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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Jun 26. 2024

영국에게 특별한 2024년 여름

영국 총선, 스포츠와 함께하는 여름

그간 런던은 6월에도 히터를 틀었어야 할 만큼 날씨가 오락가락했는데 드디어 이번주 최고 기온 28도까지 올라가는 진짜 여름이 찾아왔다. 이 황금 같은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요즘은 모든 펍 야외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올여름은 여러 주요 이벤트들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중이다. 당장 내가 일하고 있는 마케팅 업계에서도 이 트렌드를 반영하려 혈안이 되어있을 정도니.

최근에 찍은 런던의 여름들


영국 총선

우선 당장 다음 주 7월 4일에 영국 총선이 잡혔다. 영국의 정치 시스템은 조금 특이한데 영국 총리의 임기는 우리나라 대통령과 똑같이 5년이지만, 총리가 원할 경우 조기 총선을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영국 총리인 리시 수낙은 2022년 10월에 다수당인 보수당(토리)으로부터 임명이 되었는데, 지금 임기가 2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조기 총선을 요청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동안 현재 그가 속한 토리당에 대한 여론이 굉장히 좋지 않았고 극한의 인플레이션과 경제 악화로 고통받던 영국이 요즘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나아졌는데, 이 기회를 활용해 그동안 나락으로 갔던 보수당에 대한 신뢰를 극복하고 싶었던 것 같다. 토리당은 리셋 버튼이 되길 바랐던 것 같지만 여론은 역시나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노동당의 압승이 예상되고 그렇게 되면 무려 14년 만에 노동당이 재집권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14년간 토리당이 집권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이 (안 좋은 쪽으로) 바뀌었는데 브렉시트가 그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무자비할 만큼 잔인했던 이민법. (르완다 이민 제도와 윈드러시 스캔들은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남자친구는 매일 아침 '토리당을 쫓아내기 N일전이야'라고 외치며 디데이를 셀 정도로 모두가 이 지긋지긋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여하튼 각설하고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민법에 대한 공약을 자세히 살펴보는 편인데 역시나 토리당은 비자법 기준을 높이고 르완다 이민 제도 유지를 통해 이민자 수를 급격하게 줄이는 것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노동당은 그 정도까지 완강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이민자 수를 통제하면서 내수에서 노동력을 최대한 충당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어쨌든 양당 모두 이민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이다. 안 그래도 비자 때문에 어려웠던 이직은 당분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고 하니 어쩌면 요즘 모든 선진 국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나에게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토리보다는 노동당이 훨씬 나으니까. 노동당이 이뤄나갈 새로운 영국이 기대된다. 그나저나 한국 대통령도 빨리 어떻게 좀 안되나?


유로 2024

유럽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유로컵이 올해 열렸고 온 유럽이 지금 이것 때문에 난리법석이다. 2020년에 열렸어야 했던 지난 유로컵이 코로나 때문에 1년 미뤄져서 2021년에 열렸었는데, 그때 잉글랜드가 마침 홈구장이었던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이탈리아와 결승을 치렀었다. 그런데 무려 마지막 승부차기에서 정말 드라마 같은 참패를 당해 전 국민 모두에게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 유명한 이야기는 넷플릭스 '파이널:웸블리 습격'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자세하게 다루는데 영국 사람들이 얼마나 축구에 미친 인간들인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아무래도 그때의 충격이 가시질 않았는지 전반적으로 잉글랜드 팬들에게는 무거운 긴장감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모두가 축제처럼 즐기는 분위기이다.


하루에 영국 시간으로 오후 5시, 8시 이렇게 경기를 하는데 오후 5시에 잉글랜드 경기가 하는 날에는 다들 4시-5시 사이에 퇴근해 축구를 보러 가는데 회사에서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회사는 다국적 글로벌 기업이라 영국인을 포함해 유러피언 동료들이 정말 많은데 그러다 보니 다 같이 각국의 모든 경기를 챙겨보게 되는 재미가 있다. 얼마 전에는 남자친구, 그리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오후 5시 잉글랜드 vs 덴마크 경기를 보고 난 후에 8시 이탈리아 vs 스페인 경기까지 함께 했다. 나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어나더 레벨로 정말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는 동료들, 친구들을 보면서 저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간절한가 신기하면서 부럽기도 하다.

5시 퇴근하자마자 펍에서 본 잉글랜드 vs 덴마크 경기

잉글랜드는 현재 조 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상황인데,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플레이가 영 시원치 않다. 지난 두 경기 모두 찝찝한 무승부로 끝난 데다 축구 광팬인 남자친구의 말을 빌리면 이런 말도 안 되는 플레이로 조 1위인 게 신기할 지경이라고. 그래도 트랜스 영국인으로 잉글랜드를 응원하고 있는 만큼 올해 꼭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한다. 잉글랜드....오래가자...파이팅!


영국의 여름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7월이 되면, 2주간 윔블던 테니스 챔피언십을 포함해 7월 말 - 8월에 바로 옆 나라인 프랑스에서 열리는 파리 올림픽도 있어서 올여름은 정말 쉴 새 없이 예정되어 있는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들로 가득 찰 것 같다. 마케팅 업계에서 영국의 큰 리테일러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덕분에 이 모든 것들의 영향력을 직접 피부로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어쩔 땐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 신기할 때가 많다. 특히 올해 마케팅 캘린더는 스포츠 이벤트에 따라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고, 모든 경기 결과에 따라 사람들의 소비도 시시각각 달라져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잉글랜드가 우승하는 날에는 충동형 소비가 급증한다.) 그리고 당장 올림픽에서 인기 있는 종목부터 다르다. 영국은 사이클, 조정, 육상, 수영에 강하다고 하는데 양궁, 유도, 펜싱 등 한국이 강한 종목에만 익숙한 나에겐 영 생소하다. 유러피언들이 왜 스포츠에 그토록 미쳐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 듯하다.



이 글에서 다 언급하진 않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으로 지금 영국에서는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올해 여름은 새로움과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시기일 것 같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정권 교체로 인해 영국에도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 또한 이번 여름, 선물처럼 주어진 이 순간들을 마음껏 즐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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