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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삼부작, 실존주의? 정신분석? 마르크시즘?

by 양문규

이상의 「날개」 삼부작은 한국문학의 큰 스캔들이다. 이상과 기생 금홍의 이야기로 짐작되는 이 삼부작 중, 「날개」(1936)는 온천에 정양을 갔던 이상이 금홍을 만나 상경해 동거생활을 벌이던 시절의 이야기고, 「지주회시」(1936)는 금홍이 가출했다가 돌아온 후의 생활을 그린다.


유작 「봉별기」(1939)는 “왕복엽서”처럼 가출과 돌아옴을 반복하던 금홍이 결국 이상과 완전히 결별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상의 이러한 전기적 사실에 맞춰 이 삼부작을 읽으면 흥미야 진진 하겠지만, 이상 문학이 가진 상징적 내용을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식민지 시기의 이상 문학이 해방 후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건 6‧70년대이다. 이 시기 즈음 실존주의 철학이 크게 유행하면서부터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그 어떤 특별한 의미 없이 세계로 ‘내던져진 자’라고 본다.


세계는 부조리한 것인데 여기서 부조리란 자신과 세계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런 것 자체를 아예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인간들은 권태로워하며 불안해하거나 공포를 느낀다.


「날개」는 사회와 단절된 현대인의 폐쇄적이고 불안한 모습이 나타난다. 인물 간의 대화는 물론, 부부간의 대화조차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의 행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배경만 설정되고 모든 일어나는 일은 철저히 주인공 ‘나’의 시선을 통해서만 인식된다.


실존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상은 한국 문학사에서 ‘현대적 자아’를 최초로 살펴보고자 한 작가다. 이상은 우리 소설사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최초의 작가로, 식민지 시대 한국의 작가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지적이고 철학적인 작가였던 셈이다.


1970년대 이후 정신분석학이 문학 연구에 들어오면서 이상 문학의 중요한 특징인 ‘불안’에 주목한다. 불안이란 어떻게 보면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가장 확실한 동반자다. 이상 문학은 이를 시적이면서도 극적으로 그린다.


작가심리학은 이상 소설의 불안을, 유아기 시절 백부에게 양자로 들어가 실제로는 조부에게 양육되면서 얻은 작가의 ‘정신적 상처(트라우마)’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 불안은 특히 「지주회시」 같은 작품서 메마른 말들의 중첩, 띄어쓰기가 안 된 혼란스러운 문장 등으로 표현된다.


한편 삼부작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아내에 대한 주인공의 피학적이거나 가학적인 양면성은, 마음껏 젖을 빨아대지 못한 작가의 어린 시절의 좌절된 소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말한다. 다시 말해 이는 친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파괴욕이라는 무의식이 표출된 것이다.


삼부작의 주인공들은 아내에게 생계를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아내를 증오하고 반(半) 창녀화 시켜 학대한다. 거꾸로 「봉별기」의 ‘나’는 아내에게 “별 제목”도 없이 몹시 얻어맞고 울면서 집을 나갔다가 사흘을 돌아오지 못한다. 아내 금홍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해석의 타당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독자심리학은, 이상소설이 현대인에게 호소력과 의미 있는 문학으로 다가오게 한다고 본다. 이상 문학에 나타난 극도의 불안 의식이 현대인의 불안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함으로써 이를 치유해 주는 기능을 해주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전 금기시 됐던 마르크시즘이 한국문학 연구에 도입되면서, 이상소설의 불안과 절망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겪는 인간 소외로 해석하기도 한다. 「날개」에서 ‘나’는 아내에게 돈을 줌으로써 간신히 같이 잠자리를 하는 기이한 관계를 갖는다.


이는 ‘나’가 오로지 화폐의 지불을 통해 아내와의 시공간을 점유하게 됨을 의미한다. 돈이 떨어졌을 때는 더 이상 그 관계라는 것을 이루지 못해 우울해하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소외의 심각한 양상을 보여준다.


「지주회시」는 화가를 꿈꿨던 ‘나’와 카페 여급 간의 화폐로 맺어지는 인간관계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황폐한 현실을 보여준다. 지금의 주식투기와 비슷한 ‘취인점’의 투매 현장과 더불어 만사가 돈을 갖고 수습이 되는 화폐의 가치 전도 현상(물화)이 그려진다.


이상이 죽기 직전 동경서 마르크시즘 서적을 취급하는 진보초의 서점을 자주 출입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날개」 삼부작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최근엔 이상 문학을 퀴어(동성애자)적으로 해석코자 하는 시도도 있으나, 이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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