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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 아름다워 Feb 17. 2024

주삿바늘 소동

수술 전날 밤 가벼운 마음으로 병상에 앉아 글을 썼다.


암 판정을 받고 네이버 카페 ‘갑상선포럼’에 가입하여 이런저런 정보를 얻었고, 수술 전에는 유튜브로 갑상선암 수술 브이로그도 봤기에 큰 걱정 없었다.


영상으로는 꽤 멀쩡하고, 수술 후기들도 금방 괜찮아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날 수술을 위한 주삿바늘은 말썽을 부렸다. 밤 8시가 넘어 주삿바늘을 꽂고 하나 남은 검사를 받으러 병실에서 갑상선센터까지 걸어갔다. 걸어서 10분 이상은 걸리는 꽤 먼 거리다.


바늘을 꽂은 팔이 욱신거려 몇 발자국 걷고 서기를 반복하여 30분을 걸려 다시 병실 침대에 돌아왔다. 팔이 불편했으니 일찍 잠이 들어야겠다 싶어 잠이 들었는데 12시 즈음 팔이 너무 아파서 눈을 떴다.


5인실 병실의 환자들은 이미 모두 취침을 한 상태고 보호자인 엄마도 간이침대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간호사선생님에게 나갔다.


“선생님 팔이 너무 아파요…”


간호사실에는 2명의 선생님 밖에 계시지 않았는데, 주사를 꽂은 손목이 아프냐는 물음에 거기가 아니라 팔뚝이 아프다고 했다. 뭔가 피가 통하지 않는 것 같은 통증…


간호사선생님은 지금 바늘을 뽑아도 내일 다시 바늘을 꽂아야 하니 조금 더 참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너무 아프면 그때 다시 오라고.


알겠다고 하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는데, 병원의 시간은 참으로 이상하게 흘러간다. 내 체감으로는 서너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고작 한 시간 조금 넘은 시간, 새벽 1시 15분쯤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엔 팔이 아파 혼자 못 일어날 것 같아 엄마를 깨웠다.


“엄마 팔이 너무 아파…”


놀란 엄마는 간호사선생님을 불러오겠다고 했지만 다른 환자들이 자고 있고, 선생님이 조금 참아보랬으니 좀 참겠다고 했다.


근데 엄마가 깨서 그런지 나의 참을성은 아주 쉽게 바닥이 났고 엄마랑 같이 병실 밖으로 나가 간호사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왜 팔뚝이 아픈지 모르겠다면서, 너무 아츠면 바늘을 빼줄까요?라고 물었다. 사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프긴 하지만 내일 어차피 다시 바늘을 꽂으면 또 아플 거라고 하시니 어떤 결정이 맞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쩔 줄을 몰라하니 간호사선생님은 그럼 우선 바늘을 빼고 새벽에 다시 바늘을 꽂을 테니 편히 자라고 바늘을 뽑아주셨다.


그 순간 식은땀이 나고 몸이 힘이 쭉 빠지면서 어지러웠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고 놀란 선생님들은 의자 두 개를 가져와 다리를 올려 나를 앉히고는 숨을 크게 쉬라고 했다.


그러고 싶었지만 갑자기 몽롱해지면서 세상이 웅웅 거리고 몸은 말을 듣지 않고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놀란 선생님들이 나를 의자에 눕듯 앉히고는 혈압을 쟀다.


빨간 불이 들어오더니 ‘삑—— 삑—— ’


응급이란 뜻이다.


그 소리에 나도 놀랐는데 두 간호사 선생님은 나를 부축하여 바로 병실로 들여보냈다. 침대를 V로 만들어 다리를 위로 두고 누우라고. 잠시 쉬고 있으면 5분 뒤에 다시 오겠다고.


그 순간 두 간호사 선생님의 환상호흡에 사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선생님들은 다 해결할 수 있으리라.


잠시 후 병실에 혈압 재는 기계를 들고 들어오셔서 다시 혈압을 쟀다.


다행히 정상.


그렇게 작은 소동을 끝내고 잠이 들었는데, 병실의 밤은 분주하다. 1-2시간마다 들어와서 환자들 혈압을 체크한다.


수술 전 항생제 테스트도 하고 수술을 위한 주삿바늘도 다시 꽂았다. 주 지켜보던 엄마는 얇은 바늘로 꽂으면 안 되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수술복 같은 옷을 입고 베테랑이라 얼굴에 쓰여있는 간호사선생님은 나이도 조금 있으신 듯했다. 그 옷은 무섭지만 아주 젊은 선생님들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엄마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는 그런 표정.


나는 혈관이 얇아서 일반 병원에서는 여러 번 바늘을 찌르는데, 이 병원에서는 채혈을 할 때도 주사를 놓을 때도 늘 단번에 성공했다. 별것 아닐 수 있지만 내 안에 수술의 두려움을 없애준 나만의 의료진 실력 테스트.


수술이 잘 됐는지 나는 어차피 모르니 병원의 실력을 가늠하기에는 바늘 꽂기가 최고 아닌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ㅋㅋㅋ


어느 곳에서 어느 누가 바늘을 찔러도 항상 한 번에 성공했으니 어떤 수술에서 누가 오더라도 내 팔을 여러 번 찌르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내 안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병실의 밤은 길고 분주하며 아득하고 두렵다.


새벽부터 바빴던 수술 준비는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곧 수술실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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