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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희 Sep 16. 2021

레프트? 리베로 그건 또 뭐냐면…

배구의 포지션을 알아보자 (2)

    3. 센터 (미들 블로커)

    센터는 네트의 중앙을 지키는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이 주로 하는 역할은 블로킹, 그리고 상대 블로커들을 교란시키는 속공과 이동공격이다. 이러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큰 신장을 가진 선수들이 센터 포지션을 맡는 경우가 많다. 블로킹을 할 때 키가 크고 팔 길이가 길수록 유리하고 빠른 공격을 때릴 때에도 높은 타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열렸던 VNL과 올림픽을 통해 세계 배구의 흐름에서 확실히 센터 공격의 파워와 스피드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국내 리그에서도 센터 공격수들이 중앙 오픈 공격을 때리거나 이단으로 연결된 큰 공격을 때리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센터의 공격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센터 공격수들의 공격은 무엇이 다를까? 센터 공격수들이 사용하는 공격은 속공, 개인 시간차, 이동공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속공은 말그대로 중앙에서 빠르게 때려내는 공격이다. 속공은 세터와 센터의 거리에 따라서 A속공, B속공, 앞 속공, 백 속공으로 구분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세터와 센터 선수의 거리가 한두 걸음 이내로 가까운 상태에서 세터가 앞으로 토스하여 때리는 속공을 앞A 속공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세터와 센터 선수가 서너 걸음 정도의 거리에서 세터가 뒤로 백토스를 하여 시도하는 속공을 백B 속공이라고 부른다. 즉 앞A, 앞B, 백A, 백B 이렇게 총 네 가지 속공을 사용한다. 속공을 때리는 센터 선수의 성향과 세터와 센터의 호흡에 따라 팀이나 선수마다 주로 사용하는 속공의 종류가 다르다. 개인 시간차는 속공과 비슷하지만 일반적인 속공을 때리는 타이밍에서 공을 때리지 않고 한 템포를 늦춰서 공을 때리는 것이다. 일반적인 속공에서는 세터가 볼을 올리지마자 이미 점프를 뛴 속공수가 공을 때리지만, 시간차 공격에서는 세터가 토스한 이후에 센터가 점프를 시작한다. 개인 시간차는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많이 사용하는 공격으로 속공과 시간차 공격을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할 때 상대 블로킹에 혼선을 주기 쉽다.

도미니카공화국전 4세트 김수지 선수의 이동공격

    이동공격은 앞선 두 가지 공격 유형과는 좀 다르다. 센터 공격수가 세터의 앞쪽에 있다가 뒤쪽으로 스텝을 밟고 길거나 짧은 거리로 네트 오른쪽 방향으로 뛰어가서 공을 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센터 공격수들도 이러한 공격 유형들을 대부분 소화하지만 스피드와 파워에 있어서 더 강력한 공격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10년 가까이 한국 대표팀에서 센터를 지키던 김수지 선수와 양효진 선수가 국가대표팀에서 은퇴 의사를 밝히면서 대표팀 센터 포지션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센터 포지션에서 좋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있다.

    도쿄올림픽에도 다녀왔던 인삼공사의 박은진 선수는 VNL과 이번 올림픽에서 서브를 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쿄올림픽 터키전 5세트에서 김연경 선수의 연속 다이렉트 득점을 이끌어낸 것 역시 박은진 선수의 좋은 서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돌아온 코보컵에서도 블로킹과 이동공격, 속공 모든 부분에서 이전보다 발전된 기량을 보여주었다. 인삼공사가 승리했던 현대건설과의 경기에서도 박은진 선수의 최다득점이 있었다.

