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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유은영 Feb 17. 2022

미나리의 계절이 돌아 왔습니다

대구 팔공산미나리 VS 청도 한재미나리

미나리의 계절이다. 노릇노릇한 삼겹살에, 촉촉한 수육에 미나리를 곁들이면 집나간 입맛도 돌아온다. 대구 경북 사람들의 미나리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다. 미나리가 시작되면 청도 한재와 팔공산 미나리 단지는 미나리 반, 사람 반이다. 미나리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대구 팔공산미나리와 청도 한재미나리를 제대로 먹어보자!

삼겹살 상추쌈에 먹는 당신은 초보, 미나리와 구우면 핵꿀맛 대구 팔공산미나리

<동의보감>에 따르면 미나리는 갈증을 풀어주고 머리를 맑게 한다. 예로부터 혈액을 깨끗하게 하고 독극물을 해독한다고 알려졌다. 겨우내 움추렸던 몸에 활기를 불어 넣고, 미세먼지로 부터 보호해 주는 그래서 이맘때 딱인 먹거리다.

미나리 맛은 물과 공기가 좌우한다. 팔공산미나리와 청도 한재미나리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도 자연조건 때문이다. 대구 최고의 청정지역으로 손꼽히는 팔공산 자락에는 미나리 농가가 몰려 있다. 미대동, 용수동, 신무동에 팔공산미나리작목반 연구회 농가만 70여 곳. 정식 가입이 안 된 농가까지 더하면 100여 농가가 넘는다.

팔공산미나리는 팔공산의 깨끗하고 선선한 바람과 깊고 맑은 지하 암반수로 자란다. 더구나 도심보다 5℃ 이상 낮은 팔공산의 기온 덕분에 보통 30일이면 자라는 미나리가 이곳에서는 45일 이상 걸린다. 그래서 속이 더 꽉 차고, 더 아삭하며 향긋함이 두 배다.

이제 팔공산미나리단지로 출발! 아 참,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게 있다. 팔공산미나리단지에서는 미나리만 판다. 음식을 만들어 내는 식당이 아니기 때문에 미나리 이외의 먹거리는 손수 챙겨가야 한다. 그렇다고 번거롭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불판과 집게, 가위, 나무젓가락, 쌈장까지 모든 게 다 있다. 준비해 갈 것은 삼겹살 하나면 충분하다. 그 외에 김치나 햇반 정도만 있으면 된다. 깻잎, 상추 등 다양한 쌈 재료를 챙긴다면 당신은 초보다. 미나리를 먹다보면 안다. 상추, 깻잎은 까맣게 잊혀진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팔공산미나리 농가는 미나리하우스 옆에 미나리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비닐하우스를 운영한다. 이곳에서 미나리를 사고 자릿값을 내면 삼겹살 파티를 할 수 있다. 미나리 한 단에 1만2000원, 자릿값은 단돈 5000원이다.

여기서 중요한 꿀팁 하나. 삼겹살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갈 무렵, 미나리를 송송 잘라 올린다. 미나리가 살짝 익으면 삼겹살과 함께 먹는다. 미나리의 향긋함이 입 안을 강타하고 뒤이어 삼겹살의 고소함이 퍼진다. 구운 미나리는 향긋한 맛은 그대로인데, 달짝지근한 미나리즙이 쫘르르 나와서 꿀맛이 따로 없다. 삼겹살은 굽기 바쁘게 사라지므로 조금 넉넉하게 사 가는 것이 좋다. 미나리삼겹살 조합을 어느 정도 즐겼다면 이제 김치나 통마늘, 버섯 등 다양한 조연을 함께 구울 차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져간 밥을 넣고 몽땅 볶을 것. 미나리삼겹살 볶음밥은 배가 불러도 포기할 수 없다.

먹고 난 불판과 나무젓가락 등 자리를 정리하는 것은 손님 몫이다. 남은 것 없이 깔끔한 밥상이라 정리도 쉽다. 집으로 돌아가는 손마다 미나리 한두 봉지씩 들려 있는 건 기본이다. 팔공산미나리는 2월 초순부터 시작해 4월 중순이면 끝난다. 이때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한다.

미나리수육부터 미나리전까지, 대한민국 미나리 일번지 청도 한재미나리

삼겹살을 직접 준비하는 것이 귀찮다면 미나리 원조, 청도 한재로 가보자. 우리나라 미나리 신드롬을 일으킨 곳이다. 청도 한재는 남산과 화악산 사이 계곡에 미나리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선 청정 미나리마을이다. 1980년대부터 미나리를 재배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무려 130여 농가에 이른다. 한재미나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맛집들이 줄지어있다. 미나리 시즌이 되면 주말마다 교통대란이 생길 정도로 인기다. 몇 년 전만 해도 대구 팔공산미나리단지처럼 삼겹살을 사 가서 먹는 비닐하우스가 주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몸만 가면 삼겹살에 수육, 미나리전, 미나리비빔밥까지 미나리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맛집들이 수두룩하다.

한재미나리는 식감이 연해서 생으로 먹기가 좋다. 미나리만 쌈장에 살짝 찍어 먹어도 기가 막히다. 아삭하면서도 부드럽고, 향이 은은해서 남녀노소 누구라도 거부감이 없다. 최고의 궁합은 역시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이다. 한재미나리는 ‘미나리삼겹살’을 전국으로 퍼뜨린 일등공신이 아닌가. 미나리를 돌돌 말아 그 위에 삼겹살을 올려 먹으면 환상적이다. 미나리 향기 덕분에 고기 특유의 느끼함은 사라지고, 고소한 육즙과 상큼한 맛이 어우러져 혀를 사로잡는다.

미나리수육도 일품이다. 쫀득쫀득하고 담백한 수육과 부드럽고 아삭한 미나리 주연에 예닐곱 가지 장아찌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밥상은 보는 순간 침샘이 폭발한다. 미나리와 수육, 그리고 짭조름한 장아찌 삼합의 조합은 정말 맛의 신세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나리 생채무침을 밥에 올린 미나리비빔밥도 별미다. 시골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쓱쓱 비벼 한 입 먹으면 겨우내 잃어버린 기운을 단숨에 찾아준다. 마지막 주자는 미나리전이다. 미나리 99%에 검은콩가루 반죽을 살짝 입혀 구워내는 미나리전은 한 접시가 그대로 봄날의 들판 같다. 짙은 초록빛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입 안 가득 봄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