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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 Nov 11. 2024

디자인 방법론

이번에도 우린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우리는 기획자의 의도를 미팅을 통해, 혹은 간략히 나눈 슬랙 대화나 러프한 위키 문서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매년 하는 행사라면 개략적인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간혹 그 해만의 특별한 컨셉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큰 변화는 없을 테니까. 약간의 구성 차이, 일정 차이, 행사 규모 차이 정도가 있을 것이다.


우린 기억을 되감아 본다. 비슷한 프로젝트라면 진행되는 업무의 방식도 유사하다. 우리는 어떤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는지, 몇 번의 컨펌 과정이 있었는지, 협업에 있어서 어떤 게 변수였는지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해내야 하는 창의노동의 난이도가 쉬워지지는 않지만, 쌓인 경험은 프로젝트를 풀어 나갈 때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경험이 누적되어도 어려운 것이 있다. 그건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것. 이건 다른 직무 동료와의 협업과는 별개로,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그리고 그 창작의 미궁에서 우린 Chief Creative Officer와 마주한다. 이번에도 우린 헤드의 의중을, 그 마리아나 해구와 같은 깊이를 헤아리려는 시도를 한다.


우리의 디자인 헤드는 고차원적인 안목을 갖췄다. 여러 번의 매스컴 노출과 외부 활동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 또한 갖춘 분으로, 우리 회사 크리에이티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계신다. 이 계절이 오면 우린 스포츠인이 올림픽을 앞둔 마음으로 대면을 위한 준비를 한다. 사내의 주요한 크리에이티브는 그분의 눈을 거쳐 비로소 정제된다. 우리 회사의 디자이너들은 그를 존경함과 동시에 두려워한다. 모두의 의견을 물었던 것은 아니라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적어도 나와 우리 팀원들은 그랬다. 존경과 두려움의 양가성이라니, 그는 초월적인 존재인 걸까? 마음 한 켠에 그분을 디자인으로 납득시키고 싶다는 야망 아닌 야망도 있었다. 단순한 인정욕구일 수도 있고,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하고 싶은 디자이너의 원초적 바람일 수도 있겠다. 여러 가지 의미로 우리의 목표였다.






우리는 마인드맵을 그린다. 공유받은 피그마엔 부지런한 동료가 프로젝트를 위해 준비한 대략적인 개요와 아이데이션을 위한 폼이 프레임에 담겨 있다. 키비주얼을 개발하기 위한 핵심 가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키워드를 뽑고, 시각화하기 위해 래퍼런스를 모았다. 핀터레스트엔 언제나 과도할 정도로 많은 작업물이 쌓여 있다.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몇 가지 합의한 후 역할을 나누고, 각자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스케치했다. 답이 안 나오는 스케치들 사이에서 정신이 아득해지지만, 그중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몇 가지를 끄집어내 디벨롭하여 시안으로 만든다(여기서 말하는 가능성은 ‘퀄리티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아웃풋이 연상되는가’이다). 그다음 단계는? 계속 바꿔보는 것이다. 배치든, 컬러든, 조금 더 있어 보이게 만드는 시도를 한다. 마침내 가장 가능성이 보이는 시안이 윤곽을 드러내고, 우린 조직의 여러 유관부서 동료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과정을 거쳐 A안을 완성했다. 함께 준비한 다른 네 개의 안도 우리의 노고가 들어갔지만, 채택되지 않아도 괜찮다. B ~ E안은 대비를 통해 A안의 매력을 부각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윽고 찾아온 CCO 님과의 첫 번째 공유를 위한 미팅. 우린 통과했다. 우리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꼼꼼히 쓴 대본이 빛을 발했다. 1차부터 3차까지 염두에 둔 CCO 님과의 미팅 스케줄링이 무색해졌다. '짝짝짝-' 자축의 박수에 공기가 꽤 섞여있다. 이 미묘함. 통과했다는 후련함, 그럼에도 개운치가 않음을.


아아, 이번에도 진부한 방식을 선택했구나. 아니, 우리에게 선택지가 있었던가? 미팅 이후, 온전한 홀가분함을 느낀 사람은 아마 없었을 거다. 우린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걸까? 최선이었다. 최선이었지만, 최선을 다했지만- 그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크리에이티브 보단 모면을 위함이었던 걸까? 디자이너가 아닌 회사원으로서의 최선이었을까. 우린 생각에 잠긴다. 마치 미쳐 다 발려지지 않은 청어 뼈가 입에 맴도는 안성재처럼,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이다. 어딘가 눈의 초점이 갈 길을 잃었지만 다음 스텝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었으므로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는다. 고백하자면, 우린 '통과'를 위한 노하우를 여럿 준비했었다.



"같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는 일은 숭고하지만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는 것은 재미없으니까요"
『 밥 벌어주는 폰트』 p.68



프로젝트로부터 해방되고, 원래라면 이렇게 이르게 올 리가 없던 평온이 찾아온 금요일 저녁. 고요했다. 분명히 개인작업을 할 때나 학생 시절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그래픽을 풀어가는 방식은 패턴화 되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디자인 방법론을 알지는 못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음은 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다르게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그건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할 수가 없다.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디자인했던 게 언제였던가? 너무 오래되어 가물가물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행사일 - 신청사이트 오픈일 - QA - 개발 일정을 역순으로 파내려 가며 고고학자처럼 디자인 데드라인을 발굴한다. 기획을 공유받는 때부터 개발이 시작되는 시점, 우리의 일정은 번 사이의 패티와 같다.)은 늘 넉넉하지 않다. 우린 고객들을 설득해야 하지만, 결정권자와 유관부서를 납득시키는 것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조직 안에선 모두가 톱니바퀴일 뿐이지 않은가. 고대 부족의 기우제 의식처럼, 업무는 반복되며 관습화 된다. 검증된 방식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우리의 톱니바퀴가 엇나가면 불러 올 나비효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레 겁부터 먹는 것이다. 어느 날 찾아간 그래픽 디자인 전시에서 마주한 포스터. 그 앞에서 느꼈던 건 역시 괴리감일까. 언젠가부터 업무에서 하는 디자인과 내가 알던 디자인이 완전히 다른 장르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 한번 보고 잊히는 동기부여 문구들처럼 이 기분도 다음 업무들을 처리해 가며 잊어버릴까? 이번 CCO 님의 피드백은 어느 때보다 말과 말 사이에 여백과 여운이 길었다. 거기서 느낀 건 걱정과 체념이었다. 눈빛으로 무언가를 말씀하고 계시는 듯했다. '잃어버리지 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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