    현대건설의 이다현 선수와 흥국생명의 이주아 선수 또한 이번 코보컵을 통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선수 모두 블로킹과 속공, 이동공격 등 모든 부분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어느덧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은 모습이었다. 이주아 선수는 블로킹과 공격 모두에서 많은 득점을 기록하며 흥국생명이 승리한 경기에서 큰 기여를 했고 이다현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작년 코보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인삼공사의 정호영 선수 역시 큰 신장을 가진 기대주다. 지난 시즌의 부상 이후 아직 큰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코보컵에서의 인상적이었던 모습과 정호영 선수의 신체 조건을 고려할 때 충분히 기대를 받을 만한 선수이다. 이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 앞으로 어떤 선수가 대표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해볼 만 하다.


    4. 레프트 (아웃사이드 히터/윙 스파이커)

    김연경 선수를 세계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라고 말하는 이유는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연경 선수는 공격 득점, 공격 성공률, 리시브 효율, 디그 등 모든 공격과 수비의 지표에서 우수한 스탯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해왔다. 그리고 김연경 선수가 맡고 있는 레프트 포지션은 김연경 선수처럼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해야 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물론 김연경 선수는 그 외에도 블로킹, 서브, 이단 연결까지 다 잘한다.) 레프트 선수들은 라이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공격 점유율을 책임지며 오픈 상황에서 이단으로 연결되는 공을 해결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리시브 라인에 참여하여 상대방의 서브를 받는 역할을 한다.

    레프트 선수들의 공격력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레프트 공격수가 주전으로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은 리시브 능력에 있다. 아무리 공격력이 훌륭한 선수라도 리시브를 받지 못하면 레프트 포지션으로 주전 라인에 합류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리시브라는 게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배구의 수비는 크게 리시브와 디그로 나뉘는데 리시브는 상대방의 서브를 받는 것을 뜻하며 디그는 상대방의 공격을 받는 것을 말한다. 배구 선수들에게 무엇이 더 어렵냐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디그보다 리시브가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블로킹의 유무 차이이다. 공격 상황에서는 블로킹이 가능하기 때문에 디그를 할 때는 블로킹과 상대 공격수의 폼을 보고 어느 정도 공격 코스를 예측하여 받아낼 수 있다. 그러나 서브 리시브의 상황에서는 블로킹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또한 디그와 리시브는 정확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리시브를 할 때는 세터가 토스를 준비하는 위치로 정확하게 보내야 하지만 디그를 할 때는 공을 높이 올리기만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리시브를 받는 부담감이 훨씬 크다. 리시브는 플레이를 시작하는 가장 첫 번째 패스이기 때문에 리시브를 실패하면 우리 팀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점수를 잃는다는 부담감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레프트 공격수들은 특히 상대팀의 목적타를 받기 때문에 계속해서 리시브를 받는 것이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심리적으로도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물론 리시브가 조금 흔들린다고 해서 레프트 선수로 출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리시브가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버텨서 공격 부분에서 해결 능력을 발휘한다면 리시브에서의 불안함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계속해서 목적타 서브가 날아오는 상황에서 리시브 불안을 견디고 공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 글에서 라이트 포지션에 대한 설명으로 말했듯이 한국 리그에서 라이트 포지션은 주로 외국인 선수가 담당한다. 고등학교까지 주공격수 역할을 하던 선수들은 프로에 와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리시브 라인에 참여하지 않는 센터 포지션으로 전향하여 라이트 포지션을 병행할 것인가 혹은, 리시브를 받기 시작하면서 레프트 포지션으로 정착할 것인가. 이렇게 국내 프로 리그에서 윙 공격수로 활약하려면 레프트 포지션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날개 공격수들에게 있어서 리시브는 숙명이다. 처음 레프트 포지션으로 출전하기 시작하는 선수라면 당연히 목적타 서브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고, 리시브 능력이 좋은 선수도 목적타 서브를 받다 보면 리시브에 대한 부담감으로 흔들릴 수 있다. 리시브는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부분이고 끈질긴 목적타 서브를 받으면서 성장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레프트로 성장하고 있는 선수들이 견디고 또 견디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많은 레프트 선수들이 리시브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다. 부담감을 안고 있을 선수들에게 무턱대고 비난하기 보단 그 시간을 견디고 성장할 수 있도록 묵묵히 응원을 보내주길 바란다.


