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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09. 2024

시적인 공간 4.

사소한 제주 여행기

제주는 바다마다 독자성을 지닌다.

물색이나 풍향, 수온, 모래색 등의 특징이 같은 데 하나 없이 고유의 분위기를 띤다.

서로 맞대어 있어 걸어 오갈 수 있는 협재와 금능도 사뭇 다르다.

근방 해수욕장이 숙소를 기준으로 금능-협재-곽지 순으로 이어져있는데 어느 하나 그만그만한 데가 없으니 매일 특이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곽지는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그동안 제주에 머물 때, 외지인으로서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덜 알려진 바다를 부러 찾을 필요가 없었으니 그럴 것이다.

이름난 것들에만 눈길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눈이 부셔 어릿어릿할 만큼 찬란한 것에서만 아름다움을 찾을 때였다.

나의 우매했던 어린 시절.


곽지, 곽지를 기억해야겠어요.



쏭(친구 엄마)의 말이다.

곽지는 생긴 모습 그대로 천연하여 자연스럽다.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려한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꾸밈이 없고 담백한 매력이 있다.

간물때가 되어 조수가 빠지면 모래바닥에서 용천수가 샘솟는 걸 볼 수 있다.

무려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100리를 내려와 예서 솟는 것이란다.

본디 그러한 자연의 원리는 나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니 더욱 신비롭다.

해수가 끝을 알 수 없는 땅속에서 배어 나오는 담수와 섞이면 계곡물처럼 차가워진다.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 계곡물 같아.”라는 새된 외마디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끈끈하고 무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발만 담가도 기운이 맑고 서늘해진다.


곽지는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바다생물 채집에도 마침한 곳이다.

바다에만 가면 숫제 물에서 안 나오는 아이와 생물 채집에만 열을 올리는 아이 둘의 취향을 넉넉히 맞출 수 있었다.

오후가 되어 물이 저 멀리 밀려나가자 잠겨있던 검은 바위가 하나둘 드러났다.

돌게, 보말, 소라게, 갯강구들이 아이의 그림자에 쫓겨 성급히 돌틈으로 숨어보지만 ‘무자비한 사냥꾼’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제 다리 두 개를 떼어놓고 부리나케 내빼는 게의 처지가 애처롭다.

곽지의 수심은 얕지도, 깊지도 않다. ‘물애기’ (젖먹이의 제주 방언)보다는 초등학생 이상된 큰 아이들이 즐기기에 좋은 자연 풀장이다.

만만한 해풍은 아니지만 파도는 유연하다.

용천수가 섞인 바닷물에 한기가 들면 잠시 나와 모래찜질을 하면 된다.

곽지에선 떼로 몰려다니는 물고기들의 유영을 들여다보는 일도 큰 재미다.

이곳이 이들의 서식 환경에 마땅한 곳인지 유난히 물고기가 많다. 투명한 물빛 물고기 외에도 노랑, 파랑 유색의 열대어도 볼 수 있다.

친구 남편은 결국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어느 점포에서 물안경을 사 왔다.

새롭고 신기한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막을 수 없다.

몸이 다 자란 어른이라고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완전 필리핀인데요? 물고기 진짜 많아요.”


그의 천진하고 꾸밈없는 얼굴을 마주하니 나는 즐거웠다.

여기에 오길 잘했다.


곽지는 다른 데와 견주어 보면, 사람이 적어 한가하고 조용하다. 해변에 놓인 파라솔 간격이 좁지 않아 여행객 무리마다 사생활이 있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사람이 적으니 주변에 배달 주문할 만한 식당이 별로 없다.

밥때를 놓친 배고픈 사내들이 짜증 난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무엇을 먹을까, 어디서 시킬까, 성마른 물음에 좀처럼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상하리만치 곽지 바다는 눈을 떼기 어렵다.

수수하고 천연스러운 모습 때문일까.

그 이유를 경험했지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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