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눗 Sep 19. 2021

못함에 대한 예찬

못해도 된다는 걸 모르는 우리에게 - 첫 런던 디자인면접 망한 이야기

2017년의 마지막 달이었다. 한 쪽 귀로 들어온 영어가 다른 쪽으로 줄줄 빠져나갈 그 때 내 생에 첫 영어 전화면접이 잡혔다. 영어로 이메일 써내려가는 것도 천년 만년 걸리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듣고 원하는 답을 줄줄 토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디자이너들에게 묻는 공통적인 질문들을 불꽃 검색으로 다 끌어모으고 답변을 만들어 연습하는 것에 어언 몇 주를 쏟았다. 첫 영어 전화면접의 핵심은 그 질문을 잘 알아듣는 것에 있었다. 당시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해 넋두리를 좀 털어놓자면 커피나 음식 정도는 주문과 계산할 줄 아는 수준이었다고 할까. 영어듣기평가 성우해도 될만큼 또박또박 말하는 런더너에 한해서만 (짧은) 대화가 가능했었고, 길을 물어 볼 땐 바디랭귀지를 포함해야 쉽게 알아듣곤 했다. 어느 팟캐스트의 모토처럼 영어는 완벽이 아니라 커넥션이라고 했던 그 말이 엄청난 위로가 될 때였다(생각해보니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난 내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그 산이 - 영어가 - 참 좋았다. 


해외 생활 전, 모국어가 나를 지치게 하던 때가 있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귓가에 닿으면 언어가 담은 정보 외의 숨겨진 감정까지도 즉각 이해가 되던 나의 모국어. '아, 어-'만 해도 사소한 감정선이 읽혀지니 쉴 곳이 없다고 느껴졌던 다양한 상황들. 게다가 과학적 분석도 안되는 '공감' 능력이 중요한 요소라고 일컫는 분야에서 일을 하다보니 날선 감정들을 오롯이 다 느껴야만 했다. 고통스러웠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했고, 결국 익숙하던 곳을 모두 정리하고 전혀 새로운 장소로 갔었다. 


세계의 갖가지 인종들과 언어와 문화들이 모이는 런던은 상당히 참신한 곳이었다. 짧은 영어로 이루어지는 대화들이 소통으로 넘어가기까지는 한참 걸리겠다는 걸 깨달았을 때, 두렵다기보다 오히려 재밌겠다 싶었다.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드니, 못함이 더이상 내 자존감을 깎아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는 연습과 노력 뿐. 매일 영어방송을 듣고, 영어 유튜브를 보고 따라도 해보고 갖은 방식을 써보았지만 '영어, 3개월만에 귀가 뚫렸어요' 라는 기적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망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봤지만 면접 시간이 다가올 수록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HR의 그녀가 전화하기로 했던 오후 3시까지 만반의 준비를 다해 면접 답변 엑셀파일을 펼쳐놓고 잘 들리는 이어폰을 꽂고 그녀를 기다렸다. 화사하고 공손한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보통 우리가 아는 런던의 어느 엑센트를 강렬하게 쓰며 내게 인사를 건냈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매우 울림이 심한 방에서 전화를 하는 듯 했다.


아주 높은 천장을 가진 빌딩의 대리석 계단 같은 곳에서 전화를 하는 건지 왕왕 울리는 목소리가 몹시 당혹스러웠다. 덕분에 '너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니? 디자이너로써 어떤 경험을 했니?', '우리 회사는 왜 지원하게 된거야?' 등등의 아주 기본 리쿠르터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여러 차례 다시 물어봤어야 했다. 너의 목소리가 너무 심하게 울린다는 말을 영어로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냥 '쏘리, 큐쥬 리핏뎃 플리즈'만 계속 써댔다.


그녀는 매우 친절하게도 괜찮다며 말하며 여러 번 질문을 반복하면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 마지막엔 오늘 대화할 수 있어서 기뻤고 ' Definitely'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희망을 주는 통에 나는 망한 걸 알면서도 내심 은근 기대를 하고 있었다. 


당시 해외 구직 경험 많은 디자이너 친구가 내 후기를 듣더니 표정이 어두웠다. 영국인들은 정말 거지같아도 '별로'라는 기색조차 전혀 주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을 해주는데, 나는 그래도 'Definitely'를 강조하며 그녀가 반드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며 항의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고도 답메일이 오지 않았고, 그 이후 영원히 연락이 없었다. 좌절한 나에게 디자이너 친구가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본인은 첫 전화면접에서 열심히 대답을 하고 있는데 상대가 중간에 끊어버렸다며, 당시에는 너무 속상했지만 지금에는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며. 결코 웃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빵터져버렸다. 영어면접과 관련된 웃픈 에피소드들을 쏟아놓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서로 자신이 얼마나 '못하는지'에 대해 논하는데 거의 배틀 수준이었다. (그 친구는 현재 꽤나 큰 연봉을 받으며 런던의 금융 관련 회사에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우리의 '처음'이 '망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실수해서 망한 것도 아니라 '못해서' 망한 경험이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그녀의 망한 경험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던 내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이 되었다. 만약 그녀의 경험담을 듣지 못했다면 첫 면접 후 내 '못함'을 저주하며 해외 구직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못함'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면서 더욱 노력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칭찬에도 우쭐하기보다 고마워할 줄 알게 되었고, 지금 충분히 못하니까 앞으론 나아질 일 밖에 없으니 기대를 갖고 노력을 하게 된다. 


물론 영어로 살아 가면서 여전히 '못하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한 자괴감에 괴로워한 일도 적잖이 많았지만 적어도 그것이 지긋지긋하지 않았다. 더 노력해서 더 깊이 공감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지니 나의 못함이 노력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내 첫 런던 디자인 인터뷰에서 잔뜩 겁먹은 나를 상냥하게 잘 참아준 이름모를 그녀에게 감사한다. 자신의 망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다 나누어 주었던 친구에게도. 내 '못함'보다 발전해 갈 것에 대한 기대에 초점을 맞추게 해준 동료들도. 덕분에 이렇게 버젓이 해외 회사생활도 지속하고 디자인 회의나 발표에도 별 탈 없이 진행할 정도로 성장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우리는 머물러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흘러가고 변화하는 존재들이다. 모두에게는 자기 목조차 스스로 가누지 못하던 그 시기가 있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만 길을 찾을 수 있었던 때가 있다. 시간이 흘러 삶을 살아가는 걸 익히고 배워가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그러니 못해도 괜찮다. 지금의 '못함'이 더 잘 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할 기회가 될 수도, 훗날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원동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그저 건강한 멘탈로 '잘' 살아가면 된다. 잘한다고 자랑질할 필요도 없고 못한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고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제대로 걸어가면 된다. 그러면 목도 가누게 되고 스스로 걸어갈 수도 있게 되니까. 그러다보면 당신이 누군가의 손이 되어 이끌어가주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당신이 기대하지 못했던 그 자리에서 생각하지 못할만큼 성장한 모습으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스크 벗기만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