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seul Jan 12. 2024

여행(旅行)이 여행의 의미를 가지는 순간

 "여행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둥실 거리며 떠오르는 고양감을, 매번 관심이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상대에게 거짓말은 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잘 몰랐고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속였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여행에 대한 욕구를 가슴으로까지 올라오기도 채 전에 눌러 죽여버렸다. 내가 하지 못하는 건 애초에 짓밟아야 했다. 싹조차 틔우지 못하게 햇빛을 차단해 버리는 게 마음이 편했다.


 어릴 적 가족과 국내 여행을 다녀온 게 내 여행의 전부였다. 중학생에게도, 고등학생에게도, 대학생에게도, 방학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설렘이 묻어나는 단어다. 옹기종기 모여 계획을 세우고, 몸은 학교에 둔 채 마음만 여행지로 보내 마음껏 상상하며 웃어도 보고,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올 아쉬운 마음을 그리며 벌써부터 울상도 지어 본다. 다만, 나는 예외였다.


 혼자 가기는 싫고 같이 가자니 마음이 맞는 친구가 없었다. 예전부터 나는 '어디로'가서 '무엇을'하느냐와 같은 육하법칙의 틀에서 벗어난 '누구와'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 조건만 달성되면 어딜 가서 뭘 하든 만족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복도에 나가면 인사하기 바빴을 정도로 아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다소 깊은 관계를 필요로 하는 여행에서만큼은 고립됐다. 무엇보다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누구와'가 비어있다 보니 공허함도 함께 딸려왔다.


 단지 나의 톱니가 들어맞는 친구가 없었을 뿐이었는데, 그 짤막하고 단순한 사실이 나를 섬뜩하게 했다. 나의 톱니는 어딘가 묘하게 이상하고 복잡하다. 불규칙함은 기본이다. 기이하게 구부러져있거나 어딘가 뚝 끊겨 다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다른 톱니와 결합될 수 없는 모양을 가졌다. 예전부터 그랬고,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도 엇비슷하게나마 끼워 맞춰지는 사람을 세기에는 한 손이면, 아니 한 두 손가락이면 충분하다.



 딱해 보이는 당시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돼야 했다. 사실은 그저 같이 가자고 기쁜 마음으로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랬다. 어딘가 안타까워 보이는 것보다 매번 나를 속이더라도 쿨해 보이는 게 나았다. 나를 진실되게 바라보는 것보다 남에게 보이는 게 중요했다. 아래 사진에 있는 지도를 본 누구라도 이 사람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겠거니 판단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추억 총량이 얼마나 적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휴대폰에 사진 기능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물론 데이터 조각이 되어 어딘가 떠돌고 있을 여행사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것들은 없다.


