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과 잃어버린 나의 요양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요양원이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by designer diary

미국에는 구글, 메타, 아마존, 애플 등 수많은 테크 대기업이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그중에서도 ‘요양원’이라 불릴 정도로 워라밸과 복지가 좋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장기 근속에도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였다. 지금은 복지가 예전보다 일부 축소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족 중심의 지원과 다양한 혜택이 유지되고 있다


나는 이런 별명이 있다는 걸 입사 확정이 난 후에야 알게 됐다. 석사 졸업 학기에는 하루에 세네 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하루에 면접을 다섯 개씩 본 날도 있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 있던 상태에서, 마소라는 거대한 요양원에 들어가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약간 들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입사하자마자 ChatGPT가 쏘아 올린 AI 전쟁이 시작됐고, 그 여파로 구조조정과 대규모 레이오프가 예고도 없이 연달아 터졌다. 입사 후 몇 달 뒤인 2023년 1월에는 전 사원의 약 5%에 해당하는 1만 명이, 그리고 바로 지난달(2025년 7월)에도 또다시 9천 명이 레이오프 됐다. 레이오프는 성과 부진으로 인한 해고(Fire)와는 다르게, 경영상의 이유나 구조조정에 따라 이뤄지는 인력 조정이다. 해고된 직원에게는 퇴직금, 각종 수당, 일정 기간의 건강 보험 유지 등의 severance package가 제공된다.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들은 일시적으로 해고되더라도 패키지를 받으며 재취업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나처럼 비자를 가진 외국인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고용주가 없는 상태로는 60일 이상 미국에 체류할 수 없기 때문에, 늘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 취업만 하면 안정될 줄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영주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일자리를 갑자기 잃는 일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 매달 갚아야 할 모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요즘 미국 취업 시장은 회사가 '갑'이다. 고용은 얼어붙었고, 유능한 구직자가 넘쳐난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조직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보다 개인의 성과와 존재감을 증명해야 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고, 프로젝트마다 우선순위가 바뀌는 일도 잦아졌다. AI 관련 업무에 있다 보니 직접적인 타격은 적었지만, 빠른 변화 속도와 높아진 기대치는 버겁게 다가왔다.


회사가 나의 비자와 영주권을 모두 쥐고 있기에, 떠날 수도, 그만둘 수도 없는 나는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쥐어짜도 더 이상 의욕이 나지 않는 지점에 도달했지만, 마치 괜찮은 척,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계속 일을 해야만 했다. 새로 고침을 눌렀는데 로그인이 안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간 적도 있다. 어젯밤엔 밤 12시 50분이 되어서야 노트북을 덮고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오늘 하루는 무사히 지나갔다. 내 자리도, 내가 맡은 일도 그대로였다.


이 변화가 언제쯤 잦아들지 알 수 없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AI가 나를 대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잠시 쉴 수 있는 진짜 요양원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