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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Apr 10. 2020

단골의 힘

'골수 단골의 자부심'

"언니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꼭 갈게요."

"친구들 우르르 몰고 갈게요."

"언니 스토리는 열심히 보고 있어요. 언니 브런치 글도 잘 고 있어요."

"마음은 벌써 여러 번 슈가를 다녀왔어요."


다른 도시에 사는 그녀의 진심이 담긴 메시지. 일부러라도 메시지를 보내주는 그녀. 브런치 글 읽고 피드백까지 해주는 손님. 그녀들은 이렇게 따뜻한 안부를 전해준다.

손님이 와도 바이러스 때문에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걱정이었고 오지 않으면 또 걱정이기도 했다.


4월이 시작되었는데 올해 들어서  번도 보지 못한 손님들이 더러 계신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본의 아니게 발길을 끊게 되었다. 외출 자제. 모임 자제. 그리고 여행도 취소하다 보니 계절이 바뀌었지만 새 옷을 사입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자녀들이 집에 있으니 매 끼니마다 밥 챙겨주고 아이들 케어하느라 오지 못하기도 했다. 아무리 단골이어도 우리 옷가게에 올 이유가 없기에 몇 달째 만나지 못한 단골손님들이 있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나의 할 일을 했다.

옷가게 최악의 비수기 1월과 2월을 겨우 보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터진 것이다. 긴 겨울 '비수기'라는 겨울잠 같은 시간을 보내고 3월은 새 봄을 맞으면서 활기를 되찾는 시기가 된다. 그런데 옷가게 9년째 이런 최악의 시즌은 처음 맞았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전부 그랬고 지금은 전 세계가 비상이다. 버텨야 했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얼마 전부터 지친 손님들이 옷을 사기 위해 방문을 해주신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필요한 옷을 사기 위해 오셨다. 직장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로를 위해서 마스크를 쓰고 옷을 입어보고 숨 막혀 힘들어하면서도 벗지 않는다. 고맙게도 지난 3월은 꾸준히 오시는 단골손님들이 계셔서 잘 보낸 것 같다. 꽃이 예쁘게 피어도 마음껏 예뻐 할 수 없었던 봄을 보내고 있다.


가게근처 수변공원 산책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졌음에도 나는 원래 쉬는 일요일 말고는 단 하루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한 명도 오지 않아 종일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전기세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 있으면서 추우니까 어쩔 수 없이 난방을 틀어야 했다. 그리고 12평 가게에 조명도 많은데 손님 없다고 부분적으로 꺼두는 것도 싫어서 여느 때와 똑같이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음악을 틀어두고서 나의 자리를 지켰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골손님들을 위해서 '카카오스토리'에 신상 사진을 부지런히 올려주고 소소한 이야기라도 기록해가면서 손님들이 나의 '카카오스토리'에서 떠나가지 않도록 했다. 어쩌면 정상적일 때보다 요즘 폰을 보는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손님들은 여전히 나의 스토리를 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매일 뉴스를 빼먹지 않고 보듯이 슈가의 스토리 또한 매일 본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 역시 손님도 오지 않고 날도 추운데 가게에 나가고 싶었을까?

하지만 나는 나의 자리를 지키고 나의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조심해야 했다. 바이러스가 무서웠으니까. 손 소독 젤을 준비해두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기 중에 분무하는 소독제도 갖추었다. 손님이 오시면 손소독제부터 바르게 했으며 마스크는 필수였다. 손님이 가고 나면 스프레이 소독제를 매장에 뿌렸다. 나만의 방식으로 방역을 하면서 손님을 기다리고 맞이하고 보냈다. 그리고 손님들과 보이지 않는 소통의 공간 '카카오스토리'를 쉬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코로나는 아직 남아있고 여전히 불안한 3월에도 손님들은 우리 가게를 찾아와 주셨다. 물론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3월도 무사히 잘 넘긴 것이다.


