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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추나무집손녀 Jun 30. 2021

지하철에서 왜 눕고 그래요?

출근길 그 남자

오늘 출근길, 꽤나 강렬했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버릴 에피소드를 남기고자 한다.


어제와 다름없는 지하철 출근길. 오늘은 퇴근 후 수업이 있는 날이라 짐이 좀 많아 괜스레 피곤한 그런 아침이었다.

갤럭시 버즈를 끼고 여유롭게

(인스타그램이었던가, 어디서 본 짤인데 지하철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아냐고. 핸드폰을 보지도 않고, 음악을 듣지도 않고, 책도 보지 않고 그냥 멍하게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제일 위험한 사람이라고... 그때 내가 번아웃 상태여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게 내 모습이라 되게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 이후 음악이 다시 내 귀에 들리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지하철을 타면 음악을 듣던, 핸드폰을 보던, 책을 보던 멍하게 서있는 것은 주의하는 편이다.. 번아웃 금지!)

서서 가고 있는데, 쿵 하고 지하철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별일은 벌어지지 않은 듯 보였다. 그 찰나 잠깐 눈에 띈 한 남자.

그 사람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살짝 춤을 추고 있었다.

'흠.. 저 사람이 흥에 취해 춤추다가 좀 세게 부딪혔었나?'


신경을 끄고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서칭 하는데, 또 이상한 소리가 났다.

아까 춤을 추던 그 남자였다.

이번엔 또 어찌 빈자리를 찾아 앉았는지 모르겠지만 자리에 앉아 발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혼자 '꽥' 짧은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꽥!' 하는 짧은소리니까 그냥 봐줄 만했다.

'조금 남다른 사람인가 보다...'

그 남자의 옆에 앉았던 여자가 갑자기 급히 가방을 안고 나를 스쳐지나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아. 출근길에 쉽게 볼 수 없는... 스트레인저가 탔다.!'


남녀노소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지하철에서 만난 스트레인저가 누구도 예상 못하는 행동을 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은 상당히 긴장되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그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올 수도 있고, 밀폐되어 달리고 있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의 돌발행동은 위험하기 짝이 없으니까.


그와는 떨어진 거리이기에 나는 살짝 안심했다. 그리고 그 사이 빈자리에 앉은 나는 오늘 처음 개시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스트레인저도 많은 사람이 내리고 타는 <강남구청> 역에서 내리며 나는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노 요코의 <요코 씨의 말>.

평범함과 비범함에 대한 그녀의 글을 읽으며...'우어 멋진 문장이네'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고 잠깐 고개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선릉> 역.

사람들이 빠져나가며 점차 시원해지는 내 시선 속에 지하철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아까 그 스트레인저가 남았다. 그는 어느 여자분이 앉아있는 발끝에 거의 닿을락 말락 앉아있었다.(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했을까...)


아니.. 이 사람이 아까 내리는 척하더니 다른 문으로 다시 들어왔구나!

기가 막히고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스트레인저를 넘어 살짝 광인의 경지가 아닐까.


그리고 그는 이제 아까보다 훨씬 더 내 가까이에 자리해 있었다.

'아 불안하군 불안해...'

내 옆자리엔 덩치가 그래도 좀 있는 청년이 앉아있었기에  그래도 좀 안심이 됐다.

뭔가 스트레인저가 이상한 행동을 했을 때, 그냥 가만히 방관할 덩치는 아니었다.

난 그저 옆 청년이 내가 도착할 역에 이르기까지 자리를 뜨지 않기만을 바라며 다시 책을 읽어보려 노력할 뿐이었는데, 어랏!  


'어....? 어.... 저 사람이 또 움직이네?!'



온 신경이 스트레인저에게 집중되는 순간 그는 자분자분 걸어와 바로 내 앞 발치에 자리 잡고, 마치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듯 일자로 반듯하게 누워버렸다.


'도대체 자네, 왜 이러는 건가?!'


당황스러움 그 자체.

누운 그의 얼굴이 너무나 잘 보일 정도로 그는 아주 가까이 누워있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그 광경을 대신해줄 나의 책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가려보자....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무리 자연스럽게 책을 들어 올려봐도, 눈을 빳빳하게 뜨고 누워 있는 그의 얼굴이 너무 잘 보여 나는 그저 책에 적힌 글자에 내 눈동자를 고정하는 것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불안감에 슬쩍 살펴본 그의 행색...

정면을 향한 그의 눈이 그렇게 흐리지 않다. 그의 얼굴도 전혀 지저분하지도 이상해 보이도 않는다.

슬쩍 보니 그저 요즘 거리에서 흔히 보는 내 또래의 혹은 나보다 어린 청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팔에는 멋 부림의 상징인 힙한 액세서리들도 팔에 장착되어 있었다.


누워서 계속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그를 쳐다보지 않아서일까. 천장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잠시 잠깐, '저 남자 에어컨이 이렇게 빵빵 틀어진 지하철 바닥에 누워있으면 그 누구보다 시원할 거 같긴 하네'라는 미친놈 같은 생각을 했다.


궁금증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찰나,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다.

뒤를 돌아보면 쫓아올 것 같아서, 그의 몸에 내 발이 닿지 않게 조심하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계속 누워있었다. 열차는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지하철 계단 위를 올라오면서도 나는 계속 궁금해졌다.

왜 그는 평범하게 지하철을 타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다 화를 내고, 또 지하철에서 내렸다가 다시 타서 결국 지하철 바닥에 누워버렸을까.

갑작스러운 빈혈? 멀미? 아니면 회사에 가기 싫은 잠깐의 반항이었나.

그는 어떤 역에서 내려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평범하고 말쑥한 모습으로 거리 속 사람들에게 다시금 섞였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사람은 모두 살면서 순간순간 미친다고 하던데.
오늘 출근길의 그 남자는 그의 인생의 어떤 순간을 맞닿드리고 있었던 걸까.


묘하고도 궁금한, 그리고 짠하기까지 한 출근길의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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