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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 마쿤 Jul 12. 2020

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푸드트럭 마쿤키친 카페 이야기

     2015년, 서른 살의 말년 병장이던 나는 전역 후의 삶에 대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전역 후에는 곧바로 신학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마치기 위해 복학을 하고 교회에서 전도사로 본래 하던 일을 재개하면 되었다. 그리고 선교지로 떠나서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게 내 계획이었다. 그래서 사실 전역까지 100일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아무 걱정 없이 마냥 전역 일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런데 교제 중이던 동갑내기 여자 친구와 해오던 달콤하고 꿈같던 결혼 얘기가 더 먼저 마주해야 할 현실이라는 무게감이 불쑥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더 천천히 결혼을 준비했어도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당시에는 서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심적 부담감 때문에 결혼 시기를 고민하던 여자 친구에게 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모아둔 자산이 있거나 집안 형편이 넉넉했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까지의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청빈하게 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청빈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이 가난한 형편에, 신학대학교를 나와서 선교사가 되겠다며 이십 대를 보냈다. 종교인으로 일생을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저축과 자산관리에 대해선 무지했고, 교회에서 제공하는 거처와 사례비만으로 먹고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목사, 선교사들의 월급은 평균적으로 회사의 대리급 정도이다).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속상함도 없었고 돈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문제는 이런 내 계획 속에 결혼에 대한 준비는 전혀 없었다는 거다. 여자 친구는 나와 같은 신앙을 갖고 있지만 직업을 종교인으로 갖고 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교제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나의 배경과 미래에 대해서 충분히 대화를 나눴고, 결혼 후에는 기꺼이 함께 길을 걷겠다고 말해준 여자 친구였지만 그것도 우선은 결혼 후의 얘기였다. 군 생활을 기다려준 여자 친구에게 선교사가 되기까지 앞으로 삼사 년을 더 기다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결혼을 최우선으로 두고 완전히 새롭게 세워야만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막막함 속에서 잠 못 이루는 나날을 이어가던 중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였다. 푸드트럭 청년 창업자에게 1%대의 저금리로 4천만 원의 창업자금 대출을 지원한다는 기사였다. 4천만 원이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저렴한 월세 집을 얻어 결혼도 할 수 있고 창업을 해서 얼마간의 경제활동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며칠을 더 심사숙고하고 여자 친구와 상의한 끝에 전역 후에 곧바로 푸드트럭 창업을 준비하기로 했다. 고생길의 서막이었다.....      




     고대하던 전역을 하자마자 막노동 일을 시작해서 두 달 동안 500만 원이 조금 넘는 창업 준비 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는 시기에 맞추어 경기도 중소기업청에서 개설한 푸드트럭 창업 아카데미 2기 멤버로 참여했다. 창업 준비에 대한 지식들과 노하우를 배우는 것도 좋았지만 곧 창업자금을 지원받아서 결혼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부푼 기대가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무시무시한 복병이 숨어 있었다. 창업자금 지원에 대한 설명회 시간이었다. 창업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규제에 맞게 개조된 트럭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고, 영업을 허용하는 지자체 또는 공공시설과 ‘계약을 체결’하고 사업자등록을 마쳐야 창업자금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모집 공고 예정이 잡혀 있진 않지만 점차적으로 모집을 해나가겠다는 뜬 구름 잡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부풀었던 기대와 설렘이 한순간에 펑하고 터졌다. 눈물도 같이 핑 돌면서 낙담도 낙담이지만 기만당했다는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창업 자금이 있어야 창업을 할 수 있는 건데 다 갖추고 나서 지원을 하겠다는 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나 외에도 참석자 전원이 불만을 제기했고 관계자도 정책상 미흡한 점에 대해 시인하긴 했지만 달라질 것도 없었다. 제길.


