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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Feb 01. 2024

음식

그늘진 나무 밑에 깔아놓은 멍석에서 호박잎 찐 것, 열무김치, 된장국, 맛깔스러운 찬에 조밥으로 저녁을 끝냈을 때 해는 넘어갔다. (토지 5권 364)

특별할 것 없는 밥상 묘사에 엄마가 떠올랐다.

외식, 배달, 밀키트, 패스트푸드의 세계가 온통 지배하는 2024년이다.

스마트 기기 등장 전후로 엄청난 변화의 양상을 넘어온 시대다.

24년 현재 나의 시간은 40년 남짓이지만,

겪어낸 시간의 간격은 40년 이상의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 내 고향 군위군 소보면 도산리는 아직도 버스가 하루 세 번 다니는 곳이다.

분지 중의 분지, 내갈 것도 없고, 들어오는 것도 더딘 곳이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한평생을 사신 부모님을 어린 시절엔 원망도 했었다.

점점 더  풍족해지는 물질과 문화의 혜택은 늘 거리밖의 일이었다.

3사 방송사의 프로그램만 겨우 나오는 16인치나 될까 했던 조그만 티브이로 보는 물질문명의 세계는, 막 10대에 들어서는 소녀에겐 닿을 수 없는 세계였다.

모든 것이 시대의 속도에서 반 발짝 느린 곳이었다.


가장 가까운 번화가인 면이 4킬로 이상이었으니,

모든 필요, 특히 먹거리는 자급자족형태였다.

5일장이나 특별히 짬을 내서 읍내 장에 나가서 사 오는 자반 생선이나 육류는 가끔이었고, 대부분은 집 곁에 딸린 텃밭에서 철 따라 나오는 채소가 주요리를 차지했다.


문장에 등장하는 열무김치,

열무김치 재료로 쓰이기 전의 어린 열무에 고추장 한 숟가락, 참기름 한 숟가락 낫게 넣어 쓱쓱 비빈 비빔밥.

장독에서 금방 퍼낸 된장 푼 물에 새벽이슬에 호박 넝쿨 헤쳐가며 찾아낸 애호박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인 된장, 채 여물지 않은 푸른 고추와 된장.

자라면서 보아온 음식의 세계가 그것이었으니 좋다 싫다가 없다. 설설 해낸 것 같은 엄마의 음식이 둥그런 상에 들려 안방 가운데 놓이고,

"밥 먹어라~!'라는 말에 하나둘씩 상앞에 앉아 식사를 했다.


특별할 것 없는 그 식탁과 닮은 묘사가 나오는 문장을 읽을 때면 기억은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돌아가고 만다.

가난이 묻어나는 풍경에 가슴이  아리면서, 둥근 상 위로 피어오르는 따듯한 음식의 김이 손에 잡힐 듯하다.


가족의 매끼를 책임지는 나이가 되어보니,

그 한 끼에 들어간 잔손길이 보인다.

음식이란 게 그렇다. 다 손으로 해 내야 된다.

재료를 사고, 다듬고 씻고, 칼질하고 조리한다.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그릇에 담겨 나오기까지 누군가의 세심한 노동이 가미된 것이다.

누군가는 엄마였다. 하루 한 끼는 외식이나 밀키트, 배달음식으로 연명하는 지금, 그때의 엄마는 어찌 한마디 불평도 없이 그 일을 하셨나 싶다.

기억 속의 둥근 밥상은 지금도 식탁에는 김 나는 한 그릇의 음식이 놓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패스트푸드나 대체음식으로 가족들의 한 끼를 먹인 날엔 왠지 모를 죄책감이 있다.

내 식구 입에 따뜻뜻한 밥 한 숟가락 넣으려는 엄마의 사랑을 알아버린 것이다.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가슴에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매년 정기검진을 받는데, 유방외과 전문의 선생님이 나이가 있는  푸근한 여자 선생님이다. 늘 검진 끝에 이 종양의 원이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겠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대답하신다.

딱히 원인이랄 것은 없지만 육식과 기름진 음식이 많아져 버린 식생활과 스트레스 등 생활 습관이 많은 영향을 차지하지 않을까 하시며

"거친 음식을 먹어야 해요. 보리밥에 된장, 야채 같은 거요."

엄마의 밥상이다.


이제 군위군도 대구광역시가 되었다.

한 시간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인데도 내 삶이 우선시되다 보니 친정 가는 일은 이벤트와 같다.

출발 전화를 하면 엄마는 늘 그럼 지금 밥솥을 누른다고 하신다.

도착과 함께 김 폴폴 나는 엄마의 된장과 금방 한 쌀밥이 상위에 올려져 있을 것이다.

짭짤한 밑반찬에 장독에서 금방 떠내 만든 간장으로 맛깔나게 만든 간장종지의 간장과 함께 싸 먹을 생김.

투박하고 거친 엄마의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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