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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 아름다워 Jan 30. 2024

병상일지의 시작

갑상선암 판정을 받은 지 한 달이 훨씬 지났다.

휴직을 한지도, 부모님 댁에 내려온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처음 브런치에 갑상선암 환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생사가 오가는 병이 아니라고 하니 이 시간을 잘 쉬면서 글이나 실컷 써봐야겠다 생각했다. 오히려 나에게도 극적인 콘텐츠가 생겼구나 싶어 이 기회에 뭔가 획기적인 것을 남겨야지 했다.


이렇게 한 치 앞도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을 어찌할꼬....


하지만 나는 갑상선암 판정을 받기 직전, 그러니까 정확히 건강검진을 받은 다음날부터 디스크가 도졌다.

내 인생 첫 디스크 발병은 상하이에서 대학원 졸업논문을 준비할 때였다. 논문이 반쯤 완성되었을 때였는데, 특별새벽기도가 있던 첫날 새벽이었다.


나를 데리러 온다는 집사님을 기다리다가 전화를 받고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는 순간 디스크가 터졌던 것 같아. 순간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거주춤 문을 나서는데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를 기다릴 수 없었던 집사님이 먼저 가시고, 나는 어찌어찌 교회 버스를 타고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버스에서 내릴 때 내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목사님께서 목회실에 가서 누워있으라고 간이침대에 전기장판을 틀어주셨다. 1시간 이상을 앉아있는 건 무리니 누워서 예배를 보라고.


난생처음 교역자실 사무실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마칠 즈음 나는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했는데 내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돌릴 수도 일어날 수도 없어진 나는 조용한 목회실에서 소리쳤다....


"저기요! 저 좀 일으켜주세요.....!!! 저 못 일어나겠어요...."


그때 나는 큰일 났음을 느꼈다. 심상치가 않은 상황인 것 같은데 어쩌지....


목회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예배가 끝난 다음에 목사님을 비롯해 사람들이 사무실로 내려오다가 내가 혼자 누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 달려오셨다.


새벽기도회가 끝난 시간은 고작 오전 6시, 내 상황이 아무리 심각해도 지금은 병원 문을 열지 않아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내가 목회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상황이었기에 나는 목사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집에 갔다.


앉아있지도 누워있지도 못한 긴급 상황이라, 목사님이 주변 여러 집사님들께 도움을 청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8시까지 병원에 가겠으니 잠시만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7시쯤 집에 도착했지만 나는 8시까지 참을 수가 없었다. 하늘이 노래져서 가깝게 지내던 집사님께 울면서 전화했다.


선생님이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해 주신다고는 했으나 아직도 한 시간이 남았다. 집사님은 별 수 없이 놀란 나를 차에 태우고 병원에 갔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같이 있으니 무서운 마음이 사라졌다. 그렇게 삼십 분쯤 기다렸더니 선생님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오셨다.


급성 디스크로 나는 그 자리에서 침술 치료를 받았다. 보통 혈을 뚫으면 그 즉시 60% 정도로 회복을 해서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디스크 진료를 보는데 반해, 나는 혈을 세 번이나 뜷었으나 아무런 회복이 없었다. 혈을 뚫는 건 몸에 너무 무리가 가고, 그렇다고 우선 집에 돌려보내기엔 오늘 밤 혼자 지내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며 걱정을 하셨다. 선생님도 퇴근을 하셔야 하니, 우선 응급치료만 하고는 집으로 갔다.


오전 7시 30분에 병원에 도착하여, 저녁 8시에 집으로.


나의 디스크 인생은 이렇게 시작이 되어, 몸이 피곤하거나 아프면 가장 먼저 허리에서 신호를 보낸다. 몸을 잘 살피라고... 지금 무리하는 중이라고...


그런 내게 다시 허리가 불편해졌는데, 여느 때와 달리 나는 열심히 참았고 내 허리는 점점 악화되었다. 문을 열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이 정도 아프면 적극적 치료를 해야 하는데 나는 그저 참을 인을 세 번씩 대뇌이며 일을 하고 있었다.


동료직원이 그 정도면 휴직계를 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잠시 쉬라고 말을 하던 그때 나는 번뜩 생각이 났다.


"저 오늘 조직검사 결과 나오는데...?! 별일이야 있겠어요? 깔깔깔"


그날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가 오후 미팅으로 택시로 이동 중에 갑상선암 판정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내 허리가 신호를 보내면 나는 즉각 알아차려야 하는데, 그렇게 미련하게 참고참고 참다가 이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사실 갑상선암 보다 내 허리 좀 어떻게 해주세요... 엉엉...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지금 이 시점 한 달 반 만에 컴퓨터를 켜고 앉아 글을 쓰고 있자니 또다시 내 허리는 멈추라고 아우성이다.

아직 갑상선암 이야기는 시작도 못했는데 말이다. 작은 신호를 무시했더니 온몸에서 멈추라고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이렇게 해도 안 멈춘다고???????!!!!!!!!!!!! 언제까지 참나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내 몸 여기저기에서는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자기 나는 갑상선암과의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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