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미국 빅테크 생활

by designer diary

금요일 오후 3시, 2주간 진행한 디자인 스프린트 결과를 임원급과 파트너 팀 리더들에게 발표하는 자리였다.

나는 발표자 중 가장 주니어였고, 다른 발표자들은 모두 시니어급 이상이었다.


발표자는 우리 팀 디자이너 2명과 다른 팀 디자이너 2명.

금요일 아침, 마지막으로 발표 자료를 정리하는 미팅에서 우리 팀 리더가 흐름을 잡아주고 다른 일정으로 미팅을 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 다른 팀 디자이너 한 명이 말했다.


“시간도 부족하고, 네 발표 내용은 전체 흐름과 어긋나는 것 같아. 그 부분은 빼는 게 낫지 않을까?"


옆에서 듣던 우리 팀 디자이너가 “저 내용은 꼭 발표했으면 좋겠어.”라며 거들었지만, 다른 쪽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덧붙였다.


높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라, 팀 간 누가 더 주목받을지 미묘한 신경전이 느껴졌다.

지난 2주간 내가 참여한 작업이 많이 반영되었지만, 정작 발표에서는 제외될 분위기였다.


하지만 맞서 싸울 기운이 없던 나는 말했다.


“그래, 내 파트는 상황 봐서 발표하는 걸로 하자.”




몇 시간 뒤 발표가 시작됐다.

우리 팀 디자이너가 먼저 발표했고, 이번 스프린트를 사실상 리딩했던 만큼 질문과 토론이 길어졌다.

다음은 다른 팀 디자이너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역시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마무리가 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때 이미 4시. 미팅 시간을 넘기는 걸 꺼리는 분위기상, 내 차례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팀 리더가 물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다들 괜찮다며 허락했고, 기회가 내게 돌아왔다.


“여러분의 주말이 빨리 시작될 수 있도록, 최대한 효율적으로 발표하겠습니다.”


가볍게 농담을 던지고 발표를 시작했다.




경력이 훨씬 많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돋보이려면, 고객 관점에 집중한 아이디어라는 점과

시간은 더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조해야 했다.

준비해 둔 발표 스크립트를 조금 비틀어 말을 덧붙였다.


“제가 준비한 부분은 전체적인 흐름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사용자 테스트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여서 추가로 말씀드립니다.”


결과는 좋았다.

내 아이디어가 직관적이고 새로웠던 덕분일까, 긍정적 반응을 받았다.

이 발표 덕분에 다음 주 관련 미팅이 추가로 열렸고, 해당 프로젝트에 계속 참여하게 됐다.




발표를 마친 금요일 저녁, 뿌듯함과 약간의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같은 팀 덕분에 내가 한 일을 보여줄 수 있었고, 인정도 받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혹시 다음 미팅에서 내가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


많은 사람들이 겪는 임포스터 신드롬*과 나도 늘 싸우고 있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기분이 좋았다.

‘나, 꽤 괜찮은 디자이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다들 회사와 자신을 구분 짓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도 가끔은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럴 때, 행복하다.


*임포스터 신드롬(가면 증후군)은 자신의 기술과 성취를 의심하고, 성공이 외부의 요인(운 등) 덕분이며 자신은 자격이 없는 사기꾼이라고 느끼는 심리적 현상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이며, 어떠한 조직이나 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