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를 보고 위스키가 마시고 싶어졌다
영화 <소공녀>의 영어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알던 '소공녀 (Little princess)'가 아니다. '미생물 서식 환경'이라는 뜻의 소공녀 ('Microhabitat')다. 주인공 이름 '미소' 역시 우리가 알던 그 미소(Smile)가 아니라 미소(微小=작디 작은)다.
대학을 중퇴하고 부모님도 없고 가사도우미로 일당을 벌어 살아가는 그녀는 나란히 오른 월세와 담뱃값을 감당할 수 없어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숙박을 해결하고자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서울 여행'을 떠난다. 위스키와 담배, 남자친구 이 세 가지가 유일한 영혼의 안식처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잘 곳은 없어도 취향은 포기할 수 없다. 제목처럼 그녀는 최소한의 공간을 얻어 하루하루를 해결하고자 한다.
물론 영화이긴 하지만 몇 년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감당하기 힘든 주거 비용 때문에 몇 년 동안 평균 6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해야 해서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지방에서 온 대학 자취생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집을 갖고 싶지 않은 이, 안정된 보금자리를 원하지 않는 이 어디 있겠는가.
영화에서 미소가 찾아간 이들 중 어느 부자인 친구는 그녀를 나무랐다.
"나는 네가 염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 나 같으면 술, 담배 끊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겠어
(와 비슷한 뉘앙스의 대사였다)."
세대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식대로 상대에게 말을 내뱉는 경향이 있다, 도움 하나 줄 것 아니면서.
그럼에도 친구들을 좋아하고 자신이 정한 마음의 안식처 - 위스키 한잔과 담배, 남자친구 - 에서 소소한 안식을 느끼는 미소는 다섯 명의 친구들 집을 거치다 결국 혼자 한강 아래 텐트에서 지내면서도 작은 단위의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간다. 과장되고 비틀어진 영화의 내용에 누군가는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한 미소가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 같아 슬프다 했고, 누군가는 위로를 받아 미소처럼 꿋꿋하게 지내야겠고 말했다.
저성장 시대를 사는 요즘 젊은 세대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보다 평범한 것들에 눈을 돌린다고 한다. 돈, 명예, 권력 등 세상의 기준에 연연해 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세워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안식의 대상을 찾는다든지 평범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노멀크러쉬', 쓸모없는 선물하기 등무의미한 것들에 눈을 돌리는 '무민(無mean) 세대'라는 유행어가 이를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미소가 거처를 신세 졌던 친구들이 우연히 모여 연락이 끊긴 미소의 행방을 궁금해하며 걱정한다.
"어디서 잘살고 있겠지? 미소는 잘 살 꺼야. 또 어느샌가 나타날 거야, 걱정 말자고."
각자의 삶을 살아내기 바쁜 친구들이 신세가 딱한 미소를 도와주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아 보였다. 마치 우리의 모습처럼.
평범을 추구하든, 성공을 좇든, 그 중간이든 어떤 선택이든 아무래도 괜찮다. <쌈, 마이웨이>라는 드라마 제목처럼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우리는 여전히 my 'own' way를 가는 거고, 그럴 거면 확실한 my way를 가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 누가 뭐래도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안식처인 작은 단위의 행복은 꼭 붙들고서.
미소가 입맛을 다시던 위스키 한 잔을 맛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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