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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딸 Dec 25. 2019

한국의 명절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프랑스 크리스마스

프랑스인들이 크리스마스를 대하는 자세 

단골 빵집의 12월 모습

      

           12월 25일은 전 세계의 축제이지만,  파리에는 크리스마스가 일찍 찾아와 더 오래도록 머물렀다. 11월 중순쯤으로 기억한다. 배고플 때 줄곧 찾아가던 동네 작은 빵집에 갑자기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한 것이다. 파리의 크리스마스는 11월의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찾아와서 겨울 추위보다도 큰 존재감을 과시했다. 기독교를 승인한 역사가 1,500년이 넘은 프랑스에는 그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하다. 






초콜릿보다도 달콤한 12월 25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크리스마스 한 달 전, 마트 입구에 초콜릿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특별 제작된  초콜릿(Calendrier de l’Avent)이 눈에 띈다.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24개의 작은 구멍 속에는 장난감이나 초콜릿이 들어있는데, 아이들은(그리고 어른도ㅎ) 그 날짜에 해당하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 볼 수 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설렘이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캘린더와 크리스마스 초콜릿





           



샹젤리제 크리스마스 마켓은 사라지고 이제 튈르리가 그 특권을 얻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비단 어린이들만이 아니다. 12월만 되면 파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가 된다. 샹젤리제 대로와 백화점들이 가장 먼저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린다. 샹젤리제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제 사라졌지만 튈르리 공원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이처럼 산타를 맞이하기 위해 골목 곳곳을 꾸며놓은 12월의 파리를 걸으면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마레 지구에 위치한 BHV 백화점! 쇼윈도 한 칸 한 칸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몄다.


          동네 마실을 나가면 여기저기 대롱대롱 매달린 귀여운 산타를 마주할 수 있다. 파리는 대도시라 마켓이 여러 군데에서 열리고, 프랑스 전역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지 않는 마을은 없을 것이다. 단지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독일의 영향을 받은 나무로 지은 스트라스부르의 집들은 뾰족한 지붕까지 가지고 있어 마치 트리를 연상케 한다.) 그러니까 12월엔 프랑스 어디에 있더라도 이 금빛 붉은빛 분위기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만을 위해 한 해를 보내는 듯한 이 야단법석에 의문을 품은 것도 잠시, 나는 이 격한 호들갑에 동요하고 있었다.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을 잊지 않게 해 주었던 크리스마스 오두방정에 감사를 표한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은 날, 

    친구 Camille가 나와 내 여동생을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던지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동생도 망설임 없이 응했다. 

   Camille 어머님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안을 궁금하게 만든 화려한 주택이었다. 이 집은 외할머니 집이며 장식도 외할머니가 하셨단다. 가족들과 모임을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꾸민 정성이 엿보였다.



가족 모임 : 한국에 명절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가족들이 이미 모여있었다.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사촌 등등.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한 명 한 명 비쥬를 나눴고 처음 보는 사이었던 나와도 비쥬를 했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동생도 어느새 곧잘 따라 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12월 25일,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Soiree (저녁 파티)가 있다. 주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보내는 한국 크리스마스와 확실히 다르다. 프랑스 크리스마스는  온 가족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안부를 나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한국의 명절과 더 비슷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선물을 주고받는다. 


전통 프랑스식 식사

     

핑거푸드와 전식, 본식.

              사람들과 함께 수다 떨며 맛있는 음식 먹기를 좋아하는 프랑스인들 답게 저녁 파티를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우선 커다란 테이블에 앉기 전, 의자가 없는 작은 테이블엔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핑거푸트와 식전주가 뷔페식으로 깔려있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안부인사를 나눈다. 한 명 한 명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 충분한 시간을 보낸 후 정해진 자리에 앉아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한다. 주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은 어른들끼리 있다. 연령대별로 앉아있으니 공통 관심사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던 수다와 함께 전식-본식-후식까지 약 4시간에 걸친 미식 대장정을 하게 된다. (이것은 짧은 편이다)


마음을 나누는 시간

        다소 인상 깊었던 시간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모여 성탄곡을 부르며 손 잡고 춤 추기도 한다. 비쥬로 인사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친척들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이곳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마주 할 수 없다. 


  그리곤 선물을 주고받으며 따뜻한 감사의 말을 나눈다. 취향과 다른 선물을 받는더라도 고민하고 시간 내서 사는 선물이야말로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 선물로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모자, 장갑, 스카프 등등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준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프랑스 대형마트에 등장하는 기다란 선물 포장지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직접 포장하기 때문이다. 정을 가득 담아 예쁜 포장지로 싼 선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크리스마스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명절에 현금 말고 선물을 주고받으면 어떨까?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놓인 선물들과 선물을 터프하게 뜯던 아기, 모자와 시계도 모두 선물받은 것이다. ㅎㅎ


             크리스마스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프랑스인과 크게 다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기도 하지만 크리스마스 때마다 모임을 하는 것도 아니다.  성탄절이 특별한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든 혼자 보내든 자유로운 날이고 쉴 수 있는 공휴일이라는 것 뿐이다.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파리에서 보낸 12월, 내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따뜻하게 보낸 건 사실이다.  12월엔 그들의 설렘과 기대가 부풀어 거리 곳곳에 행복이 퐁퐁 날아오른다. 더불어 나도 행복한 12월이었다.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는 것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여행지로 떠날 날을 생각하면 갑자기 설렘이 차오르듯이,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면 , 행복하다. 더 정확하게는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설렘이라는 감정이 종종 차오른다. 2020년 새해가 다가온다. 프랑스인들이 한 달 동안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연 중 손꼽아 기다리는 며칠이 있다면 한 해를 더욱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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