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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스윗 May 13. 2021

위기감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뭐라도 생산하는 생활을!

뭐라도 써야 한다는 위기감이 두 번째 육아휴직 5개월 만에 찾아왔다.


큰 아이를 남편 손에 등원시키고 5개월 넘긴 둘째의 배변과 식사를 챙긴 뒤 큰 아이가 어질러놓고 간 집 안을 대충 치우다 보면 11시가 가까워 진다.  각종 육아용품(쏘서, 스윙, 스너그, 모빌 등)에 아기를 잠시 맡기거나 아기띠로 오전 낮잠을 재운 뒤 빵이라도 한 조각 씹으며 인스턴트커피와 함께 주식시세표를 확인하는 걸로 오전 시간을 채우는, 평화롭고 단조로운 날들을 보내던 중이었다.   


누군가의 삶을 전하는 것이든, 주장을 검증해 반박하는 것이든, 정부의 정책을 요약해 전달하는 것이든, 어쨌든 내가 평생 해온 일은 글쓰기인데 글을 쓴 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어릴 적엔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내 감정을 배설하며 글 쓰고 싶은 욕구를 채우곤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마저도 두려워졌다. 내 생각과 글이 더 멋있고, 어른스럽고, 남 보이기에 손색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따라붙었으리라. 중앙언론사 10+n연차 기자가 가져야 할 소양이랄까, 경험치랄까, 뭐 이런 걸 따지다 보면 망신당하기 전에 접는 게 더 합리적인 결정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순간순간 내가 느끼는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처럼 사라졌다 생각하니 너무 억울한 거다.



한편으론, 육아휴직으로 아이를 돌보는데 매진하면서 내 지적 수준이 영*유아기인 아이들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섬뜩한 느낌에, 뭐라도 지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와 있을 때엔 '엄마, 맘마, 빠빠, 도리도리' 등을 알려주느라 세 문장 이상 말할 기회가 없고, 첫째가 하원한 뒤엔 그의 최애 만화 프로그램인 옥토넛 구조대나 변신 로봇, 그날 배운 태권도 품새가 주요(!) 화제다. 내가 아는 꽤 많은 지인들이 이미 '저자'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에 자극받았음도 인정. 내가 똥기저귀 가는 동안 남편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Zoom을 통해 외국사람들과 영어로 회의를 한다는 점도 왠지 분했다. (여기서 또 못난이가 튀어나오는구나.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내가 노력을 안 해서인데 왜 이 지점에서 샘이 날까. -_-)   


믹스커피는 육아 필수품. 씁쓸한 아메리카노로는 도저히 힘이 나질 않는다. 수유기엔 디카페인 믹스커피를, 요즘은 모카골드 믹스커피를 구비해놓고 당이 떨어진다 싶으면 주입해준다!

그래서, 2월 연말정산 이후 처음으로 노트북을 켰다. 아기 낮잠자는 짧은 틈에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글을 써봤다. 좋다. 정신없고 손은 굼뜬 워킹맘의 '체험 삶의 현장'. 글쓰기는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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