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보면서 나를 들여다보곤 한다. 아이의 얼굴을 거울을 보듯 볼 때가 있다. 아이를 낳아 길러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은 육아에는 끝없는 인내와 관용,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말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걸 느낀다.
아이가 계곡에서 잡아 온 가재 앞에 의자를 갖다 놓고 소리도 없이 코가 닿을 지경으로 들여다보거나 움직임이 적은 사슴벌레의 반질거리는 까만 등을 쓰다듬으며 생명의 신호를 읽으려고 할 때 내 머릿속엔 번개가 치듯 과거의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나는 초등학교 뒷마당 구석에 난로 땔감용으로 쌓아놓은 마른 장작 더미를 쉬는 시간마다 오르내리며 하늘소를 찾고, 뒷산에 올라가 검은 웅덩이에서 도넛 젤리 같은 개구리알, 도롱뇽알을 잔뜩 집어와서 엄마 몰래 베란다에서 키우던 아이였다. 나는 그걸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너무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릴까, 들킬까 봐 나의 서랍장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가 이사를 갈 때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아이의 어떤 대상을 향한 열의와 몰입을 지켜보면서 잃었던 나를 되찾게 되었다.
그 마음은 순전한 기쁨이라기보다 놀라움이고 작은 슬픔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얼까,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몰두하는 게 아닌 그냥 좋아서, 너무 재미있어서 홀딱 빠지는 마음, 그 투명한 마음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어디로 다 흘러가버린 것일까.
아들은 나의 예민한 기질을 닮았다. 나는 스스로 둔감한 사람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학교를 다니고 밥벌이를 하고 사람을 사귀었다. 자기기만의 시간이 긴 만큼 나는 ‘재능 있는 리플리 씨‘가 되어 스스로도 깜빡 넘어갈 만큼 무리 없이 살아왔으나 아이에게서 나의 기질을 발견할 때마다 내 안에 거짓으로 심어놓은 나무의 열매들이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만 같다. 애써 높이 높이 지어놓은 성이 마른 모래처럼 부스스 부서져 내리는 것 같다.
공책을 바로 놓고 칸칸이 공책이 찢어질 정도로 힘을 줘서 글씨를 썼던 때니까 아홉 살 때쯤이었을 거다. 조례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숙제를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계속 공책을 찢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친구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지 마세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수치심을 느꼈다.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던 치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기분이라 하루 종일 우울했다. 나는 왜 이렇게 무던하지 못할까, 틀려도 실수해도 코 한번 찡긋하고 다시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 깔깔 웃는 친구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부드럽고 모호한 경계의 마음들이 부러웠다.
내 아이가 블록이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또다시 만들고,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에 안 들면 스케치북을 넘기고 또 넘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채 낡아버린 나의 기질을 다시 꺼내어보고 서늘해진 마음을 느끼곤 망연히 멈추어선다.
앞으로도 너는 단잠에 푹 빠져 몇 번씩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 벨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시험을 앞두고도 잘 시간이 되면 쉽게 자는 그런 사람은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너는 충분히 괜찮다고 어린 사람에게 응원과 힘을 주어야 하는 나는 마음을 곧 추스르고 다독인다. 나는 어느새 어른의 자리에 서있다.
여름을 건너오며 일상에서 큰 변화는 없었다. 어른의 노화와 아이의 성장 외에는.
나는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고 남편의 흰머리는 늘었고 아이의 키는 자랐다.
9월이 되니 아침저녁으로는 더 이상 더운 바람이 불지 않는다. 바람에 묻어있는 물기도 조금씩 마르는 걸 느낀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랑하고 싸우고 울고 웃는 동안에도 지구는 기울어진 채 돈다. 자연의 흐름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기보다는 이제는 나의 계절도 습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여름도 습작이었다면, 진짜 여름은 이제부터라면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좀 더 다정한 안부를 건넬 텐데, 애써 무심한 마음으로 지나쳤던 모든 것들을 용기 내어 다시 바라볼 텐데, 친구들의 부름에 좀 더 기쁘게 호응할 텐데, 당연한 것이라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같은 걸 묻고 또 묻는 아이에게 따뜻하게 대답할 텐데.
그러나 습작이길 바라는 마음마저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이 마음. 여름의 습작을 생각하는 이 마음.
그래서 애썼다. 나의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