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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희 Aug 30. 2021

세터? 아포짓? 그게 다 뭐냐면…

배구의 포지션을 알아보자 (1)

일반적인 선발 로테이션. 굿노트로 열심히 그렸다.

    배구 경기를 할 때는 오른쪽 그림처럼 총 일곱 명의 선수들이 선발 라인업을 이루어 코트에 나선다. 각 포지션의 위치를 보자면 세터(S)와 라이트(R) 포지션이 대각을 이루고, 레프트(L)와 레프트, 센터(C)와 센터가 대각을 이룬다. 그리고 후위 센터 자리에서는 리베로(Li) 선수와 교체하여 수비 자리를 지킨다. 이러한 포지션을 부르는 명칭은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네트 앞에서 공격하는 위치에 따라 공격수들을 각각 레프트, 센터, 라이트라고 부른다.

    국제 대회에서는 공격의 성격에 따라 각각 아웃사이드 히터, 미들 블로커, 아포짓 스파이커라는 명칭이 붙는다. 사이드 쪽에서 공격을 한다는 의미에서 레프트를 아웃사이드 히터 혹은 윙 스파이커라고 부르고 라이트 공격수가 세터와 대각을 이룬다는 의미로 아포짓 스파이커라고 부른다. 센터 공격수는 주로 블로킹을 담당하기 때문에 가운데 블로킹을 맡는다는 의미에서 미들 블로커라고 칭한다. 세터, 리베로를 부르는 명칭은 동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이러한 포지션 조합으로 로테이션을 구성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세터와 라이트, 레프트와 레프트, 센터와 센터가 대각을 이루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지만 팀의 사정에 따라 혹은 전술에 따라 다르게 가져가는 경우도 있긴 있다. (극히 드물다.) 예를 들면, GS칼텍스는 아래 사진처럼 레프트가 다섯 명이 주전으로 나오는 극단적인 좌파 배구를 보여준 적도 있었다.

[V-리그탑골공원] KGC인삼공사 vs GS칼텍스 / 2017년 1월 1일

    이때 GS는 어쩌다가 이런 로테이션을 짜게 된 건지, 왜 위의 그림이 정석적인 로테이션인지 대한 얘기도 설명하면 좋겠지만 그 얘기는 로테이션에 대해 글을 쓸 기회가 있을 때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


    1. 세터

    배구의 가장 기본적인 룰은 세 번의 패스 안에 공을 상대방의 코트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세터는 그 두 번째 패스를 담당하는 포지션으로 공격수에게 적절한 공을 배급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때 세터가 공격수에게 공을 올려주는 것을 '토스', 혹은 '공을 세팅한다' 라고 표현한다. 세터의 첫 번째 역할은 공격수에게 맞는 공을 토스하는 것이고 두 번째 역할은 어떤 공격수에게 어떤 공격을 맡길지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참 간단해보이지만 사실 세터는 잘 해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포지션이다.


    세터는 정확한 스피드와 높이, 적절한 네트와의 간격으로 공격수에게 맞는 공을 토스해주어야 한다. 공격수마다 스파이크 타점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해야 하고 어떤 공격을 하는지에 따라 토스하는 공의 스피드도 달라지기 때문에 그 순간 순간 어떤 공을 토스할 것인지 판단하고 이를 실행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만약 리시브가 정확하게 연결되어 세트 플레이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빠르고 힘 있게 공을 쏴주어야 하고 어렵게 수비되어 연결되는 상황이라면 공격수가 충분히 힘을 실을 수 있도록 높이와 속도를 여유 있게 조절해야 한다. 또한 토스에 적절한 힘이 실리면 공격수들이 더 매섭게 공을 때릴 수 있기 때문에 손목의 힘을 실어 공을 밀어주어야 한다. 다만 무작정 세게 토스하면 자칫 거칠게 세팅되어 공의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공에 회전이 들어가서 때리기 어려울 수 있다. 이렇게 토스 자체도 충분히 어렵지만, 세터는 더 나아가 팀의 플레이를 이끌어야 한다.

