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수집가 Oct 04. 2021

개가 살지 않는 집(4)

제니 이야기(2)

 제니는 예쁘게 잘 자랐다. 

 사실 우린 제니란 이름 보단 지지배(계집애)로 더 많이 부르곤 했다. 사람도 귀여우면 장난치듯 짓궂게 별명을 부르지 않는가. 물론 녀석은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 쓰지도 않지만.  

 녀석이 첫 생리를 시작할 때 엄마는 웬일로 한 번은 새끼를 낳아봐야 하지 않겠냐며 미키와 꽃분이 때와는 달리 유화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론 새끼를 낳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땐 동물의 중성화 수술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기도 하거니와 과연 그게 생각대로 될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또 어찌 보면 엄마는 제니에게 가장 잔인한 주인인지도 몰랐다.   

  제니가 첫 번째 새끼를 낳았을 때 어디다 낳게 해 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해산할 때가 되니 녀석은 본능적으로 구석을 찾았다. 당시 안방엔 이것저것 잡동사니 물건을 두는 조그만 벽장이 있었는데 해산이 임박하자 녀석은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결국 우린 안에 있는 물건을 빼내고 조그만 이부자리를 펴주고는 문을 닫았다. 

  얼마 만에 빼꼼히 열고 보니 녀석은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녀석은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완전 탈진이 되어 제 새끼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러다 죽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얼마 만에 다행히 기운을 차렸다. 하지만 어느새 자식을 지키는 열혈전사로 변해있었다. 우리와 특별히 나쁘게 지낼 이유가 없었는데도(평소에도 녀석은 대체로 쌀쌀맞긴 했다) 벽장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새끼가 잘 있나 궁금해서 멀리서 기웃대기만 해도 마구 짖으며 우리를 아예 멀리 쫓아 보냈다. 우린 이래 가지고 서야 자식 못 낳는 개 서러워 살겠냐고 껄껄 웃는 수 밖엔 없었다. 그만큼 녀석의 모성은 극진했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제니도 제 어미와 운명이 별로 다르지 않아 까만 점박이 새끼를 낳았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새끼 보는 게 서툴렀는지 아니면 그럴 운명이었는지 녀석의 엉덩이에 깔려 죽어 있었다. 

  이 점박이는 털은 제 어미를 닮아 길었다. 하지만 우리는 녀석을 안에서 키울 생각이 없어 어느 정도 자라자 마당에 내놓았다. 사실 이 녀석은 사람만 보면 미치도록 좋아하는 경향을 보이고 털을 잘라주지 않아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었다. 그러니까 되려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개도 사람처럼 최애 음식이 있다는 걸. 

  그전까지 개를 그렇게 많이 키웠어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주인의 밥상에서 남은 음식을 그러모아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주인이 기분 내키는 대로 갈비뼈에 붙은 살을 특식이라 던져 주면 그만인 거지 식성이 따로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미키는 커피를 좋아했다. 그 무렵 엄마와 언니, 나는 커피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시작은 대학에 갓 들어간 언니로부터였는데 커피가 그렇게 맛있는 줄은 몰랐다. 한때는 정말 이것 때문에 새로운 삶의 의욕을 느낄 정도였다. 

  우리 세 모녀는 아침을 먹고 나면 으레 커피를 한 잔씩 타 먹었는데, 어느 날 미키가 커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녀석의 코에도 커피 향이 좋았나 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누구든 한 사람은 마지막 한 모금은 다 마시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성미 급한 엄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걸 그대로 주지는 않았다. 그 보다 다소 많은 양의 물을 타서 색깔만 내는 정도였는데 그걸 녀석은 홀짝홀짝 잘도 핥아먹었다. 덕분에 입가의 털은 항상 누렇게 변색되어 있곤 했다.  

 그런데 비해 제니는 동치미 무를 좋아했다. 그건 유난히 동치미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때문이기도 했다. 동치미 무를 얇게 썰어서 주면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잘 먹었다. 하지만 것도 염분이 있을 테니 지금의 동물병원 의사들이 보면 기겁할 것이다. 그때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개에게 사료를 먹여야겠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동치미 무에 염분이 있는지 없는지 뭐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저 개는 주인을 닮는다더니 식성도 닮는구나 했다.           

 

 엄마는 제니가 이제 새끼를 낳았으니 앞으로 다시는 낳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해마다 봄가을 두 번씩 녀석이 생리를 할 때마다 안 입는 면으로 된 못을 잡아 기저귀를 만들어 채워주곤 했다. 

  80년대가 저물 무렵 우리가 살던 동네에 리모델링 붐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에 우린 그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집은 70년대 중반에 이사를 와 그때까지 두어 번 대대적인 집수리를 했다. 우리가 처음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우리 집이 있는 골목은 유독 단층으로 지은 시영주택이 많았다. 그러던 중 개인주택이 딱 두 채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 집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살던 집을 부수고 새로 집을 짓기 시작했으니 우리 집은 더 이상 개인주택의 위용을 뽐낼 수가 없게 되었다. 눈이 가는 곳에 마음 간다고 새로 짓는 집을 보면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우리 집도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방법은 생각보다 쉬웠다. 지하 1층에 지상 2층으로, 우리 가족이 살 1층을 제외하고 될 수 있으면 세를 많이 둘 수 있도록 지었다. 그러려면 3개월 정도 남의 집에 세를 살지 않으면 안 됐다. 마침 그때 다니고 있는 교회에 엄마와 친분이 있는 사람의 집 지하 셋방이 비어있어 그곳에 잠시 있기로 했다. 

