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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eul Jan 05. 2024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Bonjour! Bonsoir! Merci!

 해야 할 일이 없는 채로 시간이 차고 넘치면 하고 싶은 일조차 손 놓게 되는 순간들이 잦았다. 내가 아는 건 일로 인해 빠져나간 기력을 다시 채우는 방법뿐이지, 에너지가 있는 상태에서 제대로 쉬는 법 따위 알지 못했다.


 그러다 보면 쉽게 무기력과 우울감에 젖어든다. 교환학생의 장점 중 하나인 '여유'가 '무기력'과 '우울'이라는 양날검으로 바뀌어 내 삶의 만족도를 저울질했다.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하는 건 한 끗 차이였다. 내 목을 베어야만 끝날 것 같은 종류의 우울은 아니었지만 밧줄로 서서히 목을 조여 오는 듯한, 반복적으로 생채기를 내는 듯한 우울감에 빠졌었다.


 그럴 때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동고동락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쭈욱 뻗는다. 베개에 올려두기에는 머리와 너무 가까워 멍청해질까 봐 걱정되고, 책상에 올려두기에는 침대와 책상과의 거리가 꽤 됐다. 그래서 매번 침대 아래 벗어둔 슬리퍼 위에 살포시 올려놓는다. 한 번에 잡히지 않으면 순간 짜증이 몰려오지만, 대부분 전날 밤 과녁이라도 그려둔 듯 정확한 위치에 놔둔다. 항상 카메라까지 부숴버리는 10점이었다.


 09:00, 휴대폰 디스플레이의 무수한 화소가 모여 매끈한 형태로 숫자가 찍혀있었지만 비몽사몽 한 상태로 흐린 눈을 한 나에게는 360p에 불과했다. 데이터를 켜 밤새 온 알림을 확인한다. 8시간 시차 때문에, 자고 일어난 휴대폰 잠금화면은 알림들로 순식간에 복작복작해진다. 내가 자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파티가 열린다는 게 섬찟 외로움을 안겨줬다. 이번엔 머리맡에 휴대폰을 둔 채 다시 눈을 감는다. 금방 다시 일어날 테니 멍청이가 될 염려는 없다.


 몸을 뒤척이고 이불을 정리한 뒤 벽을 보고 몸을 웅크려 포근하고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는 돌아눕는다. 보통 1시간 정도 더 자는데, 이때 얕은 램수면을 통해 자주 꿈을 꾸곤 했다. 꿈을 꿈과 동시에 잊어버리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무섭고 어두운 것들이었다. 섬뜩하지만 그런 감정의 물결들은 새롭고 짜릿했기에 악몽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 눈을 급하게 붙인 적도 더러 있었다.


 달콤한 꿈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베개 밑으로 손을 넣어 흘러 들어간 휴대폰을 찾아내고는 꿈에서 본듯한 알림을 빠르게 처리하고 유튜브와 인스타를 열어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번갈아가며 도파민을 추출해대다 보면 허리가 시나브로 뻐근해진다, 그때가 몸을 일으킬 타이밍이다. 화장실로 직행해서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볼 일을 보고 나면 다시 침대로 다이빙한다. 아까와는 다르게 금방 허리가 아파오지만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가장 덜 아플 수 있는 자세로 자꾸만 고쳐 눕는다.


 화소들이 힘을 합쳐 오후 1시를 만들어 낼 때쯤이면 배도 꼬르륵 소리를 내며 반응한다. 하지만 점심의 배고픔은 조금만 참다 보면 그저 허한 느낌으로 변하기 때문에 쉽게 잊힌다. 그러니 배고픔을 참는다기 보다 뱃속의 공허함을 견뎌내는 일에 가깝다. 움직인 거라곤 중간중간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탈수 증세를 막기 위해 물을 마시는 등 무인도 생존수칙을 고집한 것이 전부였다. 월세가 비싸 집도 넓은데 바다로 둘러싸여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좁은 무인도로 개조하여 쓰고 있는 셈이었다. 어스름이 지기 시작하고 방 안에도 어둠이 깔리면, 분명 밤 11시쯤 돼야 할 것 같은데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나의 굿에프터눈은 퇴색되어, 말로에는 사라지고 만다.


파리 스타벅스에서 창밖을 향해 찰칵


 허한 느낌이 배아픔으로 다가올 때쯤이면 한인마트에서 사 온 재료들로 간단하게 해 먹거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밖에 나가 해결하고 온다. 재료라고 하기도 거창하다. 라면, 계란, 카레, 참치,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그래도 배고픔이 배부름으로 채워지는 때는 행복하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와 미리 씻고 침대에 눕는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다시 일어나 씻는, 그런 귀찮은 활동을 줄이기 위한, 나름 합리적인 이유 아래 최소한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다시 침대에 녹아들어 숏폼으로 도파민을 충족시키다가 지쳐 쓰러질 때쯤 기절하며 잠에 든다. 이렇듯 하루를 돌아보면 본능에만 충실했던 내 모습이 경악스러운, 이런 나날들이 종종 있었고,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와중 주마등처럼 프랑스인들의 미소와 배려가 머릿속에 스쳐갔다. 기숙사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탈 때 마주치면 서로 처음 보더라도 항상 웃으며 인사해 주신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주변을 살피면 운전석에서 입꼬리를 올리신 채 손짓 몸짓을 하며 먼저 지나가라고 배려해 주신다.(프랑스 차는 선팅을 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다 가게를 들어서면 직원분께서 눈을 맞추며 환하게 맞아주신다. 불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 영어를 하는 직원을 따로 불러주고 온몸으로 알려주려 노력하신다. 내가 건넨 사소한 배려에도 "고마워!(Merci)"로 보답해 주신다. 가게를 나가려니 멀리 있는 나를 위해 문을 한참 동안 잡아주면서도 그러는 내내 싱글싱글 웃어주고 계셨다.

 

 그래서 무작정 밖을 나가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를 타고, 가게를 들어가고, 매트로를 탔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날 살게 했다. 중요한 건 나도 그들의 미소에 자연스레 웃음 짓게 된다는 것이다. 조건반사 같은 거다. 그 누구라도 감히 그들의 웃음과 배려를 무표정으로 받아칠 수가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처음엔 어둡고 복잡한 마음을 비워내고 따뜻함으로 채워주더니 천천히 쌓이고 쌓인 것이 꾹꾹 눌러 담겨 마음을 단단하게 해 줬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몸소 배웠다. 나는 그런 식으로 웃음을 먹으며 살아갔다. 그제야 몸을 일으켜 둘러보니 섬을 둘러싼 바다의 깊이가 발목까지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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