티브이를 켜면 매일 뉴스를 보게 되고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의 소식.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일을 하노라고 카카오스토리에 옷 사진을 올리면서 신상을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서울 도매상가에 사장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계절이 바뀌어 신상은 나오고 있는데 지방상인들이 볼 수 있도록 카카오스토리에 신상을 올리면서 '이래도 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대구는 전쟁의 폐허 같다고 하였고 병상이 부족하고 의료진도 부족하고 마스크도 없고.. 소상공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나라가 난리인데 우리는 장사를 해야 했다. 아니 나는 장사를 해야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미안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모든 것이 마비될 상황인데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어든지 해야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방법이란 생각이었다. 스토리에 조심스럽게 봄 옷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일상을 기록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의. 식. 주이다. 그런데도 왠지 ''이라는 것은 이럴 때는 죽고 사는 문제와는 별개라고 이런 시국에 여자들의 옷에 대한 수다를 브런치에도 쓰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편에서는 코로나 환자가 되어서 비통한 글을 쓰는데 나는 옷 이야기를 썼다. 거의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이제야 솔직한 마음을 열게 된다. 그냥 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마저도 브런치나 스토리에 코로나 이야기로 도배를 하면서 손님들과 우울하게 지냈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단골손님들이 즐겨보는 스토리에 옷 이야기를 쓰고 소소한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은 당연히 내가 할 일을 한 것이다. 내가 코로나바이러스를 견디는 방법이고 지혜였다.



 '단골' 그 힘은 나에게 엄청나고 고마운 힘이 되었다.

몇 달째 얼굴을 못 본 손님들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오든 안 오든 안부라도 전해주는 손님들은 고마운 존재이다. 예전에는 어디를 가게 되면 나 스스로 ‘단골’이라는 말을 했다. '자칭 단골'이었다.

막상 장사를 해보니 주인의 기준에서 생각하는 단골과 손님이 생각하는 단골이 차이가 있었다. 나도 스스로가 얼마나 단골임을 과시했던가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 단골은 영원한 단골’이라지만 아니기도 하다.

9년째 지나오면서 자주 볼 것 같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서서히 보기가 힘들어지고 가끔 안부를 전하게 되며 여전히 인사는 하지만 발길이 뜸해진 단골. 그리고 우리끼리 하는 말 일명 ‘골수 단골’이라는 부류가 있을 것이다. 뼛속까지 단골이라는 뜻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우리 가게 옷으로만 입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내가 말하는 ‘골수 단골’은 정말로 속옷 빼고 전부 우리 집 옷만 입는 사람이다.

사랑도 움직이는 것이라는데 하물며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야 당연하다. 한 번씩 물갈이가 되어서 오던 손님이 발길을 끊고 또 새로운 손님이 단골이 되고 이런 반복인 것 같다. 옷가게는 더욱더 단골이 될 수밖에 없는 업종이지만 반면에 다른 가게에 예쁜 옷이 있다면 다른 가게로 옮겨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님과 끈끈한 정이 쌓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관계가 안 좋아지거나 끈끈한 정이 쌓이지 않으면 마음은 쉽게 옮겨가기 때문이다. 물건을 팔기 전에 사람의 마음부터 주고받아야 하는 것은 진리일 것이다. 이번에 많이 느끼게 되었다. 쉽게 옮겨 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가게 단골손님들은  '의리가 많구나.' 새삼 확인했다. 9년이란 세월이 그냥 흘러만 온 세월이 아니었다. 소비를 할 만한 사람은 해야 하고 새 옷도 입을 만하면 사 입어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우리 가게 단골손님들은 내가 받을 금액을 말하면 '더 깎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럴 때 내 마음은 저절로 또 단 돈 일이천 원이라도 더 돌려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계속 나와의 인연으로 오는 '골수 단골'손님들 덕분에 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잘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장사는 사람이 없으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단골' 내가 정하는 기준보다 손님 스스로가 단골이 되어 뿌듯해하고 단골로 다니는 가게가 계속 잘될 때 흐뭇해하는 것. 그래서 우리 가게에서 옷을 사 입는 것에 자부심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자부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옷을 고르는 것에 더욱더 신경을 써 주어야 한다. 그것이 '골수 단골'을 위해 내가 할 일이다.            



-달달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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