 그렇게 여행과 자체 거리 두기를 하며 살다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도착하고 나서도 얼마동안은 내가 만들어낸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여전히 갇혀 있었다. 여행을 다닐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유, 휴식, 낭만, 즐거움, 행복과 같은 키워드들보다는, 도전과 시련, 역경 등의 단어들을 등에 실은 채 떠났던 교한학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눈동자에 투과된 파리는 낭만적이지도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남들은 다 칭찬 일색하는 것들로부터조차 감흥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깨달으며, 여행이라는 단어를 에워싸고 있던 조그마하게 살아 숨 쉬던 불씨마저 꺼졌다. 생일날 후! 하고 내뱉는 입김으로 초를 꺼뜨리는 게 아니었다. 다 핀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구두 끝으로 찍어 문질러 남은 불씨를 없애버리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꺼졌던 불씨가 D로 인해 작게나마 다시 피어올랐다. 개강 전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우연하게 만난 멕시코 친구가 그 발화점이었다. 사실 여기서 친구를 사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오고 다니며 인사하고 인스타를 주고받으면 그만이었다. 반면 편하게 아무 때나 밥친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사귀는 건 일이었다. 영어로 인한 언어장벽, 해외 생활의 낯섦과 두려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D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끼가 많은 친구였지만, 내가 하는 진중한 이야기들만큼은 언제나 무게감 있게 들어주었다. 말의 채도를 가늠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종종 만나며 이야기하다 보니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단어가 자주 출몰했다. 신기하게도 여태까지 위화감이 들던 그 단어가 말하고 듣기에 더 이상 거북하지 않았다. 영영 속이 니글거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남눈치를 볼 필요 없던 외국의 분위기 덕분이었을까? 나의 배경을 모르는 외국인 친구여서 그랬던 걸까? '여행'이 아니라 'Travel'이어서 그랬던 걸까? 비록 영어였지만, 그때 처음으로 그 단어가 꼿꼿이 허리를 편 채로 말쑥하게 입밖을 통해 배출됐다. 너무 허무하게 벽이 무너진 것에 대해 억울하기까지 했다. 고작 이런 거였나. 그런 식으로 D와 자꾸만 대화하다 보면 어느샌가 나는 '여행에 관심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구와'라는 조건이 충족되니 더 이상 예전의 그 틀에 짓눌릴 필요가 없었다. 로망도, 감흥도 없는 사람이라 좋아한다고는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누가 보더라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니스였다. 지중해 연안의 싱그러운 해변이 인상적인 조그마한 프랑스 도시였다. 내가 갔던 여행지들을 5점 만점으로 평점을 매겨 블로그에 올려두었는데 니스는 5점이었다. 사람들과 트램의 눈높이가 똑같았고, 뜨거우면서도 찐득하지 않은 여름 기운은 바다를 사랑하게 만들었고, 반팔을 입고 나가면 춥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여름 밤바람이 옷 속을 타고 기분 좋게 몸을 관통했다. 동시에 들어간 술 때문인지 서늘한 바람과 어우러져 가슴팍으로부터 생긴 노곤함이 혈관을 따라 온몸 구석구석 퍼져나가는 듯했다. 마음껏 흐물거렸다. 먹었던 모든 음식들이 혓바닥의 미뢰들을 당황케 했고, 또 그런 음식들에 재치 있는 유머를 곁들여 서빙해 준 웨이터분들까지, 감히 모든 게 완벽했다. 옆에서 계속해서 호들갑을 떨던 D덕분이었을까, 그저 이 도시를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졌다. 혼자 왔더라도 이렇게 좋았을까?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이질감조차 들지 않게 자연스러웠던 순간의 감정들이 이제야 돌아보니 하나하나 모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D가 좋은 친구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같이 여행을 다니기에는 버겁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사소한 지점에서 쌓인 스트레스들이 벽을 이루었다. 이후 나는 홀로 긴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교환학생을 가던 그때의 단어들, 그러니까 힐링과 여유가 아닌 고통과 힘듦 속에서 또다시 무언가 발견하길 바라며 다소 도전적인 19박 20일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무서웠다. 파리는 서울처럼 익숙했지만 유럽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다. 정말 힘들기만 하고 오면 어떡하지. 혼자 가서 뭘 느낄 수나 있을까. 첫날 벨기에에 도착해서 남은 19일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지면 어떡하지.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남는 게 없으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잘 알았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니까. 그래도 두려웠다. 감흥이 없는 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왜냐면 그 '감흥'이라는 놈은 설렘까지 앗아갔으니까. 애초에 그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헛된 염원을 품곤 했다.


 나름의 대책으로 숙소를 모두 한인민박으로 잡았다. 목표도 정했다. 내 눈에 예쁘고 아름다운 도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나만 찾아보자고. 하나는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한인민박과 커뮤니티를 활용해 일행을 구해 같이 여행하며 소중한 인연을 만들 거라고 다짐했다. 그 두 가지 목표를 마음 한편에 두고, 조그마한 캐리어와 배낭을 치켜 메고 기차에 올라탔다.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두려움이 솟았다. 필사적으로 떨쳐내려고 이어폰을 꽂아 시끄러운 노랫소리로 귀를 통해 머릿속까지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후로도 여행을 다니며 매일 밤 일기를 쓰듯 노래를 들었다. 두통을 일었던 노래들은 점점 잔잔해지다 이내 잦아들더니, 돌아오는 파리행 기차에서는 어느 순간 편안하게 잠들기까지 했다.


 돌아왔을 땐 정말 지쳤다. 몸도 마음도. 그래도 여행이라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며 어딘가 뿌듯해 보이는 표정을 입가에 걸어둔 채로 약간의 실소를 터뜨릴 수 있게 됐다. 처음에 세웠던 두 가지 목표도 모두 이뤘다. 내 취향의 도시를 발견했고, 마음이 맞는 동행을 만나 아픈 몸을 이끌면서도 열심히 돌아다녔다.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건 만난 지 1시간 채 되지 않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음이 맞는다'라는 건 꼭 관계의 깊이로만 따지고 들 문제가 아니었다. 관계의 깊이를 시간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톱니는 모양이 유별나지만 상대방에 맞춰 유동적으로 변형될 수 있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들인데, 너무 늦게, 그리고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혼자서 적재적소에 시간을 쏟아가며 여유롭게 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함으로써, 그 여행을 되돌아봤을 때 그 시간들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그런 여운이 남는 여행을 좋아하게 됐다. 여전히 마음 맞는 사람과 여행을 하고 싶은 욕구가 온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너무 무겁고 완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다 보면 평생 동안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하지 못할 거라고. 그러니 그냥 적당히 하라고.


다시 누군가가 묻는다.

여행 좋아하세요?


"아 네, 뭐.. 좋아하긴 하는데, 좋아하진 않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