    5. 리베로

    배구 경기를 보면 혼자만 다른 색깔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선수가 바로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하는 선수다. 리베로 선수들은 수비 전문 선수로 코트 내에서 공격을 할 수 없다. 리베로 선수가 수비해서 넘어간 공이 우연히 상대 코트에 떨어져서 득점이 되더라도 리베로 선수의 득점으로 기록되지 않고 상대팀의 수비 범실로 기록된다. 또한 리베로 선수가 어택라인 안쪽에서 오버핸드로 토스한 공을 공격하는 것도 반칙에 해당한다.

    리베로 포지션이 처음 생긴 이유는 어렸을 때 배구를 시작했으나 나중에 키가 크지 않아서 경기를 뛸 수 없는 선수들을 구제하기 위함이었다. 요즘은 꼭 키가 작은 선수들만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신장이 작은 선수들이 발이 빠르고 순발력이 좋은 편이기 때문에 리베로 포지션엔 키가 작은 선수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것도 배구 선수들 기준에서 작다는 말이다. 배구 경기를 볼 때 리베로 선수들이 엄청 작아 보였는데 막상 프로필을 보면 대부분 나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리베로라는 명칭은 이탈리아어를 어원으로 하는데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명칭은 리베로 선수가 코트 안팎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생겼다. 배구에서는 한 세트에 총 6번의 교체 카드를 쓸 수 있는데, 리베로는 랠리 중간만 아니라면 그 교체 횟수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교체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리베로 선수들이 다른 색깔의 유니폼을 입는 이유이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수시로 코트를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교체 횟수나 로테이션을 확인하는 심판이 헷갈리지 않도록 확연하게 구분 가능한 색깔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리베로 선수들은 코트 안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교체되기 때문에 경기 주장을 맡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태까지 리베로 선수가 팀 주장을 맡는 경우 팀 주장과 경기 주장을 따로 정했었는데 최근 국내에서는 리베로 선수도 주장을 맡을 수 있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이번 시즌 한국도로공사에서 임명옥 선수가 주장을 맡으면서 국내 리그에서 최초로 리베로 주장이 된다.


    리베로 포지션을 생각하면 기억나는 경기가 있다. 국내 리그에서는 배구 경기마다 그날의 MVP 선수(수훈선수 혹은 팡팡플레이어라고도 부른다.)를 뽑는데, 현대건설의 김연견 선수가 MVP로 인터뷰를 했던 날이다. 이날 중계를 맡았던 한유미 해설위원은 리베로 포지션에 대해서 실수를 만회할 수 없는 포지션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포지션의 경우 득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범실을 하더라도 자신의 공격 득점으로 만회할 수 있지만 리베로 포지션에서 범실이 나오면 바로 실점으로 이어지고 득점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김연견 선수는 리베로는 버티는 자리이기 때문엔 만회하기보단 버틴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한다고 답했다. 리베로 포지션 역시 세터와 마찬가지로 코트 안에 딱 한 자리밖에 없는 포지션이며 김연견 선수의 말처럼 버티고 또 버텨야 하는 자리이다. 리베로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 앞으로도 잘 버텨주길 바라면서 이 선수들의 역할이 더 많이 부각되기를 바란다.


2021년 2월 23일 IBK 기업은행 vs 현대건설 경기 후 인터뷰 https://tv.naver.com/v/18474569



    배구의 모든 포지션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당연하게도 어느 포지션 하나 쉬운 포지션이 없고,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포지션도 없다. 모든 포지션에서 각 선수들이 제 역할을 다 해낼 때, 어떤 포지션에 빈틈이 있더라도 다른 포지션의 강점으로 그 빈틈을 메울 수 있을 때, 그 팀은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이렇듯 배구는 한 선수의 뛰어난 기량보다 모든 선수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팀 스포츠이다. 그것이 배구가 어려운 이유이자 재밌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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