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휴가를 가져본 적 있나요
- 휴직 가이드북은 없네요(1)에서 계속
친구가 보내준 영상은 TED강연자로 나온 디자이너 Stefan이 "The power of time off"에 대해 강연하는 내용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NuOmTQdFjA
Have you ever conducted a sabbatical?
(안식휴가를 가져본 적 있나요?)
휴직기간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내게 아마도 친구는 빨리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재촉하거나 무거운 임무를 부여하지 말고 그냥 안식휴가처럼 1년을 즐겨보라는 의미에서 보내준 것으로 이해된다. 기분 좋아지는 활동들을 통해 에너지가 충전되면 아이디어도 충만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다양하게 이것저것 시도하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원하는 업을 발견하고 매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1년 뒤 나에게는 최소한 지금과는 다른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함께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애초에 휴직 사유가 병가 휴직이었던 만큼 심신을 이전과 같이 회복하는 것 이상 욕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이제껏 늘 무엇인가를 해왔던 삶을 살아온 경험이 자연스레 영향을 미쳤는지 휴직을 결심했을 때는 몸부터 회복하자고 해놓고서도 막상 휴직이 시작되니 불안감에 이것저것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번 준비기간 동안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다시 복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가장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육아휴직 중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동기의 이야기나 회사에 다니는 동안 본인이 원하는 일을 수년간 준비해서 마침내 퇴사한 동료의 이야기와 무의식 중에 비교했는지도 모른다. 육아를 하면서도 시험을 준비하는데, 그리고 나는 이제 준비를 시작했으니 더 열심히 압축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는지도 모른다.
영상에도 나오지만 일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한다.
Job: 오직 밥벌이용으로 일하는 것 (주말을 기다리며 취미를 찾게 됨)
Career: 발전과 성장을 위해 일하는 것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 들 때가 있음)
Calling: 돈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천직)
나는 Job을 하다 지쳤는데 또다시 습관적으로 다른 Job을 찾고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 Calling을 한번 찾아보고픈 욕심이 들었다. 아니면 최소한 의미 있는 Career의 방향이라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번 1년을 안식휴가로 갖기로 했다. 비록 무급휴가이기에 흔히들 부러워하는 '안식휴가'와는 많이 달랐지만 연봉을 포기하는 대신 1년의 시간을 샀으니까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게다가 1년 뒤에 돌아갈 곳도 있으니 1년짜리 보험도 같이 들어놓은 셈이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는 기대했을지도 모르는 화려한 성공보다는 가벼운 휴가를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