  그 집도 개인주택이긴 하지만 오래된 집이라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당시는 마당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중 제니가 낳은 개는 몇 개의 장독과 함께 뒷집에 맡기고, 큰 녀석을 데리고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남의 집이라 아무 데다 개를 둘 수는 없고 우리가 거처하는 미닫이 현관문 바로 앞에 쪽 마당이 있어 거기도 묶어 두었다. 

  그 무렵 제니가 또 암내를 풍기기 시작했고 현관문 가까이에 녀석이 있었으니 과거의 제 어미를 생각할 때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부주의할 때가 많다. 결국 제니가 임신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운명이 참 얄궂었다. 그 집은 주방 옆에 조그만 간이 목욕탕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턱이 꽤 높아 사람도 오르내리는 게 좀 버거웠다. 제니는 어릴 때부터 워낙 변 훈련을 철저하게 시켰던지라 이사 와서도 화장실 출입부터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그게 잘못이었다. 

 언제부턴가 제니의 몸에서 뭔가 이상한 액체가 삐질삐질 나오는 게 감지가 되었다. 녀석이 새끼를 낳으려면 아직 좀 더 있어야 하는데 이게 뭔가 싶어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썩은 태반이었다. 즉 제니의 새끼가 뱃속에서 죽은 것이다. 무리하게 화장실을 오르내리게 한 것이 잘못이었다. 얼마나 미안하던지. 제니의 배에서 꺼낸 새끼는 총 세 마리였는데 모두 죽어 있었다.

 더 안타까운 건 치료를 다 마치고 돌아왔는데 자꾸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랬다. 제니는 바로 새끼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분명히 새끼를 낳았는데 감쪽 같이 사라지고 없으니 미치도록 찾는 것이다. 사람도 키우던 자식이 안 보이면 미치는데 개라고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가 제니에게 무슨 일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개의 주인이 된다는 건 보호자가 되어준다는 것인데 이렇게도 생각이 없었다니. 마음이 아팠다. 개가 사람과 함께 살기로 했을 때 이런 일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걸 누가 알았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제니는 곧 새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생각보다 빨리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제니가 살아생전 그 일이 트라우마로 남았을지. 


 그 뒤 제니는 더 이상 임신을 하지 않았다. 새롭게 지은 집에서 거의 10년을 우리와 더 살다 2000년 여름에 죽었다. 그때 제니의 나이가 15살로 장수했다.

 말년에 피부병으로 병원에서 약을 지어 먹이곤 했는데 그건 노견에겐 흔히 있는 증상 중 하나라 어쩔 수가 없었다. 먹는 양도 줄고 예전처럼 뛰어다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죽을 때까지 기본적인 운신은 했다. 

  우리는 제니가 죽으면 사후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사 준비를 해야 할 때라 어떻게든 되겠지 곧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는 사이 제니의 죽음이 임박했다. 난 녀석의 죽음을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 사람이 죽을 때가 오면 잠시 반짝 좋아질 때가 있다고 들었다. 그게 꼭 사람에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녀석이 내내 기운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생생해져서 집안 여기저기를 활보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이대로 다시 좋아지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녀석은 몸이 안 좋아지고 꽤 오랫동안 내 방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제 발로 방문을 밀고 문지방에 한참을 서있기도 했다. 그때 눈은 또 얼마나 초롱초롱했는지. 정말 예전의 녀석으로 돌아간 듯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직감했다. 바로 이게 녀석의 마지막일 거라는 걸. 

  아니나 다를까. 제니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하룬가 이틀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것도 이른 새벽 가족들이 모두 잠든 사이 아무도 모르게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녀석의 벌려진 입에서 약간의 피가 흘러나왔는데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피로 몇 마리의 개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동생은 쪼그리고 앉아 녀석을 내려다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도 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건 지난날 엄마에 의해 꽃분이가 잠시 사라졌을 때는 그렇게 서럽게 울었으면서 제니가 죽었을 때는 왜 울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결국 제니는 면포에 싸여 급한 대로 마당 한 구석에 고이 묻어줬다. 그게 이사하기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집을 팔고 전세로 돌리고 2년이란 세월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전세로 돌릴 때만 해도 길다고 생각했는데. 

  제니의 죽음은 슬픈 일이긴 하지만 이사하기 전 죽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사하고 바로 그다음 날부터 포클레인이 집을 밀어버리고 땅을 파기 시작했는 소식을 들었는데 순간 잠시 아찔했다. 한 달 이래 봤자 아직 제니의 뼈가 다 썩기도 전일 텐데 그렇다면 녀석의 뼛조각은 과연 어디로 갔을지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제니에게 끝까지 좋은 주인이 되어주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