중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어떤 선언은 그것을 가능케 한 전제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동시에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광고 언어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정말로 ‘믿음’이 확고하다면 굳이 ‘믿으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구체적인 사실을 제시하는 편이 훨씬 더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1위, 전 세계 4위 거래소”라는 문구였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언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을 흔드는 힘입니다. 광고 문구 하나에도 그 이면에 담긴 심리와 진실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이중성을 간파하는 순간, 언어의 무게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합니다. 언어를 단순한 표현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숨어 있는 힘과 이중성을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고요. 글쓰기와 읽기는 곧 언어의 결을 세밀하게 느끼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문장 하나를 깊이 읽어내는 경험이 쌓일 때, 학생들은 세상을 해석하는 눈을 얻게 됩니다.



결론:

결국 하이데거에 따르면,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에서, 언어의 힘을 믿고 언어의 이중성을 감지하는 감각을 길러 주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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