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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눗 Jun 26. 2023

그냥 네 자신에게 틀려먹을 기회를 좀 주렴

브런치에 쉽사리 글을 올리기가 꺼려지는 소심자의 반항일기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새로 올라온 글들을 훑어봤다. 그리고 마치 제 3자가 된 마냥 내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도 간만에 읽었다. 내가 봐도 도대체 무슨 말을 쓰고 싶었던 건지 알수 없는 말들도 많고, 정말 임팩트 없는데 조회수만 높은 글도 있었고, 라이크는 매우 저조해도 써두길 잘했다고 생각한 글들도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던 글은 라이크가 제일 높았다. 


가뭄에 콩나듯 브런치에 글을 올렸던 나는 글을 공개할 때마다 왠지 부끄러웠다. 누군가에게 보여질 그 글은 아무리 검토하고 수정해도 난해하고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많게 느껴졌다. 글을 깔끔하게 쓰라는데 그게 안된다. 그게 제일 어렵다. 내 생각의 회로는 글 보다 100만배는 더 꼬여있어서 그걸 더 다듬는다는 건 글쓰기를 본업으로 삼으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결국 구글 문서에 아무도 모르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50장이 훌쩍 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발행하는 게 나를 위한 걸까 남을 위한 걸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구글 문서에 글들을 줄줄 흘려보내는 걸 보면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생각의 양이 너무 많아 기억할 용량이 부족한 나를 위해서.


난 다양한 인생의 사건들과 감정들을 정말 너무나도 깨끗하고 쉽게 잊어버린다. 그나마 기록을 해두면 그 때 그랬다는 걸 알수나 있지. 몇 년 전에 써둔 글들을 읽다보면 내가 언제 저런 생각을 했나하고 놀랄 때가 많다. 늘 항상 '써두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잘 썼던 못 썼던, 쓰지 않았으면 지워졌을 내 이야기들이 간직되어 있다는 건 늘 감사한 일이었다. 


구글 문서에 50장을 넘기면서, 내가 어디 뭐 등단한 작가도 아니고 평가받을 일도 없는데 구지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뭐 있나 싶었다. 딱히 감추고 싶은 생각도 없고 주변 지인들도 이 글의 존재조차 모를텐데. 내 기준에 잘 다듬어 봤자 거기서 거긴데, 그래도 남이 읽는다고 그렇게 재고 따지는 꼴이 우스웠다. 


그러다보면 결국 모든 글들은 무덤 속에 묻혀 고이 고이 썩어가겠지. 


이 지긋지긋한 완벽주의 성향과 지독히 자기비판적인 내 성격에 뒷통수를 시원하게 갈겨버리고 싶다. 그것들이 병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들의 순기능들을 적당히 즐기면서 살수도 있겠지만 내 것들은 너무 과하게 작동했다. 사사건건 스스로에게 시비를 걸었고, 그게 습관이 되었으며, 결국 무의식의 심연으로 깊이 뿌리박혀서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는 것조차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이젠 그것들을 토해내고 싶어졌다. 

남들의 승인에 목매어 우는 모습을 깨끗히 지워버리고, 내가 지닌 가치들을 존중해가며 표현하는 내가 되고 싶어졌다. 실패를 진심으로 격려하고 싶다. 발로 쓴 것 같은 것들도 팡팡 발행해버리고 싶다. 별 큰 걱정 없이 나를 드러내고 싶다. 그러다보면 쓰는 글의 양도 늘고, 여러 실패들로 외려 제대로 더 잘 배우지 않겠는가. 


밤에 문득 글들을 읽다보니 또 글들을 뱉어내고 싶어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견딜 수 없이 우후죽순 떠오르는 말들이 머릿 속에 가득해서 흘려보내고 싶었다. 자정에 이르러 폭발하는 단어들을 주워담아서 별 눈치없이 발행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눈치를 많이 보지만, 

"기억해. 아무도 널 딱히 신경쓰는 이가 없어. 그러니 그냥 네 자신에게 틀려먹을 기회를 좀 주렴."


드레스덴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 (여행하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 더 잘 보정해서 내비치려고 묵혀둔 것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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