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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추꽃 Nov 13. 2021

<권력의 원리>를 읽고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생각해봄직한 요소들이 많았던 책이었다.


1. 인간의 욕구와 회사, 그리고 노조의 중요성


이 책은 권력을 가지려면, 즉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상대방이 가치 있게 여기는 자원에 대한 접근 권한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한다(26 페이지).


이때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확신" (84 페이지)이라고 하는데, 이는 각각 안전욕구와 자존감 욕구의 존재를 의미한다(즉,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가치 있는 자원이라 여기게 된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인간은 돈과 같은 물질적 자원뿐 아니라 지위, 소속감, 성취감, 자율성과 도덕성을 추구하는데,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물질적 자원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들은 상위 욕구인 자존감 욕구와만 관련이 있을 것 같았는데,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욕구와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는 것이다.


소속감의 경우 "객관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보살피는 대상은 우리를 안전하게" 해주기 때문에 안전욕구와 관련이 있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누군가 위협하면 그 사람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무릎 꿇는다. 또 위협적인 행동을 멈추기 위해 뭐든 다 할 수 있다"(페이지 94).


성취감의 경우 "우리는 성취를 통해 스스로 유능하다고 느끼는 감정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이 스스로 안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기술이나 지식을 더 많이 습득할수록 일상에서 행사할 수 있는 통제력은 더 커지고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위협감은 덜 느끼게 된다"라고 한다(95 페이지). 그렇기 때문에 안전욕구와 관련이 있다.


자율성은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한 원치 않은 결과로부터 우리를 보호함으로써 스스로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라고 한다(97 페이지). 자율성으로 인한 만족도는 정신건강 향상으로도 이어진다. 또한 삶에 대한 자율성이 부족하면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 든다고 하는데, "최악의 경우 이 같은 지배욕은 고문과 테러 등 인간의 생명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라고 한다(페이지 99).


도덕성이 안전욕구와 관련이 있는 이유는 "개인의 안위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안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각종 규범과 관습은 자연계의 위험은 물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묘사되는 사회의 비도덕성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준다"(페이지 100).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 차원의 욕구 충족은 한편으론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회사는 직원들을 더욱 동기부여시키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직무 충실화 등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는 개개인이 자신의 업무에 더욱 큰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기술 다양화, 직무 정체성, 직무 중요성, 자율성, 그리고 피드백을 향상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결국 이를 통해 직원들은 성취감, 자율성 등을 통해 안전욕구와 자존감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되는데, 내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이런 식으로 욕구를 충족해 줄수록 회사가 직원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자원의 통제를 통해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즉, 자아실현과 동기부여 등 직원들의 사회적 효율성이 달성될수록 그 회사는 종업원에게 더욱 가치 있고 대체 불가능한 곳이 되어 한편으론 기업의 권력이 그만큼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기업이더라도 노동조합을 통한 권력 균형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노조 또한 그 어떤 권력 집단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얻은 후 어느 정도 이를 남용할 위험은 늘 존재하지만, 노조가 "하나 되어 싸우지 않았더라면, 노동자 개개인은 여전히 대체 가능한 존재로 무력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 통합 전략이 경제 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노조는 권력 불균형이 심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아 장기적으로 고용주나 노동자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페이지 181).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기존의 시스템이 자연 질서"라고 믿게 되고, "현상 유지를 타파해야 한다는 동기부여직접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사람들은 비로소 행동하기 때문"이다(페이지 178). 노조는 동기부여와 행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샘이다.


2. 조직 내 변화담당자의 역할


인사관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내가 가장 관심이 갔던 인사담당자의 역할은 조직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업문화의 변혁을 이끌어오고, 이를 위한 적응방안들을 마련하는 변화담당자의 역할이었다. 이 책은 사회운동에 필요한 역할들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를 조직 내 변화담당자의 역할에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봉가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불만을 식별해 이를 대중에 선포함으로써 모두가 다 같이 분개하고 변화를 촉구하기를 원한다". 혁신가는 "선동가가 식별한 불만 해소를 위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사람"이고, 통합가는 "여러 당사자 간 의견을 조율해 변화를 추진함으로써 혁신가가 고안한 해결책이 대규모로 채택될 수 있도록 돕는다"(페이지 192). 최종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통합가의 역할이니만큼, 나도 조직 내 통합가의 역할에 가장 관심이 간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권력이 지위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즉, 통합가는 꼭 회사 내 대단한 지위에 있는 사람일 필요가 없고, 동시에 회사 내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변화를 추진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권위는 권력의 원천일 수는 있지만, 권력을 보장하진 않는다. [...] 상사는 권위를 이용해 지시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 지시를 반드시 따라는 건 아니다. 공식적 권위가 없는 사람도 핵심 자원의 접근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페이지 123). 따라서 공식적 조직도보다는 실질적인 힘의 배치도, 즉 네트워크 배치도를 그려보고 네트워크 중심점을 파악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변화라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데 적절한 연결점이 없는 사람이 주도하면 제대로 된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페이지 128). 이때 힘의 지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만으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3. 평화 시위의 효과성