     두 달 동안 막노동해서 번 돈이 내 전 재산이었다. 차량 구입비용이며 개조비용, 주방 설비를 갖추는 데 최소 천만 원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 또다시 갈 길을 잃고 이쯤에서 포기하자는 생각으로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창업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을 여자 친구에게 전하고 빨리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 친구는 한참 동안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생각에 잠기더니 창업에 필요한 금액을 물었다. 그리고 회사 생활하며 모아둔 돈이 있으니 그걸로 창업을 시작해보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정신이 멍해졌다. 결혼을 한 사이도 아니고 창업을 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망할 거라고 걱정 하진 않았지만 내가 창업자금을 대출받아서 창업을 하는 것과 여자 친구가 수년간 땀 흘린 돈으로 창업을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고맙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러자 여자 친구는 나를 믿고 있으니 꿈을 이루어 보라고, 푸드트럭도 우리 결혼을 위해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것이니 포기하지 말라고, 잘 풀리지 않더라도 이제는 함께 해결해 나가 보자고 말해 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창업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와 기쁨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나라는 사람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게 정말 너무나도 고마웠다. 평생의 동반자로 함께 할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 게 정말 기뻤다.      



     여자 친구의 지지와 후원,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 푸드트럭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트럭을 개조하자마자 영업을 시작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고, 각종 행사와 지역 축제, 케이터링 서비스며 노점 영업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찾아가며 장사를 했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허가해주는 영업장소에서 계약을 맺기 전에는 창업자금 대출은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청년 자격인 만 30세는 돌아오는 생일을 기점으로 상실하는 상황이었던지라 불안감도 극에 달했다.


     노점 영업을 하다가 민원을 받고 쫓겨나기도 하고, 행사가 없거나 날씨 문제로 장사를 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여자 친구에게 빌린 장사 밑천도 간당간당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교 대학교에 찾아가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가 잡상인 취급을 받고 매몰차게 퇴짜를 받기도 했다. 차라리 이 기간 동안 막노동 일을 계속해서 돈을 모으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럴수록 자괴감과 우울증은 깊어갔고 나는 세상에 하등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책감도 더해만 갔다.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 이제 못하겠어요. 나 같은 사람을 남편으로 둘 여자 친구도 불쌍하고 엄마도 동생도 너무 불쌍해요.’


    뭐지? 기도를 듣고 계셨던 건가? 침묵만 하시는 분이 아니셨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기적적으로 만 31세로 넘어가는 생일을 얼마 앞둔 시점에 간절히 기다리던 영업 모집 공고가 나왔다. 그리고 속전속결로 계약을 맺고 4천만 원의 창업자금도 대출받았다. 그래서 보증금 천만 원에 월 40만 원짜리인 오래된 아파트에 신혼집을 얻고 무사히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답니다.’라는 결말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에서 허가받은 공원에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장사가 썩 잘 된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안됐냐? 그것도 또 아니다. 딱 먹고 살만큼, 그만큼 됐다. 장사가 잘 될 때는 아내 월급의 배를 벌었지만 장사가 안 되는 날도 많아서 다시 까먹게 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사실 창업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선 먹고 살만큼 벌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보다 배를 벌어야 대출금도 갚고, 학자금 대출도 갚고, 생활비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장사를 해서 번 돈은 장사 밑천과 대출금을 갚는데 고스란히 쓰였다. 정말 너무 미안하게도 월세며 대부분의 생활비는 아내의 월급으로 충당했다. 그리고 푸드트럭을 시작하고 만 2년이 되었을 때 트럭을 처분하고 월급을 받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혼한지도 4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지금도 대출금을 갚느라 아직 아내에게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 푸드트럭 사업은 실패, 대실패였다.     


     하지만 푸드트럭을 준비하고, 장사를 해보며 느낀 것은 성공도 실패도 결국은 인생의 긴 여정 속에 언제나 존재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점이다. 오늘의 내가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내일은 오고야 말고, 내일 또다시 성공과 실패의 과정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실패를 하더라도 너무 축 쳐질 필요 없고 성공을 하더라도 너무 우쭐할 필요가 없다. 걷다 돌부리에 체이는 게 실패이고, 잘 넘어가면 성공이다. 그리고 그 길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다음 달이면 푸드트럭 대출금 상환이 끝난다. 그럼 그때는 말해야지. 결혼도 무사히 했고 좋은 경험을 했으니 결국 푸드트럭 마쿤키친카페는 성공이었다고.                          




전체 이야기는 여기에 있어요

https://brunch.co.kr/brunchbook/makun-foodtruck


유튜브 푸드트럭 창업수업

0교시  https://youtu.be/usNIaGcWBIs​​​

1교시  https://youtu.be/oVhexa8Agh8​​​

2교시  https://youtu.be/1Sts9SYiUyQ​​

3교시  https://youtu.be/Mpb97gPV0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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