    흔히 세터를 코트 위의 야전사령관이라고 부르곤 한다. 최종적으로 어떤 공격을 할지 결정하고 전체적인 플레이를 조율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세터는 우리 팀뿐만 아니라 상대 팀 선수들의 위치를 항상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 상황에 적합한 플레이를 만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상대 팀의 레프트 블로킹이 낮다면 레프트 공격수에게 빠르게 공을 토스하여 퀵오픈 득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 혹은 우리 팀의 중앙 공격수에게 상대방 블로커들의 견제가 심한 상황에서는, 속공을 페이크로 활용하면서 윙 공격수에게 토스하여 공격수에게 원 블로킹 상황 혹은 노 마크 찬스를 만들어줄 수도 있다. 우리 팀의 장점과 상대 팀의 약점을 파악하여 우리 팀 선수들을 살리면서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드는 플레이가 무엇인지 판단하고 그에 맞게 볼을 분배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공격수들의 컨디션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여 컨디션 난조에 있는 공격수들에게는 점유율을 줄여주는 등 경기마다 상황에 맞는 판단이 필요하다. 이렇게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야 하고 또 그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세터의 자리는 어렵고 또 부담감이 크다.


    한 선수가 팀의 주전 세터로 자리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일단 주전 세터 자리가 한 자리뿐이기 때문에 세터로 프로에 데뷔한 선수가 코트에 들어와 경기를 뛸 기회를 잡는 것 자체가 어렵다. 또, 이미 잘 하고 있던 선수더라도 팀의 멤버가 바뀌거나 팀을 이적했을 때 새로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세터 선수가 처음 출전을 하는 순간에 더 많은 응원을 보내고 싶고, 세터 선수들이 경기 운영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면 비판보다 다음 경기에선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보내주고 싶다.


    배구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는 세터의 움직임을 보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무엇이 좋은 토스인지 범실성 토스인지도 잘 구분이 안 됐었다. 워낙 플레이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세터의 움직임은 한쪽 코트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눈에 잘 들어오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터의 움직임을 읽으려고 할수록 배구의 플레이 자체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더 다양한 각도로 경기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도 토스웍이 좋다는 게 무엇인지, 볼 끝을 세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완벽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하나씩 하나씩 알아갈수록 배구가 점점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2. 라이트 (아포짓 스파이커)

    라이트 공격수는 한 마디로 팀의 주공격수라고 말할 수 있다. 대체로 가장 많은 득점을 책임지며 반드시 득점이 나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공격을 책임지는 해결사의 역할을 한다. 이번 도쿄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상대였던 세르비아의 보스코비치 선수가 바로 라이트 공격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리시브 라인에 가담하지 않고 공격에 전념하며 높이와 파워를 겸비한 선수들이 이 포지션을 담당한다. 주로 네트의 오른쪽에서 공격하기 때문에 왼손잡이인 선수들의 경우 때릴 수 있는 각도가 더 많아 오른쪽 공격에 강점이 있다.


    국내 리그에서는 라이트 포지션에 외국인 선수를 기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 국내 선수들보다 높이와 파워의 측면에서 우세한 신체 조건을 지닌 선수를 영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이트 공격수의 역할을 고려할 때 어쩌면 외국인 선수가 라이트 포지션을 담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라이트 선수의 입지가 점점 좁아진다는 것이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무릎 수술을 한 지 2개월만에 김희진 선수가 대표팀에 합류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을 가진 국내 라이트 선수 자원이 부족한 것이다.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를 담당해온 김희진 선수도 소속팀에서는 센터 포지션을 담당한다. 매번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면서 센터와 라이트 포지션을 오갔던 것이다. 얼핏 듣기로는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센터 포지션과 라이트 포지션은 해야하는 역할도 공격 유형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선수의 입장에서는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러한 경향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주공격수를 맡았던 선수들이 프로에 와서 팀의 상황에 따라 센터와 윙(레프트 혹은 라이트)을 병행하는 케이스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센터 포지션을 소화한 현대건설의 정지윤 선수, GS칼텍스의 권민지 선수가 그러했으며*, 이번 컵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IBK 기업은행의 최정민 선수 또한 마찬가지다. 멀티 포지션을 소화한다는 것은 그 선수와 소속팀에게 있어서 좋은 전력이 되기도 하지만, 선수 본인과 여자배구의 미래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외국인 선수를 아포짓 스파이커로 기용하게 되는 상황과 별개로 국내 라이트 자원을 어떻게 육성할지에 대한 배구계의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정지윤 선수와 권민지 선수는 다가오는 시즌부터 레프트 포지션으로 정착할 것으로 보인다.


    글이 너무 길어져버리는 바람에 레프트, 센터, 리베로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글로 미룬다. (왜 매번 설명이 길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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