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인공 엄마가 인생의 턱 앞에서 애끓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전화 한 통으로 바뀌는 게 인생이란다 아들아, 너무 마음 쓰지 마. 생각해보면 인생이 방향을 트는 건 내방 불을 켜고 끄는 일만큼이나 늘 찰나였다. 합격 전화 한 통으로 나는 학생에서 회사원이 되었고, 둘에서 솔로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기 시작한 것 역시 그 전화 한 통이 아니었을까. 내 친구 똔이 결혼할 사람을 만났다고 말했다.
똔은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나는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우리가 크게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직감적으로 결혼은 좀 다르겠지 싶었다. 프러포즈를 받아 아직 고민 중이라고 했지만, 이미 그의 결정은 끝난 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에 전화를 받고, 축하를 전하고, 내내 이상하게 기분이 별로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하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같은 출발선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대학 아니면 죽음뿐이라던 교육 과정을 거친 우리에게 대학은 진정한 스타트 라인이었니까. 그렇게 같은 과 신입생으로 만난 우리는 인생에 가장 겁 없고 대책 없는 시절을 함께 보냈다. 우리 둘 모두 동기들에 비해 조금 늦은 졸업을 했는데, 각자 엄마를 모시고 함께 졸업식에 갔던 날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학사모를 날리는 순간의 성취감과 더불어 느꼈던 막연한 아쉬움과 뭉클함 등은 아마도 우리가 함께 해 온 시간에 대한 성급한 그리움과, 각자 걸어가야 할 앞으로의 미래를 담고 있었지 싶다.
똔의 생각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결혼을 시작으로 나는 더 이상 우리가 함께 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0대 중반 가까운 친구들의 대부분이 결혼을 했던 나는 의지했던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역할을 계속해 왔고, 결혼이란 건 일시적이거나 혹은 영원한 관계의 이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미 수차례 경험했다. 같은 길을 걷던 친구들은 갈림길 앞에서 나와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고, 나 역시 남겨지는 것을 받아들여만 했다.
똔과 나 역시 다른 관계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고,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길을 열심히 걸었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해외에서 가정을 꾸렸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아기를 가졌으며, 육아를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사회초년생이 되었고, 몇 번의 이직을 했고, 일에 미쳐 몇 년을 보냈다. 이렇게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는 우리인데,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는게 신기했다. 똔은 신혼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냈고,아기를 낳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으며, 사는 곳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전해 왔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맥락 없는 회사 욕을 다짜고짜 뱉었고, 매일 똔의 아기의 안부를 궁금해했다. 나는 늘 그녀가 걷고 있는 길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작년 똔이 한국에 돌아오며 우리는 더 많은 물리적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아침밥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부터 시작해 서로 좋았던 책을 바꿔 읽고, 영화나 전시를 함께 보기도 한다. 그리고 똔의 아기와 주말이면 공원에 놀러 가기도 하고.
20살의 나는 지금의 우리의 관계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똔이 결혼할 당시의 우리 역시 지금을 100% 확신할 수는 없지 않았을까.
30대를 훌쩍 넘어 걸어 온 길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다른 길을 걷는 다는 것이 꼭 다른 방향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것을, 각자가 어떠한 길을 걸어가고 있든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면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너무 마음 끓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god의 유명한 노래 가사 처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사람들과 함께 걷는 길이 이왕이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길을 걷게 될지라도, 우리가 다시 교차하게 될 날들을 위해 더 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똔과 나의 친구들이 때때로 내 인생의 뮤즈가 되어 준 것처럼, 나 역시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