한 가지 놀란 점은 평화 시위의 효과가 폭력 시위의 효과보다 컸다는 통계였다. 폭력의 사용이 바람직하냐 와는 별개로, 폭력 시위에서는 양측의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단기간의 성과에는 평화 시위보다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를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평화 시위는 진입장벽이 낮아 시위대의 규모가 커진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 운동의 규모가 쉽게 확장된다는 것 외에도 다양한 참여자를 영입하고 더 많은 혁신적 전술을 구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전략적인 비폭력 시위는 인간의 두 가지 욕구를 충족한다. 우선 폭력으로부터 참가자를 보호함으로써 안전의 욕구를 보장한다. 또 평화 시위대는 위엄 있고 공정하다는 평가를 얻음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한다"(페이지 199).


결국 시위의 권력 확장에 필요한 가치 있는 자원을 획득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은 폭력의 행사가 아니라 '조직화'이다. "조직화를 통해 사람들은 조직 안으로 들어와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연결의 강도가 [...] 단단해지면, [...] 저항의 생명력은 강해지고 사회적 반향은 커진다"(페이지 200).


4. 소셜 미디어와 선동가, 혁신가, 통합가가 마주하는 한계


나는 소셜 미디어는 오프라인보다 정보의 확산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으므로 변화를 실현해야 하는 선동가, 혁신가, 통합가에게 좋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었다.


선동가의 경우 "사람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이미 그것을 동의한 사람들에게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리듬과 머신러닝이 결합한 사람들의 선호는 온라인에서의 구분을 더욱 강화한다"(페이지 216). 즉, 동질적인 지지자들에게만 메시지가 닿게 되는 위험이 있는데, 물론 이러한 지지자들도 중요하지만 변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다양한 집단과 정보를 공유해 특히 모호한 입장인 중립자들을 가까이에 두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진심으로 호소해"(페이지 135) 변화를 선호하는 쪽으로 넘어올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혁신가의 경우,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해결책으로 기술의 중요성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는데, "기술의 변화가 뿌리 깊은 권력 계층까지 변화시킬 순 없다"(페이지 216)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통합가의 경우 소셜미디어를 통한 "확산 속도가 어느 순간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탄탄하게 조직하지 않으면 참가자들 간 연결성은 피상적이고, 공동의 의사결정이나 전략 수립, 의사소통, 조직화에 대한 경험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에 직면한다(페이지 217). 이렇게 되면 의견 조율과 해결책에 대한 대규모 채택이 어려워진다.


결국 "사회운동의 힘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모으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집단행동이 일반 대중의 믿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쳐 변화를 유도"하는 데서 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함께하는 힘을 어떤 식으로 사용해 가치 있는 자원에 대한 접근을 통제할 것인지 그 방법을 파악해야 한다. [...] 누가 어떤 식으로 통제하느냐에 따라 신기술은 사회운동의 힘을 강화할 수도, 제한할 수도 있다"(페이지 128).


5. 디지털 시대의 권력관계


이는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다. 당연히 디지털 혁명으로 모두가 쉽고 폭넓게 정보공유를 하게 됨으로써 권력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은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며, 무엇이든 기계가 하면 더 정확하고 공평하다는 인식이 아무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알고리듬도 여전히 실수를 범한다는 사실과, 알고리듬은 인간이 만든 '코드에 내재된 의견'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알고리듬을 구축하는 기술 근로자의 고용주는 기업이고, "이들 기업은 투자자를 책임지는 위치의 임원진이 세운 각종 질서에 따라 행동한다. 따라서 기업은 큰 수익을 내는 코드를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누구도 알고리듬에 접근해 그것을 분석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이 같은 투명성 결여로 상품을 개발해 수익을 내는 기업엔지니어의 손에서 통제권이 유지된다"(페이지 233).


동시에 우리의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여 대규모 기술기업들은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정보를 누구에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혜택을 주거나 해를 끼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진다"(페이지 235). 따라서 법을 통한 규제 등으로 우리의 기술 통제권을 가져오는 것이 시급하다.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 우리가 가진 기술을 언제,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페이지 249)는 통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선한 의도에만 의지해서는 권력의 오만과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은 권력을 견제하고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두 가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 권력이 한 사람의 개인이나 소수집단에 집중되지 않고 여럿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페이지 257). 우리의 기술 통제권을 회복하는 것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직장과 사회에서 구성원들 간 보다 공평한 권력 분배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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